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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과 바람 사이, 파리를 걷다

무너진 기억 위에 새겨진 빛, 그 길 위의 사색들

by 콩코드



8장. 노트르담과 센강, 재 속에서 피어난 신의 건축


센강은 언제나처럼 묵묵히 흐르고 있었다. 수많은 시간과 발자국을 지나온 듯한 고요함이 물 위를 감싸고 있었다. 나는 파리의 숨결을 가장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그 강가에 서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물결 위로 반사된 햇살이 내 눈을 간질였고, 수면 위로 내려앉은 새들이 바람의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처럼 보였다.


걸음을 옮길수록, 내 시선은 어느새 하나의 건축물로 이끌렸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석조의 몸체, 고딕 양식의 장중함이 묻어나는 아치와 첨탑. 불길이 휩쓸고 간 뒤에도 여전히 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이 내 앞에 있었다.


성당은 단지 돌과 유리, 철로 지어진 구조물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누군가의 기도와 고통, 찬란한 축복과 깊은 상처가 층층이 쌓여 있었다. 내가 마주한 것은 건축이 아닌, 기억의 덩어리였다. 무수한 사람들이 같은 위치에서 같은 감정을 공유했을 것이다. 그 하나하나가 이 건축물에 층을 만들고, 깊이를 부여했을 것이다.


멀리서 바라볼 때와는 또 달랐다. 성당 가까이에 다가가니, 섬세하게 새겨진 성인들의 조각이 마치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무표정하게 천년을 서 있었지만, 그 눈빛은 분명 어떤 말을 건네고 있었다. 침묵으로만 전해지는 목소리는, 때때로 말보다 더 뚜렷했다.


불이 난 해 봄, 뉴스 속에 비친 붉은 화염이 얼마나 참혹했던지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하늘을 가르던 첨탑은 그대로 무너졌고, 석조 지붕은 연기와 함께 스러졌다. 그러나 성당은 쓰러지지 않았다. 파리 시민들이 눈물로 지켜보던 그 장면 속에서도, 노트르담은 꿋꿋이 서 있었다.


지금의 노트르담은 상처 입은 연인처럼 느껴졌다. 사랑받은 만큼 아팠고, 많은 시선 속에 침묵했으며, 다시 회복하려는 의지로 버티고 있었다. 나는 그 벽에 손을 댔다.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감촉이 손끝에 맺혔다. 그 감정은 쉽게 정의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저 '살아 있다'는 느낌이었다.


센강을 끼고 성당 주변을 천천히 걸었다. 나뭇잎이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이 성당의 그림자에 부딪히고, 흐르는 강물은 그 그림자를 조용히 끌어안았다. 시간이 멈춘 듯한 정적 속에서, 나는 문득 중세의 수도사들이 이곳을 걸었던 풍경을 상상했다. 그들은 무슨 마음으로 이 거대한 신의 집을 바라보았을까.


한 무리의 아이들이 성당 앞 광장을 지나갔다. 웃음소리와 함께 달리는 그들의 뒷모습은 이곳에 남겨진 무게를 조금 덜어주는 듯했다. 과거가 머무는 곳에도 현재는 흐르고 있었고, 희망은 늘 그렇게, 가장 무심한 모습으로 도착했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던 것이 오히려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그저 밖에서, 이곳을 감싸고 있는 빛과 바람, 사람들의 발걸음, 그리고 시간의 흔적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내부의 장엄함보다, 지금의 상처 입은 외형이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당 맞은편 카페에 잠시 앉아, 나는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테라스에 앉은 이방인들은 나처럼 성당을 바라보며 저마다의 감상을 적고 있었다. 하나같이 조용했다. 누군가 큰 소리로 웃지도 않았고, 음악은 잔잔하게 배경이 되었다. 마치 모두가 이곳의 고요를 지켜주는 듯했다.


잔을 들어 입을 댈 때,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왜 이 건축물 앞에서는 말이 적어지는 걸까?" 아마도 그것은, 말보다 마음으로 다가가야만 이해할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일 것이다. 노트르담은 설명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롯이 '느낌'으로만 닿을 수 있는 존재였다.


해가 기울 무렵, 성당의 석조 표면은 금빛으로 물들었다. 낮의 상처는 잠시 가려지고, 다시 숭고한 기운이 피어올랐다. 나는 카메라 대신 눈에 담았다. 사진은 빛을 잡지만, 기억은 그 너머의 감정을 간직하니까. 이 순간을 간직하고 싶었다. 언젠가 이곳이 다시 완전히 복원되었을 때, 오늘의 감정이 얼마나 귀중한 것이었는지 떠올릴 수 있도록.


시간이 흘렀다. 유람선의 엔진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고,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센강의 밤이 서서히 깃들고 있었다. 나는 다시 일어나 성당 쪽으로 걸어갔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그 벽을 바라보았다. 마치 안녕을 고하는 듯한 마음으로, 아주 천천히, 아주 오래도록.


센강의 물결은 밤에도 흐른다. 어둠 속에서 더 또렷한 빛을 담아낸다. 노트르담 또한 그 빛을 품고, 상처 속에서 다시 자라고 있었다. 언젠가 첨탑이 다시 하늘을 찌를 만큼 우뚝 솟아오를 때, 나는 오늘의 기억을 꺼내어 말하리라. "나는, 그 회복의 순간 이전에 너를 사랑했노라."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나는 그 사랑을 기억하고 있다. 부서진 채로, 더 아름다워진 건축. 노트르담은 그렇게 재 속에서 다시 피어오르고 있었다.




9장. 콩코르드 광장, 역사의 정적과 치유의 외침


파리의 심장부라 할 만한 그곳. 광장이라 부르기엔 너무나 넓고 비어 있어서, 처음 마주했을 땐 잠시 당황했다. 무언가를 환영하는 자리인지, 무언가를 떠나보낸 자리인지. 콩코르드 광장은 고요 속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말없이 펼쳐진 그 공간에서 나는 오래된 숨결을 들었다.


햇살이 쏟아지던 오후, 광장의 중앙에 솟은 오벨리스크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집트에서 건너온 석조 기둥은 마치 타임캡슐처럼 이국의 시간을 이곳에 박아두고 있었다. 그 주변을 빙 두른 분수는 흘러넘치지도, 마르지도 않은 물줄기를 조용히 토해내며, 광장의 무게를 중화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 평온함은 오래전부터 있던 것이 아니었다. 똑같은 자리에, 혁명의 칼바람이 휘몰아치던 날이 있었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단두대에 올랐고, 수많은 이들이 ‘자유’라는 이름 아래 목숨을 바쳤던 장소. 피비린내는 오래전 사라졌지만, 그날의 공기는 아직 이 대지 어딘가에 맴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이 광장이 오로지 죽음과 고통만을 상징하진 않는다. 이름부터 ‘화합’을 뜻하지 않던가. 콩코르드. 불화와 분열의 끝에서 다시 한번 연대를 말하고자 붙여진 이름. 그 어감 속에 약속처럼 스며든 ‘회복’의 의미가 이 광장을 더 애잔하게 만든다. 나는 그 이름을 속으로 되뇌었다. 콩코르드. 치유는 고요함 속에서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광장 주변을 감싸는 건물들은 단정하고 정제된 형태로, 마치 역사의 목격자처럼 서 있었다. 그 사이로 자동차와 사람들이 부지런히 흐르고 있었지만, 어쩐지 소리 없는 필름처럼 느껴졌다. 현대의 풍경이 과거의 기억에 스며드는 순간. 나는 그 충돌이 아니라, 공존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그날따라 바람이 많이 불었다. 바람은 늘 그렇듯 과거를 스치듯 지나갔다. 단두대가 있던 자리를 상상하며 그 위를 걸었고, 문득 멀리 에펠탑이 보였다. 과거와 현재가 한 시야에 담긴 순간, 나는 이 도시가 어떻게 시간을 품고 있는지 새삼 깨달았다. 파리는 과거를 지우지 않고, 현재와 나란히 걷게 했다.


광장을 가로지르는 동안, 몇 명의 여행자들이 나처럼 조용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들 중엔 두 손을 맞잡고 있는 노부부도 있었다. 분명히 이곳이 어떤 장소인지 알고 있으리라. 하지만 두 사람의 눈빛은 두려움보다 평온에 가까웠다. 그 표정을 보며 생각했다. 역사 속 고통도 언젠가는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길들여지고, 사람을 부드럽게 만드는 법이라고.


해 질 무렵, 광장은 금빛으로 물들었다. 오벨리스크는 빛을 받아 장엄하게 빛났고, 분수의 물줄기는 햇살을 머금은 채 흩어졌다. 고요한 순간이었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외침이 녹아 있었다. 죽음 앞에서도 자유를 외치던 사람들, 다시는 같은 비극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던 사람들. 그 외침은 더 이상 귀를 찢는 고함이 아니라, 가만히 속삭이는 노래처럼 들렸다.


나는 광장을 벗어나며 한 번 더 뒤를 돌아보았다. 어떤 장소는, 떠나는 순간에야 더 크게 마음에 들어온다. 콩코르드 광장이 그랬다. 외면하지도 않고, 과장하지도 않으며, 있는 그대로 역사를 품은 자리. 그곳은 고통을 박제하지 않고, 치유를 말할 줄 아는 공간이었다.


파리의 수많은 명소 중에서, 이토록 넓은 허공이 가장 많은 말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말이 없기에 더 많은 이야기가 들려왔고, 멈춰 서 있기에 더 깊은 감정이 흘러넘쳤다. 콩코르드 광장은 그렇게, 역사의 정적과 치유의 외침이 공존하는 성소였다.




10장. 샹젤리제, 화려함과 허상의 거리


콩코르드 광장을 지나 조금만 걸으면, 이내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거리로 접어든다. 바로 샹젤리제. 이름만으로도 황홀해지는 그 길은, 나에게는 걷는 것 자체로 하나의 예식처럼 느껴졌다. 꿈속에서나 걷는 것 같았던 그 찬란한 거리의 첫인상은, 마치 은빛 포일로 포장된 사탕 같았다. 달콤하고 반짝이지만, 조심스럽게 풀어야만 그 안의 본질에 닿을 수 있는.


길은 완만한 곡선으로 뻗어 있었다. 고운 가로수들이 좌우로 정렬되어,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햇살은 나뭇잎 사이로 부서져 쏟아졌고, 그 틈을 지나가는 사람들 하나하나가 빛을 입은 조각처럼 보였다. 거리는 번화했고, 매장마다 화려한 쇼윈도가 사람들의 시선을 훔쳤다. 명품 브랜드들이 빼곡히 들어선 거리를 따라 걷다 보면, 이곳이 단순한 길이 아니라 일종의 무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그 무대를 스쳐 지나가는 단역이 되는 셈이다.


샹젤리제를 걷는 사람들 중 누구도 빠르지 않았다. 모두가 느릿하게 걸었고,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한 표정이었다. 기대, 설렘, 약간의 피로… 그 표정들 사이에 나도 섞여 있었고, 어느새 나도 이 거리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때때로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칼이 흩날렸다. 맞은편 카페테라스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미소 지었다. 그 모든 것이, 파리를 살아 있는 풍경으로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샹젤리제는 나를 설레게 하면서도 어딘가 외롭게 만들었다. 과시적인 아름다움이 넘치는 거리지만, 그 아래엔 왠지 모를 허전함이 있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처럼 꾸며진 공간. 지나치게 완벽해서 오히려 진짜 감정이 비껴가는 느낌. 나는 그 반짝임을 눈으로는 즐기면서도, 마음으로는 한 발짝 물러선 채 바라보고 있었다.


오후 햇살이 정오의 강렬함을 잃어갈 무렵, 거리는 더 빛났다. 고급 스포츠카가 도로를 미끄러지듯 지나가고, 눈에 띄는 옷차림의 여행객들이 인증 사진을 찍기 위해 자주 멈춰 섰다. 셔터 소리, 웃음소리, 거리의 음악 소리… 그 모든 소리는 화려함의 레이어처럼 얹혀 있었고, 나는 그 안에서 무언가를 찾는 중이었다. 샹젤리제는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거리였다. 이 빛나는 껍질 속에 무엇이 있는가, 당신은 무엇을 보고 싶은가.


거리를 따라 걷다 보면 만나는 개선문은, 샹젤리제의 화려함에 끝을 찍듯 웅장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 아래에 섰을 때, 나는 잠시 그 높이를 올려다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무명용사의 묘가 그 자리에 있었다. 샹젤리제의 화려함 끝에는 누군가의 이름 없는 희생이 있었다. 그 사실이 가슴 깊이 와닿았고, 나는 그 순간 이 거리의 이중적인 본질을 더 명확히 이해하게 되었다.


화려함은 현실의 일부지만, 진실은 종종 그 이면에 숨어 있다. 샹젤리제를 걷는다는 것은, 찬란함과 허상의 경계선을 따라 걷는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그 화려함에 매혹되면서도, 어딘가 깊은 결핍을 느낀다. 빛이 너무 밝아 그림자가 더 짙어지는 것처럼, 이 거리의 번쩍임 아래에는 말 없는 침묵이 자리를 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침묵조차, 나는 아름답다고 느꼈다. 이곳은 단순한 쇼핑 거리도, 관광 포인트도 아니었다. 화려함이 허상을 감싸 안고, 허상이 다시 사람들의 진실을 끌어올리는 거리. 모든 것이 찬란한 이 거리에서, 나는 오히려 내 안의 비워진 공간을 마주하게 되었고, 그 공허함 덕분에 파리를 더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저녁 무렵, 개선문 너머로 해가 기울었다. 도로와 건물이 금빛으로 물들었고, 카페의 조명들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걷고 있었지만, 거리에 흐르는 분위기는 조금 차분해졌다. 마치 누군가 속삭이듯, ‘이제 하루가 끝나간다’고 말하는 듯한 공기. 나는 그 말에 따라 마지막 걸음을 내디뎠다.


샹젤리제를 떠나는 순간, 나는 이 거리의 본질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끝없는 빛과 허상의 연극. 하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진짜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감동, 동경, 외로움, 그리고 사랑. 허상 속에서 피어나는 진실. 그것이 이 거리가 지닌 묘한 마력이었다.



11장. 에펠탑 아래, 황혼을 기다리는 사람들


누구에게나 ‘파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면, 그 중심엔 어김없이 에펠탑이 있다. 엽서 속에서도, 영화 속 장면에서도, 꿈의 배경으로 자리한 그 철제 구조물. 그러나 실제로 마주한 에펠탑은 예상보다 훨씬 더 컸고, 동시에 훨씬 더 섬세했다. 강철로 세워진 탑인데도, 어딘지 모르게 부드러운 윤곽을 지녔고, 보는 이의 감정을 흔드는 묘한 품격이 있었다.


센강변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시야 너머로 고개를 내민 에펠탑이 보인다. 나무 사이로, 건물 틈으로 살짝살짝 드러나는 그 모습은 마치 숨바꼭질하듯 다가왔다. 그러다 마침내 탁 트인 샹 드 마르 공원에 발을 들이고 나서야, 탑은 온전히 자신의 몸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그저 한참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그 아래로 모여들었다. 연인, 가족, 친구들, 그리고 혼자 여행 온 이들까지. 모두가 에펠탑을 향해 걸어갔고, 그 아래에 도달하면 잠시 멈춰 섰다. 어떤 이는 사진을 찍고, 어떤 이는 잔디에 앉아 쉬었고, 또 어떤 이는 그저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그들 모두에게 공통된 건, 한 가지 기다림이었다. 황혼이 오는 그 마법의 시간.


그 기다림은 조급하지 않았다. 되려 느긋하고 평화로웠다. 시간은 더디게 흘렀고, 사람들은 그 느림을 받아들였다. 나는 탑이 보이는 방향으로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이들은 웃으며 뛰어다니고, 커플들은 속삭이며 손을 맞잡았다. 바람은 잔잔했고, 강 건너로는 유람선이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 어쩌면 파리에서 가장 사람다운 시간이 이곳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황혼이 가까워지자 하늘은 서서히 색을 바꾸기 시작했다. 맑은 파란빛은 점차 분홍과 주황으로 물들었고, 에펠탑은 그 빛 속에서 실루엣처럼 떠올랐다. 그 모습은 누군가 손으로 살짝 그려놓은 그림 같았다. 빛과 그림자, 색과 질감,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감정까지. 이곳의 모든 것이 예술이자, 찰나였다.


드디어 조명이 하나둘 들어왔다. 에펠탑은 서서히 불을 품었고, 그 불빛은 저녁 하늘을 배경으로 부드럽게 반짝였다. 탑의 윤곽은 어둠 속에서도 또렷했고, 보는 이마다 감탄과 탄성을 내뱉었다. 마치 누군가를 오래 기다렸다가 마주한 순간처럼, 모두의 눈빛에 반가움이 가득했다. 그리고 나는, 그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조용히 속삭였다. “이 순간을 잊지 않겠다.”


황혼의 끝자락, 탑이 황금빛으로 완전히 물든 그 찰나에, 거리의 악사가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조용한 선율이 공기를 가르고, 탑을 배경으로 날아올랐다. 그 음악은 공간을 채우기보단, 오히려 침묵을 더 섬세하게 느끼게 했다. 나는 눈을 감고 그 선율에 몸을 맡겼다. 마음 한구석이 조용히 떨렸다. 감동은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에펠탑 아래에 모인 사람들은 황혼과 함께 하나가 되었다. 언어도, 국적도, 나이도 상관없는 감정의 교류. 누군가는 포옹했고, 누군가는 혼잣말로 감정을 속삭였다. 나 역시 알 수 없는 벅참에 사로잡혔다. 이곳에 오기까지 걸어온 시간들,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감각이 그 순간 하나의 선율로 흘러내렸다.


어둠이 완전히 내리고, 에펠탑이 반짝이는 조명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비로소 작은 탄성을 터뜨렸다. ‘이게 진짜 파리구나’라는 감탄이 거리 곳곳에 흘렀다. 카메라 셔터 소리가 바쁘게 울렸고, 연신 하늘을 올려다보는 시선이 이어졌다. 하지만 나는 사진보다, 마음에 새기는 것을 택했다. 눈앞의 풍경은, 말로 다 담을 수 없는 감정으로 가득했으니까.


밤이 되자 탑은 시간을 따라 리듬을 타듯 조명을 깜빡이며 빛났다. 그것은 단순한 불빛이 아니었다. 이 도시가 건네는 인사이자, 사랑의 언어 같았다. 황혼을 기다린 그 모든 시간이, 이제 밤의 품속으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다시 돌아오겠노라고. 이 탑 아래, 이 시간을 다시 살겠노라고.



12장. 로댕미술관, 정원의 조각 같은 순간들


파리의 아침이 맑게 개었을 때, 나는 조용히 로댕미술관을 찾았다. 도심 한복판에서 도보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지만, 담장을 지나 정원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마치 다른 시간대에 발을 디딘 듯했다. 거리의 소음은 바람에 걸러지고, 햇살은 나뭇잎 사이로 부드럽게 쏟아졌으며, 잔잔한 공기 안에는 묵직한 숨결이 흘렀다. 그것은 예술의 호흡이었고, 공간을 감싼 고요한 무게감이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정원이 먼저 펼쳐진다. 높은 나무들 사이로 이어지는 자갈길, 손질된 덤불 사이를 스치는 바람, 그리고 그 길목마다 놓인 조각상들. 로댕의 대표작 중 하나인 ‘지옥의 문’은 정원의 깊은 끝자락에 우뚝 서 있었고, 그 주위를 둘러싼 침묵이 무겁게 느껴졌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많은 인물이 뒤엉켜 고뇌와 욕망의 형상을 이루고 있다. 바깥세상과 단절된 듯한 이 조각 앞에서, 나는 자연스레 말이 줄었다.


‘생각하는 사람’은 지옥의 문 위를 떠나 정원 속 독립된 받침 위에 앉아 있었다. 그 유명한 자세, 고개를 숙이고 턱을 괸 남자는 시간 속에 갇힌 채 고뇌하고 있었다. 하지만 햇살을 머금은 그의 등줄기엔 따뜻한 생명력이 흐르고 있었다. 로댕의 조각은 언제나 살아 있었다. 그 속의 인물들은 돌이 아니었다. 움직이지 않을 뿐, 지금도 어떤 생각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나는 조심스레 정원 안을 걸었다. 부드러운 바람에 머리카락이 흔들리고, 발끝에서 흙이 살짝 튀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 벤치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는 사람들, 사진 대신 눈으로만 풍경을 담는 여행자들. 정원의 분위기 자체가 하나의 살아 있는 작품처럼 느껴졌다. 그 속에서 조각상들은 마치 자연의 일부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억지스러운 인공미 없이, 그저 나무와 풀, 공기와 햇살 속에 녹아 있었다.


로댕이 살아생전에 이곳을 거닐었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묘하게 따뜻해졌다. 그는 분명히 이 정원의 바람을 느꼈을 것이고, 햇살 아래서 자신의 작품을 바라봤을 것이다. 그 시선과 지금의 내 시선이 겹친다고 생각하니, 아주 잠깐이지만 예술가의 세계에 발을 들인 기분이었다. 창작이란 어쩌면 그런 것일지도. 시대를 넘어 타인의 감정에 잠시 공명하게 되는 마법.


미술관 본관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로댕의 작품들이 정적 속에서 또 다른 표정을 하고 있었다. 대리석과 브론즈로 만든 인체들은 하나같이 생생했고, 피부의 주름, 근육의 긴장, 손끝의 떨림까지도 섬세하게 살아 있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입맞춤’. 사랑하는 이들이 서로를 감싸 안고, 영원히 그 순간에 머무는 듯했다. 조각이지만, 그 감정은 묵직하게 진동했다. ‘멈춘 시간 속에 감정이 살아 있는’ 로댕의 천재성이 그 한 점에서 또렷이 드러났다.


창밖을 내다보면 다시 정원의 녹음이 눈에 들어온다. 실내의 차가운 정적과 바깥의 따뜻한 바람이 교차하며 묘한 여운을 만든다. 작품을 보고 다시 정원으로 나왔을 땐, 처음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같은 길을 다시 걸어도, 조각상 하나하나가 새롭게 보였다. 예술은, 감정의 조각이다. 같은 장면도 마음이 바뀌면 전혀 다른 풍경이 된다.


로댕 미술관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어쩌면 이 여백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조각과 조각 사이, 바람과 침묵 사이, 걷고 멈추는 걸음 사이. 눈앞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무게를 느끼게 해주는 공간. 그 안에서 우리는 감정을 부딪히고, 생각을 더듬으며, 아주 잠시나마 내면을 돌아보게 된다.


파리엔 수많은 미술관이 있지만, 로댕미술관처럼 시간과 공간, 예술과 자연이 조화롭게 숨 쉬는 곳은 드물다. 나는 벤치에 앉아 마지막으로 ‘지옥의 문’을 바라보았다. 그 안에 깃든 인간의 고뇌, 욕망, 열망… 그것이 곧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살짝 떨림이 인다. 그러고는 천천히, 하지만 확실히, 그 모든 감정을 마음 한구석에 조용히 저장해 두었다.


언젠가 다시 이곳을 찾는다면, 오늘과는 또 다른 표정으로 마주할 수 있겠지. 그렇게 예술은, 우리의 삶 속에서 조용히, 깊게, 살아 숨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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