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완 콘서트가 방금 전 오후 8시에 끝났습니다. 현재 시각 8시 16분이고요. 혹 김창완 님이 나오실까 싶어 로비에서 기다리는 중입니다. 들리는 소문에 요즘엔 사인회를 갖지 않는다는데...... 까지 썼는데 직원분이 말씀하네요. 오늘 사진 촬영은 하지 않습니다. 아쉬운 발걸음을 돌립니다. 그래도 충분히 즐거운 공연이었습니다. 식당에 와 있습니다. 콘서트장 분위기와 공연 내용, 후기 등을 이어 쓰겠습니다.
관록의 무대
가수로 잔뼈가 굵은 김창완이지만 늘 오르는 무대라도 나름의 기복이 없지 않았던 듯합니다. 긴 간주가 끝난 후 보컬이 사운드를 뚫고 나와야 하는 시점에 김창완의 목소리가 사운드에 묻히는 실수가 나왔습니다. 무슨 경우인가 싶어 제가 다 자세를 곧추세우게 되더군요. 한 소절이 끝나고 보컬은 이내 안정을 찾았습니다. 완성도 높은 음악을 추구하는 그 답지 않은 순간에 그도 당황했던 모양입니다. 곡이 끝나고 막간에 목소리가 잠긴 까닭의 일단을 내비쳤습니다.
전날 부천에서 공연이 있었답니다. 전국 투어 콘서트를 진행하는데 연이틀 연속 공연은 아무리 내로라하는 가수라도 무리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라면 가수도 나름 계획을 세우지 않을까 싶습니다. 수위 조절 같은 거 말이죠. 공연 안배를 위한 계획은 그렇지 못해 공연이 취소되는 최악의 경우, 곧 관객과 '헤어질 결심'보다는 훨씬 나으니까요. 공연 안배를 한다고 가수가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고 오해할 필요는 없을 거 같습니다. 제 의도도 그게 아니고요. 공연을 보러 온 관객에 대한 일종의 배려라는 치원에서 접근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게 제 생각입니다.
기왕이면 연속 공연이 없게 공연 일정을 짜는 게 좋겠죠. 하지만 대관 등의 여건이 녹록지 않은 경우를 저도 적잖이 보았습니다. 콘서트를 유치하려는 지역의 열망을 고려하면 연속 공연이 불가피한 상황이 종종 있을 것도 같습니다. 자, 공연 계획이 섰으니 이젠 무대에서 잘만 내려오면 되겠습니다. 아니라고요? 네, 변수는 또 있습니다.
관객의 열화와 같은 호응
이번에는 관객이죠. 관객의 반응이 예상을 웃돌면 아무리 위처럼 작정한 가수라도 혼을 그러 잡고 있기가 쉽지는 않을 겁니다. 멍석 주변으로 관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감격하겠지요. 여기에 관객들의 호응이 천장을 뚫을 뚫을 정도라면 당초 계획은 계획이었을 뿐이라는 말이 절로 실감 날 겁니다. 그때부턴 정말 방방 뜨게 되지 않을까요? 한창 내한 공연 중인 외국 유명가수들이 한국 관객의 떼창을 듣고 영혼이 탈탈 털리는 장면을 우린 많이 보았습니다.
전날 부천 공연을 마치고 목이 완전히 잠겨 내심 오늘 공연이 걱정되더라는 얘기를 티 에스 엘리엇의 경구에 비춰 정말 그답게 풀어갔습니다. 중음의 목소리가 관객석으로 퍼져가는데 관객들 표정이 다들 넋을 잃은 듯 몽롱하더군요.
세월이 곰삭은 맛
김창완의 창법은 독특하기로 유명합니다. 처음 그가 지금과 같은 창법으로 부르자 평단이 크게 갈렸죠. 기존 가요에 익숙했던 대중은 동요 같다고 평가절하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김창완은 일종의 하우스 밴드를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시절이 얼마간 흐르고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활기를 띠자 김창완 밴드의 음악성을 재조명하는 분위기가 일었습니다.
지금도 김창완은 노래를 덤덤하게 부릅니다. 기름기 빼듯 기교를 완전히 걸러낸 것도 매양 같습니다. 곰삭은 맛을 내는 곰국에 비유하면 처음 국물을 떠먹었을 때와 맛과 잠시 뒤 다시 퍼 올린 국물 맛이 사뭇 다르죠. 끓이면 끓일수록 곰삭은 맛이 나기 때문입니다. 며칠 후에 팔팔 끓여낸 곰국은 또 다른 맛을 내기 일쑤입니다.
김창완 밴드가 가요계에 모습을 드러낸 후 수십 년이 흘렀습니다. 그 시절 동안 김창완 밴드가 얼마나 많은 연주를 하고 얼마나 많이 노래를 불렀을까요? 그럼에도 관객은 전혀 질려하지 않았습니다. 같은 곰국이라도 끓일 때마다 매번 다른 맛을 내듯 김창완 밴드의 노래에 세월이 깃들고, 이야기가 쌓이고, 팬에게 곁을 내주면서 더 깊어진 때문일 겁니다. 감정을 최대한 들어내 무척 담백해진 노래엔 관객의 감흥과 추억이 켜켜이 쌓입니다.
가수의 곡 해석을 단순히 이식하던 데서 관객이 직접 노래에 감정이라는 색을 입히는 과정에서 몰입도는 극강을 향합니다. 김창완 밴드가 그걸 노렸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단, 그런 효과가 극대화한 점에서 김창완 밴드의 롱런이 예감되었던 거지요. 한층 여유로워졌던 것도, 등을 토닥거리는 느낌이 한결 더해진 것도 그런 이유에서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린 봄날을 사뭇 다르게 기억하는 거 같습니다. 누구에게는 별빛 가득한 날로 기억되는 반면에 또 다른 누군가는 잔인한 닐로 기억하기도 하니까요. 우린 꽃구경 나왔다고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요? 노래로 기득 한 꽃놀이 말이죠."
나는 지구인
김창완 밴드는 다채로운 노랫말과 음유 시인의 그것처럼 잔잔하고 때로 뇌우를 동반하더라도 기조는 사뭇 평온한 노래를 들려주며 관객의 등을 토닥이고 가슴을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그런 시간이었죠. 공연 2시간이 속 깊은 위로와 느꺼운 가슴으로 가득 찼습니다. 주변 여성들의 흐느낌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죠.
마지막으로 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자주 무대에 오르겠다고 일성을 발한 김창완 밴드에겐 특유의 뚝심 같은 게 느껴졌습니다. 그런 뚝심이 시절을 거슬러 서유럽에서 인정받은 걸 텝니다. 과거 산울림의 1,2,3집이 스페인에서 새로 발매된다고 하더군요. 김창완 밴드 다운 색채와 미감이 돋을새김 된 초기 음반이 유럽에서 명반의 지위에 오를 날도 머지않은 듯보입니다.
백미는 김창완 밴드가 신곡으로 소개한 '나는 지구인이다'라는 데 일말의 의구심도 안 들더군요. 테크노 음악이 가미된 신곡은 한결 몽환적인 색채를 드러내며 그이의 말마따나 사회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장해 우리를 지구적 차원에서 책임 있는 존재로 부르고 있다는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과연 김창완 밴드'라는 말이 빈말이 아닌 이유가 그와 같은 실험성에 닿아 있음을 실감하게 해 주었죠. 이를 확인한 관객들이 김창완 밴드를 연호하기를 주저하지 않은 이유도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객석을 꽉 매운 수 백 명의 관객은 한결같은 마음을 부여잡았습니다. 서로의 곁에 있어 달라는 주문이 환청처럼 오래 무대와 객석을 떠돌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