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편 자로(子路) 제18장
섭공(葉公)이 공자에게 말했다. “우리 고을에 언행이 올곧은 사람이 있는데 아비가 양을 훔치자 자식이지만 그 잘못을 증언했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우리 마을의 정직한 사람은 그와 다릅니다. 아비는 자식을 위해서 숨겨주고, 자식은 아비를 위해서 숨겨주니 올곧음이란 그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葉公語孔子曰: “吾黨有直躬者 其父攘羊 而子證之.”
섭공어공자왈 오당유직궁자 기부양양 이자증지
孔子曰: “吾黨之直者異於是. 父爲子隱, 子爲父隱. 直在其中矣.”
공자왈 오당지직자이어시 부위자은 자위부은 직재기중의
섭공(葉公)은 초나라의 명신인 심제량(沈諸梁)으로 자는 자고(子高)였습니다. 그는 춘추시대 소국이던 심(沈)나라의 마지막 세자 심윤술(沈尹戌)의 아들로 채나라에 의해 조국이 멸망당하자 아버지를 따라 초나라로 망명했습니다. 아버지 심윤술이 초나라군 총사령관이 되어 오나라에 맞서 싸우다 전사한 뒤 초나라의 충신이 됐습니다.
채나라의 영토였다가 초나라에 편입된 섭(葉)땅을 다스리는 일종의 총독으로 임명돼 섭공(葉公)이란 호칭으로 불리게 됐습니다. 이후 그의 후손은 엽(葉‧한국에선 섭씨와 엽씨로 나뉘지만 중국어 발음은 예로 같음) 씨를 쓰게 되니 전 세계 엽 씨의 시조가 됩니다. 중국 공산당 군대였던 홍군의 10대 원수 중 하나인 예젠잉(葉劍英)과 이소룡을 제자로 둔 영춘권의 창시자 예원(葉問)도 그의 후손인 셈입니다.
섭공 시절 심재량은 천하주유 중이던 공자를 만나 정치에 대한 자문을 구한 일로 유명해졌습니다. 공자도 그의 재주와 역량을 높이 평가했는데 공자가 죽고 1년 뒤 초나라 왕실에서 궁정 쿠데타가 발생하자 이를 신속하게 진압하고 재상인 영윤(令尹)과 군총사령관인 사마(司馬)를 겸직할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쥐게 됩니다. 또 초나라의 내란 상황을 이용하려고 침공했던 진(陳)나라를 멸망시킵니다. 심제량의 모국을 멸망시켰던 채나라 역시 그 33년 뒤 초나라에 의해 멸망하게 되니 결국 초나라가 그의 원수를 대신 갚아준 셈입니다.
이 장에선 섭공이 훗날 등장하는 법가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합니다. 올곧은 사람이라면 아무리 아버지라 해도 그 잘못을 고발해야 한다는 관점입니다. 이는 20세기 소련, 중국, 북한 같은 사회주의 국가의 관점이기도 합니다. 반동 사상에 젖어있다면 부모 자식 간이라도 이를 국가에 신고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대부분의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선 범법 사실을 안 다하더라도 부모 자식 간에 이를 신고하지 않았다고 엄격하게 처벌하지 않습니다. 법정에서도 증언을 거부할 권리를 인정해주는 경우가 많은 걸로 압니다.
섭공은 올곧음을 사회적 윤리로 봤습니다. 반면 공자는 그러한 사회적 윤리 역시 개인적 도덕 감수성을 위반해선 안 된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아들의 허물을 덮어주고 아들이 아버지의 허물을 덮어주는 개인적 도덕 감수성과 도둑질은 신고해야 한다는 사회적 윤리가 충돌할 때 전자를 우선시하는 것이 도리에 부합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동아시아에선 국가에 대한 충(忠)과 부모에 대한 효(孝)가 충돌할 때 무엇을 우선시해야 하느냐는 오래된 테마로 이어집니다. 서양에선 국가질서 또는 국법(國法)을 우선시하는 크레온과 혈육의 정 또는 신법(神法)을 우선시하는 안티고네의 대결과 공명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섭공과 공자의 대결을 충 대 효, 크레온 대 안티고네로까지 확대하는 것이 과연 맞을까요? 실천적 지혜(프로네시스)를 중시했던 공자는 이런 식의 이분법적 사유보다는 사안 별로 다른 판단을 내렸을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양을 훔친 아버지를 고발할 것이냐 말 것이냐의 문제에 대해선 효를 강조하겠지만 만일 적국에 나라를 팔아먹는 문제가 벌어진다면 반대로 충을 강조할 사람이 공자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최근 ‘정리의 달인’ 곤도 마리에가 설파한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를 공자 역시 변형해서 적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어느 쪽이 더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지를 고민해보고 덜 불편한 쪽을 선택하라! 이것이야말로 공자가 말한 어짊의 실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