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들어가기 전엔 멀쩡하던 변기다.
물줄기도 시원하게 내려가고, 웬만한 잔해도 흔적 없이 사라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들어가서 사용하고, 물을 내리면—그 순간부터 무언가 꼬이기 시작한다. 물이 맴돈다. 물이 넘친다. 그리고 남는다. 남아선 안 될 것들이.
이쯤 되면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건 나의 체중 때문일까, 타이밍 때문일까, 아니면 그냥 나란 사람의 운명일까?
어떤 이들은 말한다.
"너무 많은 휴지를 썼나 봐."
"물 내리는 타이밍이 잘못됐지."
하지만 그런 조언은 나에게 아무런 위로도 되지 않는다. 왜냐면 그들은 '그 순간의 절망'을 모른다.
정수리까지 피가 몰리고,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고, 화장실 안에서 혼자 죄인처럼 변기를 바라보며 "왜 나야, 왜 또 나야" 중얼거리게 되는 바로 그 순간 말이다.
이건 단순히 배관의 문제가 아니다.
이건 관계의 문제다.
나와 화장실 사이, 신뢰가 깨진 순간이다.
그래서 이젠 작은 기도처럼 물을 내린다.
‘제발, 아무 일 없기를. 평화롭게 흘러가기를.’
누군가에겐 당연한 일이, 나에겐 하루를 좌우하는 큰 사건이 되니까.
그리고 혹시라도, 내가 나간 뒤 누군가가 그 변기를 마주하게 될까 봐
한 번 더 확인하고, 한 번 더 물을 내린다.
이건 배려이자 사과고, 조용한 연대다.
변기가 막히는 건 부끄럽지 않다.
그저, 오늘도 나만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