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의 전환이라는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큰 글이라 길게 인용합니다. 얽히고설킨 사회 문제를 몇 개의 논점으로 단순화하거나(단순화가 능사가 아니겠습니다만) 사회 구성원 내부에 똬리를 튼 통념을 묘파해 그 속에서 고갱이를 건져내는 혜안에서 마이클 샌델은 놀라운 능력을 증명해 왔습니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비롯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공정하다는 착각' 등 그를 대표하는 저작에서 우리는 우리 사회가 당면한 쟁점, 현안에 견련한 과제, 그것들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단에 관해 적절한 도구를 건네받는 행운을 누린 바 있습니다. 십여 년이 흘렀습니다. 우린 그 도구의 일부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실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바뀐 것 같지 않습니다.
현안과 쟁점이 켜켜이 쌓여 산을 이루는 동안 우리가 한 일이라곤 해묵은 논란과 실체가 불분명한 담론의 유포, 허위로 점철한 진영주의의 망국적 현상에서 한 발 치도 나아가지 못한 채 당장에라도 숨넘어갈 듯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고작 제 손의 한 줌 이익만 지키려 성난 이빨을 드러내는 통에 지역과 국가가 찢긴 어닝처럼 언제 무너져 내릴지 모를 지경이 되었습니다. 공정과 정의에 관한 마이클 샌델의 남다른 통찰과 통섭이 다종다양한 논쟁의 최전선에서 매우 생산적인 논의를 이어가고 있었던부분에 다시 시선을 고박할 수 있다면 희망의 끄트머리라도 붙들 수 있겠다 싶으련만 요원한 일입니다. 이 글의 발단은 그런 현실 인식에서 비롯합니다.
인공지능의 발전은 우리에게 커다란 윤리적 질문을 던진다고 생각합니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발전하면서 제기된 가장 중요한 윤리적 질문 중 하나는 '인간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인가?'입니다. 많은 이들이 인공지능과 로봇 때문에 사람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
이라고 걱정하죠. 그리고 실제로도 이미 우리 사회는 이런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기존에는 마트에 가서 식재료를 골라 계산대로 가져가면 직원이 계산을 도와주고 결제를 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어떤가요. 직원 대신 기계가 있는 곳이 많아졌습니다. 무인 키오스크에서 물건을 스캔하고 계산하죠. 물건을 스캔해 주는 직원이 기계로 대체된 것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로봇이나 기계가 일자리를 대체하는 것을 과연 발전이라고 보아야 할까요? 삶의 질을올려주나요? 인간의 복지가 증가하나요? 아니면 이 시스템이 마트에 더 큰돈을 벌게 해 주나요? 저는 제가 사려는 물건들을 기계에 스캔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마치 제가 그 마트의 직원이 되어버린 것 같거든요. 이런 상황은 더 큰 질문으로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은 강력한 도구입니다. 인공지능과 결합한 로봇은 올바른 방법으로 사용하면 생산성을 높일 수 있겠죠. 하지만 누가 어떤 종류의 인공지능을 사용할지, 어디에 어떤 로봇을 사용하게 할지는 우리 시민이 결정해야 합니다. 저는 이것이 민주주의 사회 일원으로서 우리가 논의하고 토론해야 하는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우리가 실리콘밸리의 기업가들에게 이 결정을 맡겨버린다면, 그들은 일자리를 없애는 것이 기업의 비용 절약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수많은 곳에 로봇을 사용하기로 결정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인공지능과 로봇이 일자리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자리를 늘리고 강화하는 데 활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학력을 갖추지 않은, 전문직이 아닌 노동자들이 수행하는 일자리를 더욱 생산적으로 만들고, 이로 인해 노동자들의 임금이 증가하도록 만드는 데 사용될 수 있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 보죠. 상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기계와 로봇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기계장치를 활용하여 재고 조사를 할 수도 있고, 브랜드별로 어떤 제품이 얼마나 많이 팔렸는지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많이 판매되는상품을 알아내서 재주문하는 기술적인 방법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이 일은 더 생산적이고 더 가치 있게 됩니다. 이처럼 제 생각에는 일자리를 없애려는 기술과 근로자의 생산성을 향상하기 위해 일자리를 늘리려는 기술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걸레와 양동이를 들고 밤에 바닥을 청소하는 건물의 유
지보수 직원을 예로 들어 보죠. 이 사람들은 많은 급여를 받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기술을 사용한다고 가정해 보죠. 바닥을 닦는 것뿐만 아니라 기계 장치로 열, 에어컨, 전기, 건물의 온도, 그리고 상점을 열고 닫고, 창고가 열리고 닫히고.. 이런 여러 가지 변화들을 감지하는 것도가능할 것입니다. 건물이 예너지 효율성을 높일 수 있도록 데이터 값을 입력할 수도 있죠. 아주 생산적인 기술 활용입니다. 이와 같은 기술들을 사용하여유지보수 작업자의 생산성을 높이고 그에 맞춰 임금도 인상한다면 어떻까요.
제가 이런 이슈들을 실리콘밸리에만 맡길 게 아니라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그냥 맡겨 둔다면. 그들은 그저 일자리를 없애려고 할 것입니다. 이것은 기업의 당연한 본능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는 거죠. 어떻게 하면 기업의 기술 개발을 장려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기업이 중간이나 저 기술 일자리를 더 생산적으로 만드는 기술에 투자하여 그 일자리의 임금을 높일 수 있을까요? 저는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 기술 운영
예 있어 가장 큰 도전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기술 변화를 가정하여 미래를 생각합니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추측하기도 하죠. 기술 변화는 외부에서 작동하는 힘에 의해 발생합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변화하지만. 결국엔 변화한 환경에 우리 모두가 적응해야 하죠. 우리는 로봇이 삶에 들어온다고 가정하며, 로봇이 내 일자리나 다른 누군가의 일자리를 차지할지를 걱정하지만 기술은 자연의 변화와 다릅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기술은 특정한 관심사, 정부나 기업들의 투자 방향에 따라 반응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민주적인 사회에서 사회구성원들이 다음의 질문에 함께 답하는 것입니다. '기술을 통해 저 숙련 및 중숙련 노동자의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으로 어떻게 기술을 조종할 것인가'하는 것입니다. 이 질문의 답을 찾는 것은, 불평등에 대한 논의로 돌아가는 것을 막고 나아가 불평등 자체를 줄일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