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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하, 그 물 건너지 마오.

탄식의 다리(이탈리아), 통곡의 다리(한국), 비탄의 벽(이스라엘)

by 콩코드


다리가 상징하는 여러 층위의 고통이 있다. 그 거리를 쓸고 다니는 비탄의 정서도 그중 하나다. 통곡의 날이면 세상은 게으른 기지개를 켰다. 광장 저쪽에서 새들이 날아오른다.




탄식의 다리 - 이탈리아


베네치아 공화국 당시 중범죄자와 정치범, 배교자 재판은 최고 권력 기구인 10인 위원회가 맡았다. 이들 재판은 두칼레 궁전에서 열렸다. 거기서 피고가 무죄 판결을 받으면 피고는 두칼레 궁전 정문으로 걸어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유죄 판결을 받으면 피고는 두칼레 궁정과 프리지오니 누보를 잇는 다리를 건너야 했다.



다리 끝에서 감옥이 피고를 기다렸다. 다리를 건너면 피고는 더는 베네치아의 아름다운 풍광을 볼 수 없을 터였다. 깊은 탄식을 뒤로하고 피고는 컴컴한 지하 감옥에 갇혔다. 그 후 사람들은 이 다리를 '탄식의 다리'로 불렀다. 탄식의 다리는 베네치아의 두칼레 궁전과 프리지오니 누보를 잇는 다리로 1600년에 건설되었다.



일상에서 빈번히 마주치던 사람들이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더는 그들과 함께 할 수 없는 이별의 때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의 순간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더는 그들 곁에 다가설 수 없을 거라는 자괴감과 거기서 비롯되는 상실감의 크기가 클수록 일상과 비일상의 괴리감은 더 벌어진다. 곁을 내주던 것들이야말로 소중한 것이었다는 인식은 왜 자주 늘그막에야 깃드는지.



대충 넘겨짚어 일상이 반복되리라고 믿는 건 대단히 순진한 생각이다. 일상을 톺아보거나, 적어도 낯설게 읽을 수 있어야 비로소 그 일상의 배면, 가치가 돋을새김처럼 부각된다. 정말 애쓰지 않으면 일상을, 그 소중한 가치를 잃고 만다. 탄식은 일상을 스스로 압류한 자들의 턱없이 높은 감옥이다.



덧붙인다. '탄식의 다리'는 소매치기가 많기로 유명하단다. 정말 통곡할 일이다.




통곡의 다리 - 한국


논산훈련소에서 사격장, 각개전투장, 수류탄 교장 까지는 거리가 워낙 멀어 훈련병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지쳐버리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집 떠나 울적한 마음에 훈련 강도마저 세게 느껴지니 훈련생들 심정이 오죽했으랴. 훈련소에서 각 교장으로 가기 위해선 다리를 건너야 했다. 훈련을 끝내고 막사로 돌아올 때에도 반드시 거쳐야 하는 다리였다.



기한이 정해진 훈련 기간이라도 훈련병들에게 낯 설고 물 선 곳에서의 훈련이란 고될 수밖에 없다. 녹초가 되어 막사로 돌아오는 그 길이 훈련병들에게 하루를 마감하는 안도의 길이었다면 아침나절 다시 그 길로 나서며 건너야 하는 다리는 훈련병들에게 언제 끝날지 모를 고통이 다시 시작되는 지독한 신호였을 것이다. 훈련병들은 그 다리를 '통곡의 다리'라 불렀다. 다리의 정확한 명칭은 소룡육교로 호남지선 논산방향에 있다.



낯선 환경에 던져지는 기분은 설명할 길이 없다. 설명할 수 있다면 이미 낯선 것이 아니기에. 앞으로 어떤 일이 닥필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언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관한 걱정에서 '낯선'이라는 형용사는 감당하기 버겁다. 처음 경험하는 일이라면 극도의 공포감마저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애써 태연한 척 하지만 이미 골이 깊게 팬 표정을 감추기란 어렵다. 장래는 물론 현재마저 예측가능하지 않을 때 혼돈이 극에 달하는데 훈련병들이 그런 일상을 매일 달고 산다고 보시면 된다.



병역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남들도 다 하는 복무라며 입소했건만 연병장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마치 딴 세상에 온 느낌. 처음 맞닥뜨린 막막한 벽 앞에 무너지는 게 당연하다. 평생 보이지 않을 것만 같았던 눈물이 쏟아지는 것도 그때다. 울컥 솟구치는 울음을 참으며 화장실로 달려가던 일이 몇 번이었는지.



하지 않아도 될 경험을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이 땅의 훈련병들에게 이런 말은 하지 않을 작정이다. 다들 겪는 일이라거나 결국 다 지나갈 거라는. 경험은 조언으로 치유되지 않는다. 겪고 넘어서야 비로소 치유되는 것이다. 디시 겪지 않을 단 한 번의 고통이라면 누구도 통곡을 피할 수 없다.




비탄의 벽 - 이스라엘


디아스포라의 시원.



이어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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