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문을 닫고, 나를 여는 곳
사람은 하루에도 몇 번씩 화장실을 간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지만, 누구에게나 중요한 시간이다.
거기선 눈을 마주칠 필요도 없고, 말을 건넬 필요도 없다.
그저 내 몸의 리듬과 마음의 흐름에 귀 기울일 수 있다.
작은 칸막이 안에서 비로소 우리는, 진짜 나로 돌아간다.
화장실은 가장 사적인 공간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가장 많은 '공통의 경험'이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원하는 칸만 비어 있지 않다든지, 누군가 옆에 있으면 도무지 집중이 안 된다든지,
혹은 꼭 내가 들어간 순간 변기가 막힌다든지.
이런 이야기들을 친구에게 털어놓으면, 돌아오는 건 놀랍도록 격렬한 공감이다.
"나도 그래!"
"진짜 왜 그런 거야?"
"내 얘기인 줄 알았어!"
화장실에서 벌어지는 이 수많은 작은 사건들,
그건 단순한 생리 현상이 아니라 우리 안에 숨겨진 심리의 반영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무엇을 불편해하고, 어디에서 안심하며, 어떤 순간에 부끄러워지는지를
화장실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시작되었다.
한 칸의 문을 닫는 순간, 어쩌면 당신 마음의 문이 열릴 수도 있다.
이건 당신의 이야기고, 나의 이야기다.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쳤던 그 순간들 속에,
우리는 꽤나 깊은 심리를 숨겨두고 있었다.
자, 그럼 첫 번째 칸부터 함께 들어가보자.
편하게, 그리고 천천히.
<왜 내가 가려는 칸만 항상 차 있을까?>
문을 밀기 전부터 나는 감으로 안다. ‘아, 저 칸에 사람이 있겠구나.’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누군가 있다. 한 칸, 두 칸,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내가 마음먹고 들어가려는 칸은 늘 점령당해 있다. 나와 궁합이 맞는 칸은 왜 항상 인기 있는 걸까?
사실 우리는 화장실에서도 '선호'를 갖는다. 어떤 칸은 밝고, 어떤 칸은 살짝 어둡다. 어떤 칸은 환풍기가 시원하게 돌아가고, 어떤 칸은 문이 덜컥거린다. 우리는 그 미세한 차이를 무의식적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늘 그 '안정의 칸'을 향해 간다. 익숙함은 위로고, 위로는 곧 배설의 안전장치다.
문제는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같은 심리로 같은 칸을 노린다. 특히 중간 칸은 '눈에 잘 띄지 않아서 적당히 사적이고, 적당히 접근성도 좋은' 위치다. 모두가 가장 무난하게 생각하는 곳, 그래서 가장 인기 있는 곳이 되는 거다.
어쩌면 이건 삶 전체에도 해당되는 이야기일지 모른다.
우리는 언제나 '좋은 자리'를 알고 있다. 다만, 그 자리엔 이미 누가 앉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칸을 찾아야 하고, 덜 편해도 결국 안정을 찾아야 한다.
변기의 순번처럼, 인생에도 타이밍이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가고 싶은 칸이 늘 차 있는 건,
어쩌면 내가 '항상 가장 좋은 걸 고르고 있다'는 증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