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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모든 것에 안부를 묻다》, 니나 버튼

by 콩코드


우여곡절 끝에 한적한 시골의 허름하기 짝이 없는 농가를 개조한 저자는 그곳을 집필실로 쓰기로 하는데. 한철에 며칠 혹은 아주 길지 않은 날을 시골서 보낼 때는 미처 보지 못한 제법 많은 소리와 소문이 들고나며 오감을 빠짐없이 자극하리라곤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지인 혹은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보내느라 뭇 생물과 이웃하며 살아가는 농가의 심상을 느껴볼 새도 없이 날이 새고 밤이 들이닥쳤을 터다. 이듬해 사람들은 또다시 같은 풍경 안으로 들어가고 나왔다.



잠깐이라도 스미지 않으면 옷은 젖지 않는다. 이곳 허름한 농가에선 부지런히 오가며 부엌을 탐색하던 개미들이 그새 주방 한쪽에 둥지를 틀었고, 그렇지 않아도 삐걱거리는 낡은 지붕 위에서 낮이 이울도록 다람쥐들은 발을 굴렀다. 여우는? 아예 헛간 옆에 굴을 파고 거기 새끼를 낳았다. 거를 타선이 없듯이 그들은 존재감을 뽐내며 대지에 자취를 늘려갔다. 잠행한 저자에게 그전에는 잘 보이지 않던 풍광들이 동공 속으로 세차게 밀려드는 광경이란 가히 경이 그 자체였을 것이다.



생명의 찬가가 자욱하게 펴져가던 그곳에서 저자는 에세이로 된 시를 지었다. 온갖 새와 벌이 처마에 깃들고 집 앞 여울에 물고기가 떼를 지어 유영하는데, 사철 푸른 나무들이 때에 맞춰 열매를 냈고, 바람에 살랑거리는 풀과 화사한 꽃은 농밀한 기운을 실어 날랐으니 이보다 목가적인 순간이 또 어디 있으랴 싶다.



그런 곳에서 시는 가없는 시상으로 날개를 달 터였다. 그러나 시인은 찬탄 일색의 시를 쓰지 않았다. 오히려 과학을 핀셋으로 삼아 들고나는 풍광을 여러 문장에 정갈하게 담았다. “시골집 마당이 조용하게 느껴진 것은 속임수였다. 비록 나는 그 대부분을 모르고 지나쳐 버렸지만 내 주변은 생명체들의 삶과 소통으로 늘 분주했다.” 저자의 외마디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지구상의 삶과 생명에 관해 내가 아는 것은 모두 인간의 알파벳을 통해 나에게 전달된 지식들뿐이다. 내 주변을 날아다니고, 걸어 다니고, 기어 다니고, 헤엄쳐 다니는 생명체들은 그들 나름의 언어, 자연에 걸맞은 언어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글자 그대로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거나, 임시로나마 뿌리를 내리지 않은 경우에는 땅과 견실한 관계를 맺으며 걸어 다니거나 가벼운 몸으로 날아다니고 있을 것이다. 알파벳보다 더 오래된 동물들의 언어를 과연 내가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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