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편 자로(子路) 제21장
공자가 말했다. “중용의 지혜를 실천하는 사람을 얻어 함께 하지 못한다면 반드시 미치광이나 고집쟁이와 함께 하겠다. 미치광이는 (한 우물만 파기에) 성취가 크고, 고집쟁이는 하기 싫은 것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안 하기 때문이다.”
子曰: “不得中行而與之. 必也狂狷乎 狂者進取, 狷者有所不爲也.”
자왈 부득중행이여지 필야광견호 광자진취 견자유소불위야
원문의 중행(中行)은 중용(中庸)을 실천하는 것으로 새깁니다. 중용은 단순히 양 극단을 배제하고 중간을 택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반대로 주희처럼 ‘중(中)은 치우치지 않고, 한쪽으로 기울어지지도 않고,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는 것을 말하고, 용(庸)은 평상을 뜻한다’는 식으로 너무 거창하고 심오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도 없습니다.
중(中)은 ‘가운데’ 보다는 ‘알맞다’로 새겨야 하고 용(庸)은 ‘평범한’이나 ‘일상적인’으로 새기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일상을 운위함에 있어 자신의 지혜와 경험을 바탕으로 가장 알맞다고 생각되는 것을 선택해 가는 실천적 지혜(프로네시스)를 뜻합니다. 평상심의 지혜로 난국을 풀어가면서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중용의 지혜인 것입니다.
인간은 일상에서 누구나 이런 중용의 지혜를 발휘합니다. 이것이냐 저것이냐는 갈등 상황에서 자신의 깜냥에서 최선이라 생각하는 것을 선택합니다. 문제는 국가 중대사나 긴급한 위기상황에서 선택을 해야 할 때 대부분 평상심을 잃고 우왕좌왕하게 됩니다. 바로 그런 순간에 우왕좌왕하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며 판단과 결정을 내리는 것, 그게 바로 공자가 말한 중용의 자세인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중용의 지혜를 갖춘 자를 얻지 못하면 차라리 미치광이(狂者)나 고집쟁이(狷者)와 함께 하겠다고 한 점입니다. 점잖은 유학자들을 꽤나 당황하게 만든 내용 같습니다. 그래서 미치광이에 대해선 뜻이 고매한 사람, 고집쟁이에 대해선 뜻이 굳건한 사람으로 미화하는 경우가 많더군요. 과잉 해석입니다. 그 뒤에 나오는 내용을 토대로 굳이 중화한다면 미치광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한 가지만 파고드는 마니아(mania)로, 견자는 하기 싫은 일은 죽어도 못 하는 매버릭(maverick) 정도로 새겨야 합니다.
그러나 이 장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핵심은 미치광이와 고집쟁이의 정체에 있지 않습니다. 이는 달을 가리키는데 그 손가락을 보고 있는 거나 다른 없습니다. 그럼 이 장의 달은 뭘까요? 중용의 지혜를 실천하는 사람(중행‧中行)입니다. 공자는 달을 직접 그리지 않으면서도 구름을 붉게 물들여 달의 형상을 드러내는 홍운탁월(烘雲托月)의 화법을 쓴 것입니다.
바로 중행의 그 대척점에 선 사람이 겉보기론 멀쩡해 보이지만 위기상황이 닥치면 우왕좌왕하는 보통사람임을 일깨워주기 위해 일부러 극단적 캐릭터를 거론한 것입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두루뭉술하게 중간만 가자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미치광이나 고집쟁이보다도 더 중용을 실천하지 못함을 풍자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공자가 말하는 중용(中庸)의 반대는 어쩌면 어중간한 중도(中道)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중도는 어느 한편으로 치우치지 않고 한가운데를 유지한다는 의미이니 앞서 주희가 말한 중용 이해와 궤를 같이 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공자가 말한 중용은 그렇게 양 극단을 절충해 어중간한 중간을 유지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매 순간 최선의 선택을 추구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중용은 N극과 S극 사이에서 팽팽하게 균형을 유지하는 쇠구슬이 아니라 때로는 좌, 때로는 우를 오가며 균형을 유지하는 시계추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중용은 좌파와 우파라는 이념의 절충점을 찾은 그런 중도가 아니라 경우에 따라선 과감히 좌우를 넘나들 수 있는 유연한 지혜인 것입니다.
그럼 그게 우왕좌왕이 아니면 뭐냐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용(庸)이 의미하는 평상심과 평정심입니다. 소리에 놀라지 않은 사자와 같이, 그물에 잡히지 않는 바람과 같이 내면의 평정심만 유지한다면 이념이니 진영논리니 하는 것은 소리나 바람에 지나지 않은 것입니다. 엄청난 파도를 올라타 서핑을 탈 때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무게중심을 좌우로 옮겨가는 것을 두고 우왕좌왕한다고 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내면의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외부의 변화에 따라 무게중심을 옮기는 중용의 실천에 대해서도 갈팡질팡한다는 표현을 써선 안 됩니다.
이를 이해하고 나면 공자가 여기서 왜 하필 미치광이와 고집쟁이라는 표현을 썼는지 또 다른 이유를 깨닫게 됩니다. 중용의 덕을 터득한 군자라며 필요하다 판단될 때는 과감히 미치광이와 고집쟁이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함입니다. 이를 이해한다면 하물며 당파가 다르고 이념이 다르다는 게 뭐 그리 중요한 문제겠습니까? 도덕적 완결성을 추구했던 맹자와 주자 그리고 조선의 주자학자들이 놓칠 수밖에 없었던 공자의 심오한 가르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