딱히 파타고니아에 관해 잘 아는 것도 아니면서 파타고니아라는 이름만 듣고도 가슴이 펄떡이는 건 분명 남다른 애정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그 애정의 근원을 알 수 없다는 것. 막연한 느낌이나 그리움, 나아가 사랑이 어떤 궤적을 그릴지 따갑게 가늠하면서 다시정념에 견줄 애달픈 심정이라니 유럽에 1년을 머물 계획을 구체화한 지금 엉뚱한 상상이었다.
"어느 정도 스스로를 증명하고픈 갈망으로 시작했으나 겨울의 잔혹한 힘을,또는자기 자신을 잘못 판단한 탓에 양쪽 콧구멍에 콧물 고드름이 달린 꼴로 여기 앉아 턱없는 야망을 품은 자의 비참한 말로를 남들 앞에 전시하고 있는 것이다." - 《발견의 여행》, 스티븐 페이브스, p43
파타고니아가 어느 대륙에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검색 엔진에 키워드를 입력했다. 탑재된 정보에선 구체적인 지역을 확인하지 못했다. 지형과 풍토에 관한 정보만 있었을 뿐이다. 크게 확대한 지도와 근접 촬영한 사진으로는 파타고니아가 어디 붙었는지 짐작하기가 쉽지 않았다. 서너번에 걸쳐 관련 글을 찾아 읽고서야 뒤늦게 파타고니아가 칠레에 속한 걸 알았다. 위치도 모른 채 정말 막연하게 파타고니아를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산티아고
고작 3,4년 전에야 순례자의 길이 스페인에 있다는 것과 그 길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불린다는 것, 그리고 그곳에 다녀온 이들이 하는 말, "그렇게 낭만적이지마는 않다"는 전언을 들었다. 파타고니아 역시 유사한 사고과정을 거쳐 심연 안쪽에 찐득하게 들러붙어 있던 신체 일부를 드러낼 것이었다.서서히 어둑서니의 본령이 걷히고 있었다.
"파타고니아가 그토록 위험하고 야생적으로 느껴진 것은 바람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베들레힘을 향해 웅크리다》에서 조앤 디디온은 또 다른 돌풍, 로스앤젤레스를 뒤흔드는 건조한 샌타애나의 '악마풍'을 언급하며, 그 바람이야말로도시의 덧없고 불안정한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킨다고 썼다. "그 바람은 우리가 얼마나 경계에 가까이 있는지 보여준다."나 역시 파타고니아에서 그런 경계를 느꼈다. 그 혹독한 포효 속에는 우러를 수밖에 없는 뭔가가 있었다. 그토록 작고바람에 이리저리 나부끼는 존재, 그토록행복하면서도 연약한 존재라는 느낌은 그때까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다." -p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