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이라면 당장 경을 칠 상황이라도 그 ‘다른 사람’이 간부라면 아무 일 없이 넘어가는 세상, 이유를 떠나 대단히 잘못되었다. 지위고하를 떠나 어떤 일에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면 당장에 바로잡아야 한다. 특히 예산 지출이 수반되는 사안에선 대단히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 모 씨가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 출장 전 필수적으로 거쳐야 할 ‘해외 출장 결재’를 받지 않았다. 문제 소지가 다분했다. 막내 직원조차 어김없이 챙길 아주 기초적인 사항을 간부가 잊다니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 기강해이라는 지적도 감수해야 할 판이다. 더 큰 문제는 예산 수백만 원이 나가는 출장에서 중요한 절차를 이행하지 않은 것, 달리 말하면 무단이탈이나 마찬가지다. 가까운 곳으로 출장을 나가도 출장 결재를 받지 못하면 잘차 위반 등으로 감사를 받는다. 국내 출장도 아니고 그 먼 해외로 나가면서 출장 결재를 받지 않았다면 어떤 징계가 예상될까? 결론은 탈 없이 넘어갔다. 간부가 아니라면 출장비 전액 환수는 물론 징계 수위가 도마에 오르고도 남았을 것이다. 나는 관대하다.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1세가 현현할 줄 몰랐다. 봐주고 말 일이 아니다. 쉬쉬하며 넘어갈 일은 더더욱 아니다.
♧ 복무 예규에 따르면 출장명령은 여비의 지급근거가 된다. 출장 명령이 없다면 여비를 지급할 수 없다. 복무 규정상 출장이란 '상사의 명에 따라 정규 근무지 외의 장소에서 공무을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출장 명령 없는 출장은 허용되지 않는다. 당연한 귀결이지만 출장 명령 없는 출장에 여비 역시 지급되어선 안 되는 것.
# 가오(かお) - 대단히 전근대적인 주군/가산 놀이
무슨 소리. 내가 당신을 기억해. 배경을 모르면 이쪽에서 수화기 너머 상대방을 살뜰히 챙기는 모양으로 들린다. 저런 식으로 가오(무게) 잡은 지 꽤 되었다. 합리성과 과학 발전에 힘입어 찬란한 문명을 일군 현대 사회에서 주근/가신 놀이가 가당키나 할까. 요즘 시대에 전근대적인 놀이나 하고 있다면 제정신이 아니라는 손가락질을 받기 쉽다. 제정신이 아니기는 마찬가지지만 이런 의심도 가능하다. 남근 주의에 빠진 모양이라고. 남성들이 우래 전에 빠져나온 남근 주의 곁을 맴돌다 못해 기꺼이 그 빈자리로 기어들어 간 여성이 있다. 거기라면 현실에서 못다 이룬 고위직의 위세를 떨 수 있으리란 철 지난 기대를 했을 법하다. 밖으로 나오는 순간 새벽안개와 같이 흩어질 꿈이지만 그는 깰 마음이 없다. 거기라면 천년만년 호령하며 살고도 남는다. 고려장이 코앞인 줄 모르고 여태, 무슨 소리. 내가 당신을 기억한다니까.
# 용비어천가 - 한 번 놓은 정신줄이 쉽게 돌아오리야
퇴임식 전날 잔칫상을 받아놓고 연신 희희낙락이다. 누구긴 누구? 위 간부나리지. 들리는 바로 잔치 자리에서 팀장으로 불리는 애완견 한 마리가 용비어천가를 낭독할 모양이란다. 부탁이라면 어떻게든 가볼 수 있겠지만 비위 상할 소리는 영 못 듣겠다 싶었다. 여남은 명이 사정으로 참석하지 않는다. 그중 한 명이라도 뜻이 같으면 좋으련만. 아직 확인한 것은 아니니 그 정도 의식을 갖춘 직원이 없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여러 번 언급했지만, 그는 그 흔한 주례사 비평이라도 받을 자격이 없다. 인간성을 의심할 만큼 그는 부서 전체를 농락하고 유린했다.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을 태연히 지껄이거나 직원들 사이를 이간질하고 편을 가르는 해괴한 짓을 그토록 화려하게 벌일 인간은 이 지구상에 없다. 인간이라면 응당 주춤하기 마련인 고약한 짓거리 앞에서도 그는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았다. 전황, 직권남용, 갑질 등 그 어떤 것도 그를 설명하지 못한다. 그 모든 것을 합친 뒤에라야 그가 보인다. 썩은 내 진동하는 곳에 어김없이 그가 있었다는 사실, 거듭 떠올려도 심상하다.
# 상가지구(喪家之狗) - 상갓집 개들
무시당하는데도 이렇다 할 대꾸 없이 순응하는 사람은 노예뿐이다. 하다못해 당신을 무시하는 사람을 마찬가지로 무시하기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반대로 심한 모욕에도 불구하고 상대 앞에서 잔뜩 몸을 낮추는 사람이 있다. 상대에게 떡고물을 바라서라면 십중팔구 맞다. 누군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라도 후일을 기약하려는 것. 개소리다. 요즘 시대에 그런 말에 넘어가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상갓집 개가 되는 건 시간문제다.
♧ 기어코 상갓집에 상갓집 개뿐만 아니라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개들로 들끓을 모양이다. 부서를 이 지경으로 만든 장본인은 물론 장본인을 통제할 위치에 있는데도 그 책임을 방기한 ○○나으리마저 잔칫상에 행차하신단다. 하는 꼴이 죄다 코미디다. 아니 개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