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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산부 배려석, 차라리 폐지하자

수수방관하는 새 애물단지로 전락한 임산부 배려석

by 콩코드


지하철 안내 방송. 임산부를 배려하자는 말이 스피커를 타고 어김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임산부가 아닌 사람이 자리에 앉았다. 시민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지하철 관계자가 상황을 모를 리 없다. 돌아오는 답변은 임산부 배려석에 일반인이 앉아도 마땅히 제지할 수단이 없다는 고충 토로가 전부다. 잔뜩 늘어난 비디오테이프에서 철 지난 장면이 십수 년째 흘러나오고 있다. 대책 없이 안내 방송에 의존하는 행태 역시 반복되고 있다. "임산부를 배려합시다."



임산부 배려석만 찾는 얌체족들도 해마다 늘고 있다. 대부분 여성이다. 그런 모습을 흘겨보던 남성들도 분위기에 편승하는 눈치다. 분통이 터지는 건 일반 이용객들이다. 아직은 전면적으로 분출되지 않지만 언제 터질지 알 수 없다.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비임산부와 일반 이용객 사이에 고성이 오가는 장면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주먹질이 오갈 뻔한 아찔한 광경도 때로 눈에 띈다.



대책 없이 논란만 키운 공사. 언제까지 양심과 도덕에 호소할 생각인가.



상황이 이런데도 지하철 공사 측은 그 흔한 순회 점검은 고사하고 뚜렷한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손 놓고 있다. 대안이나 대책 없이 분란만 조장하는 정책이라면 폐지가 답이다. 시행 초기엔 무슨 대단한 정책인 양 실컷 홍보나 하고 문제가 불거지자 어쩔 도리가 없다는 식으로 볼멘소리나 하는 건 지나치게 무책임하다. 고작 이용객들의 양심에 호소하거나 도덕률에 기대는 방송으로 상황이 호전되기를 기대하는 것부터 대단히 궁색한 일이기도 하다.



배려석이 없더라도 임산부를 보면 자리를 내줄 정도의 시민의식은 아직 살아있다고 믿는다. 오히려 그 편의 시민 의식을 기대하는 게 작금의 촌극과도 같은 상황을 멈추게 하는 유용한 방책일 것이다. 지금이라도 정책 실패를 받아들이고 시민의 이해를 구하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언제까지 시민 다수의 양심이나 도덕을 볼모로 실패한 정책을 밀고 나갈 수 없다. 브레이크를 잃은 기관차는 결국 탈선하거나 차단벽에 부딪히고 만다. 당장 탑승객들의 안위가 문제다. 브레이크를 고치든가, 열차에서 내릴 방도를 찾아야 한다. 비유가 지나치다고 섣불리 말하지 말라. 이미 전철 이용객들은 충분히 정신적 고통을 호소해 왔다. 그럼에도 장기간 적절한 처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트라우마, 곧 정신적 외상이 심각한 수준이 아니라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키는 공사가 쥐고 있다. 고치든가, 끝내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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