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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사랑, 시몬 드 보부아르와 올그런의 《연애편지》

연애편지, 17년의 사적 기록

by 콩코드


"어제 생제르맹가의 한 테라스에 앉아 있었어요. 잎이 무성한 활엽수들과 저녁 빛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당신에게 파리의 거리를 얼마나 보여 주고 싶었는지 몰라요. 당신을 기다리고, 당신과 함께 그리고 당신을 위해 다시 사랑하기 시작한 파리를 말이에요."



대서양을 오가며 일군 시몬 드 보부아르와 넬슨 올그런의 세기의 사랑. 그 시기에 그들의 사람이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계약 결혼 형태로 사르트르와 법적 부부 관계를 유지했던 보부아르의 또 다른 사랑이 불장난처럼 느껴졌을지 모르겠다. 자유 연예하는 근대적 생활 방식이 광범하게 퍼져 있던 시기라면 대수롭잖은 일로 받아들여졌을 수도 있다.



보부아르가 올그런에게 보낸 편지 묶음인 《연애편지》를 읽으며 그런 것들을 일일이 확인할 동기를 찾지 못했다. 한 여인의 애틋한 사랑의 언어를 주워 담은 것만으로 충분히 내밀한 세상에 침입한 죄과가 있으므로. 이 마당에 사생활이라 할 영역의 복판에 소란을 일으킬 것까지야, 그렇게 생각했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 서간을 대하는 데는 두 개의 시선이 있을 듯하다. 보부아르와 올그런 사랑이 뭇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으리라는 오늘 이곳의 또 다른 상상이 존재한다면 연인에게 자신이 몸담은 파리를 알리고 싶은 마음, 달리 말하면 파리에 투사된 전후사정 등 자신의 일상을 연인과 공유하고픈 마음이 시대상과 거기 기댄 고민의 형태로 당대 최고의 직가이자 철학자의 편지에 필연코 담기리라는 기대가 그것이다. 전자가 통상의 연애편지를 대하는 날것의 상상력이라면 후자는 이 편지에서 정형화되지 않은 당대의 미시사를 만날 수도 있다는 여기의 상상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그 둘 다 이든 상관없다. 오늘 이곳에 20세기 중반 17년의 사적 기록이 기억의 저편에서 걸어 나온 것에 감사할 뿐. 연인 사이의 애틋한 서정과 뜨거운 정념을 압도하는 건 별로 없다는 사실의 확인으로 족하다. 문학이든 사상이든 그것들은 부차적인 문제일 수 있다는 것.



작가 올그런은 미국이 주 생활지였다. 보부아르는 파리를 주 무대로 활동했다. 올그런에 관해서는 널리 알라진 바가 없다. 보부아르는 작가로서의 명성 외에 실존주의 철학자로도 인지도를 넓히고 있었다. 올그런과 보부아르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여러 해 동안 사랑을 나눴다. 보부아르가 소설에 그들의 사랑을 형상화하자 올그런이 크게 화를 냈고 결국 그들은 헤어졌다. 올그런이 심장마비로 급작스럽게 사망하면서 둘의 관계는 영원히 회복되지 못했다. 만남과 이별 모두 극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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