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 때, 일할 때, 어울릴 때

13편 자로(子路) 제19장

by 펭소아

번지가 어짊에 대해 물었다. 공자가 말했다. “홀로 머물 때 몸가짐을 조심스레 하고, 일을 할 때는 정성을 다하고,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진실하게 대해야 한다. 오랑캐 땅에 가서 살게 된다 해도 버릴 수 없는 것이다.”


樊遲問仁. 子曰: “居處恭, 執事敬, 與人忠. 雖之夷狄不可棄也.”

번지문인 자왈 거처공 집사경 여인충 수지이적불가기야



번지(樊遲)는 자(子)계열의 제자로 공자가 천하주유 중이거나 노나라로 돌아온 후에 제자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사기’의 ‘중니제자열전’에선 공자보다 36세 연하라고 나오는데 '춘추'의 기록을 감안하면 ‘공자가어’에 나오는 46세 연하가 더 맞을 듯합니다. 자하 자유 자여 자장과 비슷한 연배인 셈입니다. 본명은 수(須), 자는 자지(子遲)인데 보통 성을 붙여 번지로 많이 부릅니다. 노나라 출신설과 제나라 출신설이 엇갈리는데 노나라 사람으로 보는 게 맞을 듯합니다.


번지는 '자계열 제자 중의 자로'라 부름 직합니다. 우직하면서 무공이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공자의 천하주유가 성과 없이 끝나갈 무렵 노나라 집정대부 계강자의 가재로 염유가 발탁됩니다. 염유는 노나라를 침공한 제나라 군대와 전쟁에서 승리하는 공을 세우는데 당시 염유의 오른팔로 맹활약한 무장이 바로 번지였습니다. 그래서였는지 자로가 몰던 공자의 마차를 번지가 모는 경우가 여러 차례 보입니다.


그는 또 자로처럼 단순 우직한 사람 아니었나 합니다. 그래서 공자에게 어짊이나 지혜(知), 덕을 숭상하는 것(崇德) 같은 핵심 테마에 대해 거침없이 그것도 여러 차례 질문을 던졌는데 공자가 그 어떤 제자들에게 얘기할 때보다 쉽게 풀어 줍니다. 하지만 그마저 얼른 이해하지 못해 자하 같은 우등생에게 보충설명을 받을 때가 종종 보입니다. 자꾸 농사짓는 법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바람에 사람 키우는 법밖에 몰랐던 공자가 눈치 없는 번지를 뒤에서 타박하는 내용까지 등장합니다.


‘논어’에서 번지는 어짊에 대해 무려 세 차례나 질문합니다. 그때마다 답이 조금씩 다릅니다. 여기서는 일상생활에서 어짊을 실천하는 자세로 풀어줍니다. 그것은 3가지인데 홀로 있을 때와 일을 할 때, 다른 사람을 대할 때입니다. 각각 공(恭), 경(敬), 충(忠)이 강조되니 도(道)와 덕(德)으로 구성되는 어짊을 덕의 측면에서 풀어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거처하고 있을 때 공(恭)하라는 것은 몸가짐을 조심스럽게 하라는 뜻입니다. ‘대학’에 나오는 ‘신독(愼獨)’의 개념처럼 혼자 있을 때 삼가는 자세로 도리에 어긋난 짓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집무를 볼 때 경(敬)하라는 것은 경건한 자세로 일하라는 뜻보다는 정성을 다해 일하라는 뜻으로 새기는 것이 적절해 보입니다. 공자가 경을 말할 때는 ‘예의 바르다’는 뜻보다는 ‘정성을 다 하라’는 뜻일 때가 많습니다.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충(忠)하라는 말은 거짓 없이 진심으로 대하라는 뜻입니다.


공자는 이러한 어짊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가치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당시 주나라 문명권 밖에 사는 사람들을 뜻하는 이적(夷狄)의 영토에서도 똑같이 가치 있는 일이므로 버릴 수 없다고 말합니다. 공간을 바꿔도 동일하다는 말은 시간을 바꿔도 마찬가지라는 표현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를 현대적 개념으로 풀어보면 사생활을 영위할 때, 직장생활을 할 때, 사교활동을 할 때의 기본 마음가짐을 풀어준 것입니다. 그 마음가짐 역시 요즘 사람들의 말로 옮기면 각각 ‘함부로 퍼져 있지 마라’, ‘농땡이 부리지 마라’, ‘가식적인 표정과 말로 속이지 마라’가 될 것입니다. 어떤가요? 실천하기 어렵다고 할 순 없어도 늘 그러기는 또 쉽지 않은 일 아닌가 싶습니다. 여러분은 과연 이런 어짊의 기본을 얼마나 실천하며 살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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