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편 안연(晏然) 제2장
중궁이 어짊에 대해 물었다.
공자가 말했다. “문밖으로 나가면 큰손님을 뵙듯 하고, 백성을 부릴 때는 큰제사를 받들듯 하며,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않으면, 벼슬길에 나서선 백성의 원망을 사지 않고, 가문을 지키고 있을 땐 가족의 원망을 사지 않게 되리라.”
중궁이 말했다. “이 염옹(중궁의 이름)이 비록 어리석고 둔하지만 그 말씀을 받들겠나이다.”
仲弓問仁.
중궁문인
子曰: “出門如見大賓, 使民如承大祭. 己所不欲, 勿施於人. 在邦無怨, 在家無怨.”
자왈 출문여견대빈 사민여승대제 기소불욕 물시어인 재방무원 재가무원
仲弓曰: “雍雖不敏, 請事斯語矣”
중궁왈 옹수불민 청사사어의
공문 최고의 제자로 안연이 뽑힙니다. 그렇지만 군자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중궁(염옹)만큼 수제학(덕)과 치평학(도)을 두루 겸비한 인물이 없습니다. 그는 안연, 민자건, 그리고 요절한 형 염백우와 더불어 덕행의 4대 제자로 꼽혔으니 수제학의 완성자라 할 만합니다. 더불어 공자가 “남면(南面)할만하다”고 제왕의 자질까지 갖췄다 상찬한 유일한 제자였으니 치평학에서도 일가를 이뤘다 할 만합니다. 게다가 시점은 불분명하지만 자로의 뒤를 이어 계손씨 가문의 가재까지 지내 현실정치의 경험까지 갖췄습니다. 치평에 관한한 사십 평생 백면서생을 면치 못했던 안연을 능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중궁이 군자학의 핵심테마인 어짊(仁)에 대해 질문합니다. 수제의 덕과 치평의 도가 하나로 합쳐진 덕목이 어짊입니다. 수제의 덕과 치평의 도를 두루 갖춘 중궁의 질문이니 공자 역시 가벼이 답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 장이 의미심장한 이유입니다.
첫 번째로 대빈(大賓)과 대제(大祭) 얘기부터 등장하는 것부터 심상치 않습니다. 손님을 맞는 접빈과 제사를 모시는 향사(享祀)는 공자가 속한 유자(儒者)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공자의 군자학이 그토록 예(禮)를 강조하는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의례(儀禮)와 제례(祭禮)가 공자학단의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대빈은 제후가 직접 맞이하는 빈객을 뜻하고, 대제는 천자나 제후가 직접 하늘에 올리는 제사를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유가에서 가장 중히 여길 수밖에 없는 2가지 대사를 치를 때의 마음가짐으로 대하라고 한 것의 실체입니다. “집 밖을 나서 사람을 만날 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대빈을 대하 듯하고, 벼슬길에 나서 백성을 부려야 할 때 하늘에 올리는 큰제사를 받들 듯 하라.” 전자는 대인관계에 적용하라는 것이니 수제의 덕이요, 후자는 공직에 나섰을 때 적용하라는 것이니 치평의 도에 해당합니다. 사람을 귀히 여기는 태도로 공손하고 정성을 다해 대하는 것이 윤리와 정치의 출발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두 번째는 공자의 가르침 중에서 가장 사랑받는 ‘기소불욕 물시어인’입니다. 애제자 자공이 평생에 걸쳐 실천할 단 한 가지 가르침을 청했을 때 공자의 답이기도 했던 덕목입니다(15편 위령공 제24). 수제의 덕에 대한 공자의 가르침은 보통 ‘충서(忠恕)’로 집약됩니다. 충은 자기 충실을 말하고, 서는 타인 배려를 뜻합니다. 공자는 자공에게 평생의 지침으로서 ‘자신이 하기 싫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지 말라’를 내리면서 이를 서(恕)의 핵심이라고 말했습니다.
치평파인 자공에게 이를 일러줄 때는 분명 수제의 덕목으로 들렸지만 수제와 치평을 겸비한 중궁에게 말할 때는 사뭇 그 의미가 다르게 다가섭니다. 똑같은 메시지라도 듣는 이가 누구냐에 따라 다른 효과를 발생시키기 때문입니다.
군자학은 수기치인(修己治人)으로도 표현하는데 이때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는 수기(修己)가 수제가 되고 타인을 다스린다는 치인(治人)이 치평이 됩니다. 자공에게 발화될 때는 단일한 수기의 메시지로 들렸던 ‘기소불욕, 물시어인’이 자궁에게 발화되는 순간 수기와 치인을 둘 다 아우르는 메시지가 됩니다. ‘기소불욕’은 자신이 무얼 원하고 무얼 원하지 않는지를 응시하라는 수기(修己)의 메시지가 되고 ‘물시어인’은 백성이 원하지 않은 것을 억지로 베풀면서 생색내지 말라는 치인(治人)의 메시지가 됩니다.
세 번째 등장하는 ‘재방무원 재가무원(在邦無怨, 在家無怨)’을 ‘벼슬길에 올랐을 땐 백성의 원망을 사지 말고, 집안에 있을 땐 가족의 원망을 사지 말라’로 새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새기면 앞에서 언급한 2가지 덕목의 실천과 별 차이가 없는 동어반복에 머물고 맙니다. 따라서 앞의 2가지 덕목을 실천했을 때 발생하는 효과로서 “출사해선 백성의 원망을 사지 않고, 재가할 땐 가족의 원망을 사지 않게 되리라”로 새기는 것이 적절해 보입니다. 이때 재방무원은 치평의 결과, 재가무원은 수제의 결과가 됩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볼까요? 중궁의 질문이 뭐였는지 기억하십니까? 어짊에 대한 물음이었습니다. 그 첫 번째 답은 예(禮)의 핵심적 태도를 타인과 백성에게 적용하는 것이니 결국 윤리와 정치에 있어서 사람을 귀히 여기는 휴머니즘을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역시 자신의 내면을 거울삼아 타인을 헤아리는 정치를 하라는 뜻이니 역시 어짊이 수제와 치평을 아우르는 덕목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결정적으로 그 두 가지를 실천했을 때 그 효력이 치평의 대상인 문밖의 국가와 수제의 대상인 문안의 가정에서 동일하게 발생한다는 마지막 대목이 이를 못 박아 줍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장의 내용이야말로 군자학의 핵심 원리를 스승이 제자에게 전수해주는 장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중궁이 한 발언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불초 제자 염옹, 삼가 스승님의 가르침을 평생 받들겠나이다!” 이런 발언은 전통적 사제관계에서 2가지 경우 중 하나에 해당합니다. 스승과 제자가 처음으로 사제의 인연을 맺을 때 아니면 스승으로부터 모든 과정을 마쳤으니 하산해도 좋다는 인증을 받았을 때입니다.
어짊에 대해 묻고 답하는 것은 공자학단에서 최상승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 가능하다고 할 때 당연히 후자에 해당한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이를 감안하면 중궁의 발언은 군자학의 정수를 전수받았음을 깨닫고 하직인사를 올릴 때의 감사 말에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중궁이야말로 공자의 소수정예 전법제자(傳法弟子) 중 하나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