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진 사람이 말을 삼가는 이유

12편 안연(晏然) 제3장

by 펭소아

사마우가 어짊에 대해 물었다. 공자가 말했다. “어진 사람은 그 말을 삼가는 것이다.”

사마우가 말했다. “말을 삼가면 그것만으로 어질다고 할 수 있는 겁니까?”

공자가 말했다. “말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어려우니 말을 삼가야지 않겠느냐?”


司馬牛問仁. 子曰: “仁者其言也訒,”

사마우문인 자왈 인자기언야인

曰: “其言也訒 斯謂之仁矣乎?”

왈 기언야인 사위지인의호

子曰: “爲之難. 言之得無訒乎?

자왈 위지난 언지득무인호



인(訒)은 2가지 뜻이 있습니다. 말을 더듬는다는 뜻과 말을 삼가다는 뜻입니다. 군자는 말이 느리고 행동이 빠르다는 눌언민행 테마를 좋아하는 분들은 전자를 취합니다. 그보다는 언행일치 테마로 새기는 저는 후자를 취합니다. 군자는 말을 더듬는 것이 아니라 함부로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요.


앞서 군자에 대해 물었던 사마우가 이번에 어짊을 묻습니다. 군자학은 개인적 수제(덕)와 정치적 치평(도)을 접목해 어짊(인)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짊에 대해 묻는 것과 군자에 대해 묻는 것은 일맥상통한다고 봐야 합니다. 어짊을 성취한 인자(仁者)기 곧 군자(君子)이기 때문입니다.


사마우의 경우 군자가 되기 위해선 실존적 불안을 떨어내는 것이 최우선과제라고 했던 공자가 어짊을 위해선 말을 함부로 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2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실존적 불안감에 시달리던 사마우가 외롭다, 불안하다, 인생이 허무하다는 발언을 일삼는 것을 경계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둘 다 개인적 덕의 차원에서 보완이 필요하다 생각해 살짝 결이 다른 말로 일깨움을 줬다고 보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어짊을 갖춤에 있어서 덕의 차원에선 걱정과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 돼라 하고 도의 차원에선 언행일치에 힘쓰는 위정자가 돼라 가르친 것이라 보는 것입니다. 위정자의 말은 한번 뱉으면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무거움이 훨씬 더 큽니다. 말이 가벼운 위정자는 백성의 놀림감이 되기 십상이요, 아랫사람에게도 영이 서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군자에 대해 물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사마우는 “말을 삼가는 것만으로 정녕 어질다고 할 수 있는 거냐?”라고 반문합니다. 이 역시 어짊이 덕과 도의 접목을 통해 이뤄지는데 어느 한쪽만 너무 강조하는 것 이냐는 의문이 반영돼 있습니다. 공자는 이에 대해 “말을 함부로 내뱉으면 그것을 실천으로 옮기기 어렵기에 삼가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합니다. 사실 이는 개인적 수제(덕)에도 해당하고 정치적 치평(도)에도 해당하는 답입니다.


하지만 군자에 대한 질문과 대칭성을 염두에 두고 이를 새기노라면 후자를 강조하는 것으로 봐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다시 말해 사마우가 군자에 대해 물었을 때 수제의 덕을 보완하라 했다면 다시 그가 어짊에 대해 물었을 때는 치평의 도를 보완하 했다고 푸는 것이 해석학적으로나 미학적으로 두 장의 균형을 맞춰주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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