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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 기약 없는 약속; 러브 팩추얼리

러브 팩추얼리

by 콩코드


1. 우선순위

헌책을 고르는 나름의 기준은 이런 것. 평소 읽고 싶었던 책 중에서 보관 상태가 나무랄 데 없을 경우, 원픽. 논쟁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면 가점 쾌척!. 간혹 덜 피곤한 책을 읽어볼까, 싶어 방향을 선회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책을 고르는 기준은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평소 읽고 싶은 책’은 미리 인터넷 서점을 찾거나 페이스북 등에 올라오는 책 소개 등을 참조하고 헌책방에 주기적으로 들러 소장해야 할 책을 선별해서 구입 대상 도서 목록에 올려놓습니다. 그렇게 올려진 도서 목록을 우선순위에 따라 분류한 뒤 한 권씩 구매합니다. 때에 따라 두세 권을 한꺼번에 구입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헌책방 외의 루트를 통해 구입하는 책들이 꽤 되고, 기존에 읽고 있던 책의 양도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기에 그렇습니다. 일주일에 대여섯 권을 손에 들었다 놓았다 한다고 보면 틀리지 않습니다.



2. 어떤 독서법

여러 권을 동시에 읽는 독서 형태는 수 십 년 전 일본의 모 작가가 쓴 《한꺼번에 10권 읽기》에 빚지고 있습니다. 표제는 그보다 훨씬 정제된 용어를 사용했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그 일본 작가는 대단한 독서광으로 청년기에 들어 워낙 많은 책을 읽었고, 읽은 책을 방과 마루에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통에 집이 무너질까, 걱정했다는 일화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그의 독서법을 잠깐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여러 권을 한꺼번에 읽으면 머릿속에 잘 정리가 안 될 것 같지만 우리 두뇌가 그렇게 형편없지 않다고 합니다. 과학적 근거도 지세한 걸로 기억하는데 역시 정확한 기억은 아닙니다.



그가 내세운 근거를 대충 정리하면 뇌엔 기억 창고라는 방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 예컨대 두뇌가 입력된 책의 분야는 물론 세부 디테일한 내용까지 분류해서 각각의 저장 창고에 넣어둔다는 것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특정 주제나 소재에 관해 글을 쓰려고 한다면 이번엔 재빨리 분야별로 저장된 창고에서 관련 주제와 소재를 불러와 한 편의 잘 짜인 시나리오처럼 각 분야의 특정 주제와 소재가 상호 연결된 그럴듯한 초본을 만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더 정교하게 만드는 건 글을 쓰는 사람의 몫이겠지만 말이죠. 아무튼 두뇌가 그와 같은 기능을 한다면 엉킬 걱정 없이 여러 권을 한꺼번에 읽어도 상관없다는 논리가 가능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작가의 말이 솔깃하게 들립니까? 그는 자신이 선정한 책 10권을 돌려가면서 읽었고 여러 분야에 관한 책을 그야말로 아무 무리 없이 여러 권 썼습니다.



3. 읽은 책을 다시 구입하는 이유

그의 독서법을 따라 하면 처음엔 진도(?)가 턱 없이 안 나가고, 뭘 읽었는지도 도통 모를 혼란에 빠집니다. 익숙해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십수 년 동안 저도 같은 방법으로 책을 읽고 있지만 크게 무리가 없었던 듯합니다. 전에 없이 읽은 책을 또 구입하는 혼선이 있기도 하지만 그 정도는 애교로 봐줘도 무방할 수준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이 부분은 한 권을 다 읽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문제와 무관치 않은데 같은 경우 외에 개인 서가에서 해당 책을 찾는 데 걸리는 시간이 워낙 큽니다. 개인적으로 도서 보유량이 1만 여 권을 넘어서면서 전통 방식에 따른 분류는 엄두를 못 내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5만 권에 육박합니다. 오래전에 읽은 책을 찾기가 사실 녹록지 않고 찾는다고 해도 거기에 든 시간과 비교하면 재구입하는 게 훨씬 이득이라는 계산도 가능합니다. 그러니 무턱대고 위 독서법의 후유증 탓으로 돌리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위 독서법은 관심 분야의 책을 다층적으로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철학, 경영, 경제, 문학, 예술, 심리, 사회, 여행, 과학 분야의 책을 한꺼번에 읽을 수 있습니다. 보통의 경우라면 철학책 한 권을 전부 읽은 뒤에 경영서로 넘어가야겠지만 이 독서법에서는 그럴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장점과 단점을 견줘 적절히 변용하면 꽤 괜찮은 독서법이 될 거 같기도 한데 여러분에겐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본의 아니게 글의 제목과 달리 독서법을 장황하게 설명하고 말았습니다. 쓰려던 글로 돌아가겠습니다.





4. 러브 팩추얼리

《러브 팩추얼리》는 논쟁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첫 장부터 거침없이 불륜을 입에 올리고 곧장 그 사례를 좇습니다. 불륜은 상대자는 물론이고 주변인 누구에게나 불편할 수 있는 주제입니다. 그렇다고 마냥 피하고만 있을 주제도 아닙니다.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기혼 남성 중 50% 이상이 불륜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여성 기혼자는 그보다 낮은 18%가 같은 경험을 했다고 하고요. 드러나지 않은 수치까지 포함하면 비율은 훨씬 많이 증가할 거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입니다. 찾아보지 않아서 모르겠는데 우리는 어떨까요? 미국의 경우보다는 낮겠지만 아주 많이 낮지는 않을 거 같습니다.



오래전에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참새가 방앗간 가듯 들른 헌책방에서 다시 같은 책을 보았습니다. 그날도 그 후에도 어떤 주제를 다루었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막연히 읽어야 할 책으로 뇌리에 각인된 경우가 이 책 말고 더 있었는지도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저의 도서 구입 패턴에 따르면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 책을 제 나름의 도서 구입 패턴을 거친 책으로 믿고 구입한 경위를 지금도 알 수 없습니다. 더욱이 예상치도 못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니 제 관심사와 동떨어진 데 놀랐습니다. 이 주제 외에 읽을 책이 산더미같이 쌓인 현실에 비춰서 말이죠. 이런 경우 옛사람들은 뭐에 홀린 거 같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정말 홀린 듯 이 책을 읽고 있습니다.



논쟁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내용에 편향이 없는 것이 첫 번째로 주목할 만한 부분입니다.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경로를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이 하는 말을 가감 없이 기록한 것도 돋보입니다. 화자가 주저 없이 자신의 입장을 밝히거나 불륜에 관한 견해를 드러내는 데 저자의 역할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는 것도 알 만합니다. 예를 들어 저자는 화자가 답변 철회를 요청하면 글 전체의 구도를 좌우할 중요한 가닥이 답변에 담겼다고 해도 바로 답변을 지울 정도로 화자의 입장에 서서 인터뷰를 진행했고 거기서 장차 독자가 될 그들에게 신뢰를 얻었습니다. 완성된 이 책을 통해서는 또 다른 유형의 독자를 확보하는 데 성공하고 있죠. 제가 바로 그 실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문체가 남다릅니다. 주제를 풀어가는 솜씨가 마치 이야기를 주고받듯 친근해서 과연 내가 읽는 이 부분이 여전히 논쟁의 한복판에 있는 그 주제가 맞나 싶을 정도입니다. 특히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통계 수치를 인용할 때 저자가 쉽게 빠지는 돌연한 문체 변화가 이 책에선 감지되지 않습니다. 다른 말로 학술논문을 대하는 듯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덕에 전혀 다른 배경의 사람들이 들려주는 경험담에 독자를 빠져들게 하는 부수입을 얻습니다. 이 경우 현장감은 묵직한 팁이 될까요?



5. 경험

지인이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한 번 빠져들면 헤어날 길 없을 거라고요. 세계관이 같은 그 사람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고도 했습니다. 배우자와도 같은 세계관, 가치관, 목적의식에서 같은 지점을 발견하고 사랑에 빠졌을 텐데 그땐 틀리고 지금은 맞는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요? 자신은 변한 게 없는데 배우자가 변한 걸까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역시 오래전 일입니다. 언론이 일제히 '100세 시대'를 외치던 그때 일각에서 그렇다면 한 배우자와 7,80년을 같이 사는 건 너무 큰 욕심 아니냐는 말이 돌았습니다. 서로를 위해서도 지겨운 결혼 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배우자와 남은 생을 같이 하는 게 훨씬 건강하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누군가에게는 혹하게 들렸을 그 말들이 자취를 감춘 이면에 경제적인 이유가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닙니다.



부양을 받지 않고 자강할 수준의 경제적 여유를 갖는 건 보기보다 힘듭니다. 금전적 차이가 세대별로 유난한 시대에 불륜의 양태 또한 세대별로 적잖은 차이가 있을 것으로 관측됩니다. 아무래도 30대의 불륜과 4,50대의 불륜의 층위나 행태가 을 순 없겠지요. 그 모든 불륜을 뭉뚱그려 '성격 차이'가 빚은 결과라는 단정은 사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면이 있습니다. 과거와 비교해 확연히 이혼 가정의 비율이 높고



2시로 예정된 회의가 시작되었습니다. 4시간 후에 이어 쓰겠습니다.



인용한 사진은 불륜과 전혀 관련 없습니다.

사진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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