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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렌] 법인카드 무단사용

회삿돈 물 쓰듯 새 나가. 근절 방법 있다!

by 콩코드


- 특히 부장을 포함한 과장들이 자기 돈으로 밥을 사먹지 않고 법카로 해결하는 게 대표적.
- 그렇게 사적으로 법카를 사용하고도 버젓이 ‘직원 격려’라고 문서 꾸며.
- 법카 사용 승인 문서에 참석자 명단을 기재하지 않는 점을 악용한 것.
- 그 외 저녁 술자리서조차 과장들과 법카 긁어 술값, 안주값 해결. 역시나 직원 격려’라는 미명 아래.
- 점심값, 저녁값에 줄줄 새는 회삿돈. 이대로 방치해도 되나? 근절할 방법이 있다!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난다.


기왕에 쓸 거면 통 크게 쏜다는 인상을 주어야 한다. 무 부장은 오늘도 법카를 보란 듯이 긁었다. 한도 최고액이다. 카드 단말기가 연신 드르륵 드르륵 소리를 내며 결재 품목과 가격을 적은 영수증을 토해낸다.



무 부장은 영수증을 살뜰히 챙겼다. 그 영수증으로 업무추진비 사용을 증빙할 계획이다. 사용 승인 문서는 알아서 직원이 꾸며 줄 터였다. 언제, 어디서, 얼마를, 무슨 이유로 썼는지만 기록하면 되는 문서. 문서엔 그 자리에 누가 참석했는지 실명이 거론되지 않는다. 하다못해 ‘과장 ○ 명과 함께’ 라는 글귀조차 찾아볼 수 없다.



직원 격려 식대 지급의 건
금액 ○○○○○○원
일시 ○○○○. ○○. ○○.
장소 목구멍으로넘어가든
대상 ○○부장 등 ○명
지출 카드결재



법카 사용 목적은 달랑 ‘직원 격려’가 전부다. 부장 편에선 과장이든 직원이든 너나 할 것 없이 직원인데 뭘 좀스럽게 그러시나, 라고 되물을 사람 있을지 모르겠다. 직책 있는 과장과 평사원을 구별하는 건 상례인데 이젠 구별 없이 쓰는 게 대세라는 말이라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실제 그런 식으로 답변하리라 100% 장담한다. 일단 우기고 통하면 다행, 안 통하면 다음으로 넘어간다. 이 구역의 몹쓸 생존법이다.



장사 한 두 번 해봐?



거나하게 법인 카드를 긁은 어제도 무 부장은 올라온 문서에 시원하게 결재했었다. 그렇게 오늘도 유감없이 눈먼 돈이 가시 하나 남김없이 발린 채 밥이 되고, 고기가 되고, 술이 되어 뱃속으로 들어오니 마냥 좋기만 하다. 무 부장은 영수증을 챙겨 식당 문을 나섰다. 승인 요청 문서에 붙여야 할 영수증이다.



나원, 요식행위일 뿐인데, 매번 붙여야 해?

(다 알면서)



무 부장이 씨익 웃어 보였다. 밖으로 나온 무 부장을 기다렸다는 듯이 과장들이 반갑게 맞는다. 밥을 먹었고 법카를 긁었으니 이것으로 끝? 중요한 대목은 지금부터다.





생존 문법: 생색내기와 비위 맞추기


과거엔 문밖으로 나온 부장이 하는 제스처가 있었다. 그 시절 부장은 법인카드가 자기 소유 카드라도 되는 양 우쭐댔다. 자, 보시게나. 내가 밥을 쏘았다네. 요즘엔 그 돈이 어디서 나는지 잘 아는 과장들에게 생색내기가 목에 걸린 가시처럼 불편하다. 예전에 내가 사지, 하고 과장들을 대동하고 고기와 술을 먹고 마시며 당당하게 법카를 긁었었다. 과장들은 부장의 한량없는 은총에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제법 폼나는 시절이었다, 고 무 부장이 되뇌인다. 세월이 흘러 법카의 무분별한 사용에 일침을 가하는 기사들이 심심찮게 등장했다. 또 언제 도매금으로 몰려 일일이 법카 사용 기록을 내야할 지 모를 일이었다. 과장들에게 공이 넘어갔다.



개중엔 부장의 위신을 세워주어야 한다고 믿는 과장들이 꽤 있다. 정확히 말하면 반대하는 과장은 거의 없다. 눈치껏 부장 앞에 도열한 과장들이 일제히



부장님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라고 외쳤다. 이번엔 부장이



뭘 그깐 걸 갖고....,

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그거면 되었다. 상하의 도리가 꽃피운 이렇듯 ‘알흠다운’ 세상이라니. 파라다이스다. 천국이다. 생색내기와 비위 맞추기의 끝판왕이다.



업무추진비는 과장들 밥 사주라고 편성된 예산이 아니다. 열심히 일한 직원들 고생했다고 밥 한 끼 사준 건데 뭘 그리 야박하게 구느냐, 는 소리를 하고 싶으면 정말 직원들을 위해 쓰고나서 그런 말을 하라고 해주겠다. 넓게 보면 과장도 부장의 직원이라는 하나 마나 한 변명을 늘어놓지 말고 말이다. 멀리 갈 것 없다. 주로 누구를 위해 법카를 긁었는지 돌아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가물에 콩 나듯 직원들에게 밥 사는 속 보이는 행동에선 켕기는 게 없지 않았나 싶은 의구심마저 인다. 혹 직원들이 과장들과 밥이나 먹는 용도로 부장이 업무추진비를 쓰는 게 온당하냐고 이의를 제기할까 겁이라도 집어 먹었나? 그러고도 무안하지 않으면 ‘사람 새끼’가 아니다. 순수하게 직원들만을 위해 법카를 사용했다면 그 횟수를 따로 과장들과 밥 먹고 법카 긁은 횟수와 견줘보자. 과연 직원들을 들러리, 혹은 면피용으로 내세웠을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법카 부당 사용 백태


엄밀히 따져서 업무추진비는 직원들 밥 사주라고 주는 돈이 아니다. 발상부터가 틀렸다. 그런 용도라면 떳떳하게 제 돈 주고 밥을 먹는 게 옳다. 적절히 쓸 데를 찾지 못했으면 업무추진비는 회사에 반납하는 게 맞다. 쌈짓돈 다루듯 과장들 밥 사주고 생색내는 용도로 업무추진비를 사실상 유용하고도 부끄러울 줄 모르는 행태가 개탄스럽다. 업무추진비는 누군가의 주머니에서 쥐어짠 돈이다. 어떤 식구의 생계비다. 피다. 피같은 돈이다. 함부로 굴릴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법카 부당 사용 실태를 정리한다.

1. 부장이 과장들에게 점심을 쏜다.
2. 비용은 법카로 긁는다.
3. 문서엔 ‘직원 격려용’이라고 쓴다.
4. 진짜 직원에겐 가물에 콩 나듯 점심을 쏜다. 혹 직원들이 과장들에게만 밥 사는 게 말이 되냐, 라고 따지면 곤란할 일이기에.
5. 부당 사용에 대한 여론이 아무리 들끓어도 부장은 과장들에게 점심을 쏘고, 저녁 술을 쏜다.
6. 기록엔 법카 사용 현장에 참석한 사람의 실명이 오르지 않으므로 언제나 법카 사용 후 직원 격려용이라고 쓰면 된다.
7. 그 부분에 관한 악용이 반복된다.
8. 회삿돈이 줄줄이 샌다.



부당하게 법카를 사용한 뒤에 그 부분을 감추려고 문서를 허위로 작성하는 해괴한 일 반복되는데도 제재할 방법이 정말 없었을까? 회삿돈이 줄줄이 새나가는데 이를 막을 장치라고는 전혀 없는 것일까? 예산남용이나 전용, 유용은 엄격하게 다루어야 한다. 남의 돈에 함부로 손을 대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조치다. 회삿돈은 말할 것 없고 국민이 낸 세금으로 조성된 돈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언제 어디서 어떤 용도로 법카를 썼는지만 기록하는 현행 문서로는 ‘절대로’ 법카의 부당 사용을 막을 수 없다. 누구와 밥을 먹었든 법카 용처에 ‘직원 격려용’이라고 쓰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부당 사용자에게 면죄부가 되는 현실이라니. 이래선 누가 봐도 업무추진비가 부장의 씸짓돈, 맞다. 법카는 마르지 않는 개카(개인카드)다.



근절 대책: 실명 기록


예산 남용을 부추기고 도덕적 불감증을 조장하는 현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앞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문서에 누구와 식당에 갔는지 참석자 실명을 기록하게 하는 것이다. 업무추진비는 내부용일 터이므로 정상적이라면 주 사용 대상이 부장과 과장, 직원이었을 것이다.



이 방법은 외부인에게 밥을 사고도 직원 격려용이라고 문서를 작성할 유인을 막을 것이다. 직원 눈치 보여 이런 방식을 사용할 부장이 있을까 싶기는 하다. 부장이 눈에 띌 정도로 많이 과장과 밥을 먹고도 매번 ‘직원 격려용’이라고 쓸 빌미를 제공할 일 역시 없을 것이다. 그와 같은 변화가 현실화하려면 상당 기간이 지나야 할 것이다.



부당 사용을 막기 위한 단계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핀셋 감사를 추천한다. 앞에서 밝혔듯이 현행 법카 사용 수준은 쓸 데가 뻔하다. 시간이 지났다고 법카를 긁은 자리에 누가 참석했는지 모르기란 힘들다. 과장 대 여섯, 부서 소속 직원들 여남은 명과 줄곧 먹었을 가능성이 높은데 누가 참석했는지 알 수 없다는 건 발뺌으로 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필요하면 직원 대질로도 금방 알 일이다. 거기까지 가지 않기를 바란다.



부당 사용 근절책


현단계

1. 일단 전면 감사에 착수한 후 주기적으로 감사한다.

2. 법카 사용 후 작성한 문서를 받는다.

3. 문서와 별개로 사용 당일 참석자 실명을 받는다.

4. 부당 사용이 확인될 경우 엄중 처벌한다.


향후

1. 문서에 참석자 실명을 적게 한다.

2. 그것으로 충분하다.



근절 방법은 누구나 안다. 의지가 없어서 실행하지 못할 뿐이다. 소중한 회삿돈이 개인 쌈짓돈으로 악용되어선 안 된다. 이건 도덕적으로 옳지 않을 뿐만 아니라 법적으로도 문제가 있다. 문서를 허위로 꾸미고 해당 문서를 제출해서 사후 사용 허락을 받았다면 이는 '허위 문서 작성 및 동행사'에 해당할 수도 있다. 도덕적 비난의 대상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법카의 부당 사용은 누누이 지적되어온 바다, 독소처럼 퍼져 더는 감당할 수 없는 지경 이르기 전에 수술대에 올려야 한다. 곪아터진 환부는 도려내는 것이 이롭고, 걸음마 단계의 아이에겐 엄마라는 의지하기 좋은 수단이 필요하다.



* 글에 등장하는 회사는 어떤 회사일까?아실 만한 곳이다.


* 덧붙임: 위 부장은 과장을을 대동하고 2주 주기로 본부장에게 점심을 산다. 결재 수단은 당연히 법카다. 조선시대 하인도 아니고 윗사람의 점심을 부서에서 돌아가며 챙기는 습속은 현안을 다룬다는 미명 하에 계속된다. 밥 먹는 동안 오가는 대화는 한담일 뿐이다. 속칭 그런 식의 '짬짜미'에 회삿돈이 줄줄 새는 것도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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