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의 등급

13편 자로(子路) 제20장

by 펭소아

자공이 물었다. “어떻게 하면 가히 선비라 할 수 있겠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처신함에 있어 염치가 있고, 사방에 사신으로 가서 군주의 명을 욕되게 하지 않으면 선비라고 할 수 있다.”

자공이 말했다. “감히 그 아랫단계를 묻겠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친족이 효성스럽다 칭찬하고, 고을 사람이 공손하다고 칭찬한다.”

자공이 말했다. “감히 그 아랫단계를 묻겠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말은 반드시 신용 있게 하고, 행동은 반드시 결과가 있게 한다면 융통성 부족한 소인이라 해도 그다음은 될 수 있다.”

자공이 물었다. “지금 정치하는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도량이 좁고 식견이 짧은 사람들을 어찌 헤아리겠는가?”


子貢問曰: “何如斯可謂之士矣?”

자공문왈 하여사가위지사의

子曰: “行己有恥, 使於四方, 不辱君命. 可謂士矣.”

자왈 행기유치 사어사방 불욕군명 가위사의

曰: “敢問其次.”

왈 감문기차

曰: ”宗族稱孝焉, 鄕黨稱弟焉.”

왈 종족칭효언 향당칭제언

曰: “敢問其次.”

왈 감문기차

曰: “言必信, 行必果, 硜硜然, 小人哉! 抑亦可以爲次矣.”

왈 언필신 행필과 갱갱연 소인재 억역가이위차의

曰: “今之從政者何如?”

왈 금지종정자하여

子曰: “噫! 斗筲之人, 何足算也.”

자왈 희 두소지인 하족산야



앞서 제28장에서 자로가 한 질문과 똑같은 질문을 이번엔 자공이 던집니다. 공자의 답은 이번에도 다릅니다. 공문의 맏형인 자로에게는 “너처럼 평소엔 형제처럼 다정하게 대하지만 잘못이 있을 땐 친구처럼 까칠하게 충고하는 사람이면 선비가 되고도 남는다”는 답을 줬습니다. 외교관의 자질을 갖춘 자공에게는 그에 맞춰서 “처신함에 있어 부끄러움을 알며 사신으로 가서 군주의 얼굴에 먹칠하지 않게 한다면 가히 선비라 할 수 있다”고 답합니다.


공자가 입만 열면 훈계의 말씀을 내놓는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유학자들 눈에는 그 답변이 자공에 대한 잔소리로 들리나 봅니다. 제 눈에는 자로의 경우처럼 “자공, 너 정도면 충분히 선비라 할만하다”라고 격려한 것으로 보이는데 말입니다. 자로와 자공은 군자의 반열을 넘볼 사람이니 그 아래 실무 관리인 선비의 자격은 충분히 갖춰다 보지 않았을까요?


자로는 스승의 격려에 감격해 말문이 막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자공은 머리 회전이 훨씬 빠르면서 짓궂기까지 해서인지 그 반응이 다릅니다. 바로 스승의 허를 찌르고 들어갑니다. 그렇다면 그 아랫단계의 선비는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을 던집니다. 공자는 속으로 웃으면서 자공의 약점을 보완하라고 받아칩니다. 효성스럽고 겸손해야 한다고. 치평파인 자공에게 수제의 덕을 더 쌓으라는 뜻을 담아 말한 것입니다.


영민한 자공은 그 순간 어떤 영감이 스친 듯 다시 그 아래 단계를 묻습니다. 공자는 현실의 하급관료를 떠올리곤 그나마 괜찮다고 평가하는 자질에 대한 이야기를 꺼냅니다. 업무처리를 최우선시하다 보니 인간적 여유가 없어 빡빡하게 굴지만 지키지 못할 말은 하지 않고, 행동에 옮기면 어떤 식으로든 결실을 맺는 성실한 사람이라면 아쉬운 대로 선비라 할 만하다고 답합니다.


이로 인해 선비의 서열이 정해집니다. 1등급의 선비는 자기객관화 능력과 더불어 실무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니 곧 자공이나 자로처럼 치평파에 속한 선비입니다. 2등급의 선비는 집안사람과 고을사람에게서 칭송받을 정도로 덕행이 뛰어난 사람이니 자여(증자)로 대표되는 수제파의 선비입니다. 3등급의 선비는 재주와 덕이 부족해 보통사람(소인)으로 분류되긴 하지만 나름의 성실함으로 무장한 사람입니다. 꾀돌이 자공에 재치로 인해 치평파-수제파-성실파 이렇게 선비 3단계가 정해진 것입니다.


자공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다시 현실비판의 칼날까지 끌어냅니다. 그렇다면 당대의 위정자들은 어떤 선비라고 평할 수 있느냐고 물은 것입니다. 공자 입에서 당연히 좋은 소리가 나올 리가 없습니다. 원문의 두소(斗筲)는 용량이 적은 그릇을 말하니 두소지인(斗筲之人)은 내면의 덕을 갖추기에 속이 좁고, 세상의 도리를 터득하기엔 배움이 짧은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 두소지인이 일일이 샐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공자의 발언은 한마디로 “말에 뭣하겠느냐?”는 소리입니다.


사실 이는 선비에 국한된 질문이기에 대부 이상의 실질적 위정자를 겨냥한 발언은 아니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공의 마지막 질문은 선비(士)라 하지 않고 ‘정치에 종사하는 사람(從政者)’이라 하였으니 일부러 그 범위를 확대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송대를 지나면서 선비는 군자를 지향하는 사대부를 통칭하는 표현이 됐기에 후자의 해석이 일반적입니다. 저 역시 그 통쾌한 해석을 좇아 노나라 제후와 삼환 세력을 비롯한 당시 각국의 공경대부들이 1~3급의 하급관료만도 못하다는 뜻으로 풀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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