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편 헌문(憲問) 제44장
공자가 살던 궐리 출신의 어린아이가 공자의 말을 전하는 심부름꾼 역할을 수행했다. 누군가 물었다. “쓸 만한 녀석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그 녀석이 자리 잡을 때 어디에 위치하는지를 보았습니다. 어른을 수행할 때 나란히 걷는 걸 봤습니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자하는 놈이 아닙니다. 속성으로 이루고자 하는 놈에 불과합니다.”
闕黨童子將命. 或問之曰: “益者與?”
궐당동자장명 혹문지왈 익자여
子曰: “吾見其居於位也. 見其與先生幷行也. 非求益者也. 欲速成者也.
자왈 오견기거어위야 견기여선생병행야 비구익자야 욕속성자야
노나라 수도 곡부에서 공자가 살던 동네 이름이 궐리(闕里)입니다. 그래서 곡부의 공자 무덤에 세워진 공묘(孔廟) 또는 문묘(文廟)를 궐리사(闕里祠)라고도 부릅니다. 주나라에서 당(黨)은 500호가량의 집이 사는 마을을 뜻했습니다. 따라서 궐당(闕黨)은 곧 공자가 살던 궐리로 해석합니다.
그 시점은 모호하지만 궐리 출신의 동자(童子)가 공자의 메시지를 전하는 심부름꾼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여기서 동자란 남자의 경우 20세가 되면 치르는 관례(성인식)를 치르지 않은 제법 큰 소년으로 봅니다만 문맥상 그냥 어린아이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보통 공자의 말을 전하는 메신저는 성인에게 시킬만한데 어린아이에게 이를 맡겼으니 인물도 좋고 기억력도 좋았을 겁니다. 거기다 제법 싹싹했을 터이니 누군가 공자가 아끼는 준재 아닐까 하여 “쓸 만한 녀석입니까?”라고 넌지시 물어본 것입니다.
어린 나이에 어른들의 주목을 받게 됐으니 제법 으쓱할 수 있었겠습니다. 공자는 아마도 이를 경계했던 듯합니다. 그래서 일부러 그 친구의 단점을 짚어줍니다. ‘예기’에는 나이 어린 이는 자리 한가운데에 앉지 말고 모퉁이에 앉으며 어른의 뒤를 따르라고 돼 있는데 이를 지키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세상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하기보다는 얼른 어른 대접을 받고자 하는 녀석”이라고 평가절하합니다.
이를 두고 공자는 속성자를 싫어하고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올라가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평하는 것은 도덕주의적 해석에 불과합니다. 공자가 그 소년을 발탁했을 때는 그만큼 총명하고 싹싹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주목을 받게 되자 그가 자만에 빠질까 염려돼 부러 그 소년의 단점을 부각해 경계하도록 잡도리한 것으로 봐야 합니다.
만일 그 소년이 진실로 그렇게 되바라지고 교만했다면 처음부터 메신저로 부렸을 리가 없습니다. 메신저로 발탁할 만큼 아꼈기에 자칫 교만해질까 하여 견제구를 던진 것입니다. 이는 일견 그 소년이 과대평가되는 것을 막는 동시에 그 소년의 귀에 들어가도록 함으로써 몸가짐을 더욱 단정하게 하도록 한 것이니 공자의 훈육법 내지 용인술로 읽어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