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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오고 있다!

[소설] 사단이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by 콩코드


포착

기온이 영상 8도를 오르내리는 2월 이브날 오후 12시에서 1시 사이, 무 부장이 풍파 소장을 사무실에서 만났다. 무 부장이 불렀는지, 왕 소장이 찾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느 쪽이 먼저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이 자리를 함께 한 사실이 중요했다. 왕 소장이 거북한 말을 건넸는지 무 부장의 대꾸가 시원치 않다. 평소대로라면 호탕하게 답했을 터였다. 한창 둘 사이에 얘기가 오가는 중에 와 과장이 사무실로 들어와 조심하는 모양이라고 와 과장은 생각했다. 그 시각 사무실에 직원은 거의 없었다.



와 소장은 전 사장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사람이었다. 그는 그 전에도 사장 비서실에 근무했다. 역시나 그가 비서실장이던 시절이었다. 그런 그가, 틈만 나면 전 사장에 진절머리가 난다, 고 떠벌리는 무 부장을 찾은 것이다. 앞서 한 명은 사장이 바뀐 뒤 멀리 외곽으로 쫓겨났다. 채용 비리에 연루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했지만, 그는 따로 법의 처벌은 받지 않았다. 다른 한 명은 현 사장 밑에서 별을 잡았다가 나락으로 떨어졌다. 싼 입이 화근이었다. 둘의 공통점은 현 사장에 이를 갈 충분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잠깐 무 부장 얘기를 해보자.



무 부장은 사장이 바뀌면서 들으면 알 만한 요직에 앉았다. 인사 발표가 났을 때였다. 다들 수군거렸다. 무 부장이 그 자리에 앉을 만한 위인이 못되었기 때문이다. 아무 때나 생각 없이 하는 말버릇이 기어코 일을 냈다. 그가 한 말 한마디로 사장이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한 번이라면 어떻게든 고쳐 쓰겠지만 그 다음에도, 또 그 다음에도 그는 거듭 말실수를 했다. 그때마다 여럿이 등에 비수를 맞았다.



1차 좌천. 변명의 여지 없이 무 부장 잘못이었다. 2차 좌천. 어떤 이유에서 또 좌천되었는지 와 과장은 굳이 알아 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무 부장은 사장을 탓했다. 자신의 원대한 기획을 사장이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게 이유였다. 험한 말 때문 아니었어? 본인이 잘못해 놓고 누굴 탓해. 와 과장은 무 부장의 후안무치한 태도에 진절머리가 났다.





징후

2차 좌천 후 무 부장은 사장 안티가 되었다. 노골적으로 의사를 내비치고 자주 사장에 반기를 드는 말을 떠벌렸으리라는 건 이 구역에 있는 사람이라면 다들 알았다. 이른바 전 사장 계열, 곧 안티 현 사장 사람들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현 사장 취임 후 와 과장은 줄곧 여러 경로를 통해 전횡을 일삼은 전 사장 계열 사람들을 ‘빠짐 없이’ 엄벌해야 기강을 세울 수 있다고 말했다. 혹 누군가 이쪽에 줄을 대 빠져나간다면 현 사장의 세력이 약화되었을 때 그들이 후일을 도모할 빌미를 줄 거라는 우려 또한 전달했다.



최근들어 일부 잔당들이 공공연히 사장에게 반기를 드는 모습을 심심치않게 목격한 터라 와 과장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직감했다. 그랗잖아도 촉각을 곤두세우던 차에 전 사장의 비서실장을 지낸 왕 소장이 무 부장을 찾다니 의심을 사고도 남맜다. 다시 말하지만 무 부장은 현 사장 밑에서 설화로 좌천된 인물임에랴. 잘 했으면 고속승진이 따논 당상이었을 그였다. 가슴에 응어리 진 무 부장을 왕 소장이 찾았다면 위로를 넘어 동병상련의 마음을 나눴을 개연성이 크다. 형식은 그저 인사차 들른 모양새였지만 굳이 그들이 직원들이 없는 틈을 타 만날 까닭은 어디에도 없었다. 와 과장이 사무실에 들어오고 몇 분 후 왕 소장은 와 과장을 알은 채도 하지 않고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왕 소장의 걸음걸이가 무척 어색했다. 와 과장은 몇 해 전 일을 빠르게 기억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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