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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책, 또 샀다! 벌써 여러 권. 세상에 이런 일이.

1. 찾으려면 고생문이 훤해서, 2. 산 줄 새까맣게 잊어서

by 콩코드


고개를 갸우뚱하며 책방 계산대로 가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전에 구매한 거 같은데, 싶은 책들이 많아서다. 이쯤 되면 어느 책방에 다니는지 궁금해할 분들도 계시겠다. 책방에선 보통 구매자가 계산대 리더기에 구매자 등록번호(주로 핸드폰 번호)를 입력하면 구매자가 전에 같은 책을 구입한 적 있는지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런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책방이 전무하다고 확신할 수 없으니 아마도 글쓴이가 어느 한적한 시골에라도 사는 모양이라고 짐짓 보위하는 마음이 들 수도 있겠다. 시골 총각이 서학에 눈 떠 한 달에 서너 번 많게는 예닐곱 번 읍내 책방에 들른다는 시나리오는 또 어떤가. 인생역전의 드라마 같은 전개가 이어지면 금상첨화. 어떻게든 한 자라도 더 깨우치려는 시골 총각의 가상한 출사라니. 박수갈채라도 보낼 분들이 속출하시겠지만 현실에서 그런 일은... 거의 없다. 아니 전무하다. 내 장담한다. 개천에서 용 나는 9회 말 쓰리런 홈런은 고사하고, 같은 귀결로 벌떡 일어서선 두 손을 뻗어 환호성을 올리는 장면 역시 보기 드물다. 과연 희대의 어수룩한 농촌 총각이 있을 리도 만무하다. 그런 월요일 아침이다. 부르지 않았는데 때만 되면 꼭 찾아오는 월요일. 직장인에겐 찰싹 들러붙은 거머리다. 처녀 귀신인데 오나○. 총각 귀신이면 한결같이 정종○이다.





기억력 손상?

이미 내 서가엔 같은 책이 적잖이 꽂혀 있다. 구입 간격이 꽤 긴 책은 그나마 봐줄 만한데, 간극이 고작 두 달 정도인 책도 있고 보면 어리둥절한 표정이 드는 거 , 정말 허튼소리 아니다. 대체 한 달에 얼마나 많은 책을 읽는데, 고작 두 달 전에 구입한 책을 기억하지 못하는지 나로서도 의문이다. 우선 의심해 볼 증상, 기억력 감퇴. 그건 아닌 거 같다. 나 이래 봬도 기억력에 관한 한 활화산이다. 한 달 동안 읽는 양이 너무 많아서. 그럴 수 있지만 그 사실 만으로 같은 책이 늘어나는 합당한 이유가 될 수 없다. 꼼꼼히 읽거나 대충 읽기만 해도 어떤 책을 읽었는지 수년 간다. 모른다는 게 불가능하다. 모로 가도 서울 간다는 것, 독서인들이 나름 섬기는 철칙이다. 왜 걸핏하면 산 책을 또 사는지에 관한 이유는 따로 있다.



책방 구매기록 오류?

전형적인 남 탓. 기억력이 흐려졌다는 말이 듣기 싫어 그런가 보다,라는 오해를 살 수 있지만 그래도 그 편이 낫다. 각설하고, 일단 과감하게 혐의를 책방 기록에 두었다. 구매 이력에 일부 누수가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한 뒤였다. 얼마간 증거도 있다. 소송을 대비하는 차원에서 구체적인 증거는 밝히지 않겠다. 쫄지 마시라 그럴 일 없다. (이 부분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하자. 매달 30만 원에서 50만 원의 책을 구입하는데 책방의 개인 기록은 태부족임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 카드 결제 내역에 뜬 도서와 지은이, 출판사 명을 엑셀로 일일이 옮겨 적는 터무니없는 수작업을 감행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책방 홈페이지에 장구한 세월 동안 내가 구입한 기록이 대부분 사라진 것.) 그렇지 않고서야 매번 이 책 구매 이력이 있나요?,라고 묻는 말에 아니요, 처음인데요,라고 답할 수 없다. 점원의 말을 듣고 득의양양해서 그날로 카페에 처박혀 한 삼분의 일 분량을 읽고 나머지는 수 일에 걸쳐 일은 뒤 책장에 꽂아두었는데 몇 달 후 문제의 그 책장 바로 한 칸 밑에 같은 책이 떠억! 위칸에 둔 책과 아랫 칸에 둔 책을 번갈아 보고서도 연신 같은 책이 아니라는 이유를 찾으려는 뇌활동은 또 무슨 경운지?? 이런 일이 한두 번에 그치지 않은 정황이 차고 넘치는데 서가를 정리할 엄두가 나지 않는 건 당연. 거실과 방 곳곳의 책장은 물론이고 창고와 벽 모퉁이, 심지어 신발장에까지 깔아놓고 쌓아 올린 책만 5만 권에 육박한다. 정리하면 그만큼 같은 책을 살 확률을 줄일 수 있다. 그러기엔 대가가 크다는 게 함정. 일주일? 장담하는데 한 달이어도 못 끝낸다. 그래서 해낸 기특한(?) 생각. 생각하기에 따라 고육지책. 아마도 후자가 정답.





현재가치 중시 구매법이란?

같은 책이 집 서가에 있다는 생각이 막연히 들거나 얼마 전에 산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르면 손에 든 책을 내려놓기로 마음먹자 영 뒷맛이 개운치 못하더라는 것. 프루스트의 '가지 않은 길'처럼 이번에 안 사면 나중에 언제 읽을지 알 수 없는데 싶은 아쉬움이 뒷목을 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거기서 착안한 방편이 같은 책이 있으면 또 어떠랴 싶은 심정을 밀고 나가는 것. 그럴 때면 언제 읽을 줄 모르는 책을 지금 읽을 수 있는데 그보다 가치 있는 없다는 자기 합리화로 분기탱천하는 순간이다. 월급날에 자주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두 말할 것 없이 실탄이 풍족한 탓이다. 문제는 사아하냐, 말아야 하나? 사이의 현실적 갈등과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냐, 그렇지 못하냐는 자본주의적 속성이 합치되는 경우가 좀체 많지 않다는 것. 경험으로 치면 연 300권 중 3권 꼴. 이상이 미래가치보다는 현재가치를 중시하는 구매법이라면 책 찾기를 일찌감치 포기한 데서 오는 '자유 부인' 구매법도 있다



자유부인 구매법도 있다!

5만 권에 육박하는 서가에서, 앞서 고백한 것처럼 정리정돈의 '정'자까지도 미치지 못한 서가 상태에서 막 구입하려던 책이 서가에 있는 줄 100% 확신한들 무슨 소용인가. 찾느라 시간 보내고 부산 떠느니 또 사는 게 닛다. 철저히 경험에서 나온 선택이다. 같은 사정에 맞닥뜨리면 자유 부인이 또 다른 상대를 고르듯 두말 안 하고 산 책을 또 살 것, 잘 안다. 그게 정신 건강에 이롭다는 걸 오래전에 알고부터다. 한동안은 정말 고민 많았다. 산술적으로 생각해 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아니 얼마 전에 읽은 책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라면?, 싶은 자괴감을 떡하니 어깨에 올린 상태에서 같은 책을 또 사느니 다른 책을 사면 후생이 늘 텐데 싶은 합당한 계산 속까지 사사건건 속 타는 심정에 불을 질렀다. 사실 몇 달 혹은 1년 전에 읽은 책에 대한 기억이 없는 건 아니었다. 엄밀히 말하면 읽지 않은 책일 경우가 많았다. 지난 글에 설명했듯이 난 대 여섯 권 혹은 열 권을 한꺼번에 읽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며칠에 걸쳐 그 책을 순차적으로 혹은 단번에 구입한다는 뜻이 된다. 그렇게 열 권을 시간을 나눠 읽는 중에 잠시 소파 귀퉁이에 놓거나 의자 위에 올려놓을 수 있다. 그런 책은 눈에 잘 띄지 않아 잊기 쉬운데 이 책이 한 두 장 정도 읽은 경우라면 존재 자체를 새까맣게 잊게 되었던 모양이다. 나중에서야 실물을 보고 아 이 책도 구입했었지, 하는 반가움이 솟구친다. 어, 이 책 최근에 샀는데. 병렬 독서는 다종다양한 분야의 책을 한꺼번에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위와 같이 기억에서 분실되는 단점도 있다는 것, 알아 두시면 좋겠다. 물론 나부터. 특히 시의성 높은 책이라면 그때 읽지 못한 아쉬움이 더 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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