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편 안연(晏然) 제1장
안연이 어짊에 대해 물었다.
공자가 말했다. “나를 이기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어짊의 실천이다. 하루라도 나를 이기고 예로 돌아간다면 천하가 어짊으로 귀화할 것이다. 어짊의 실천은 자신에게서 찾아야 할 것이니 남에게서 찾아서야 되겠는가!”
안연이 말했다. “그 (구체적 실천) 조목에 대해 여쭙니다.”
공자가 말했다.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마라.”
안연이 말했다. “이 안회(안연의 이름)가 비록 어리석고 둔하지만 그 말씀을 받들겠나이다.”
顔淵問仁.
안연문인
子曰: “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 爲仁由己. 而由人乎哉!”
자왈 극기복례위인 일일극기복례 천하귀인언 위인유기 이유인호재
顔淵曰: “請問其目?”
안연왈 청문기목
子曰: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자왈 비례물시 비례물청 비례물언 비례물동
顔淵曰: “回雖不敏, 請事斯語矣.”
안연왈 회수불민 청사사어의
공자 최고의 제자로 꼽히는 안연은 ‘논어’의 21개장에 등장합니다. 하지만 스승 공자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4개장에 불과합니다. 대부분은 안연에 대한 공자와 다른 제자들의 평가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그렇기에 공자와 안연이 군자학의 핵심 덕목인 어짊에 대해 유일하게 대화를 나눈 이 장이 중시됩니다.
앞서 본 중궁과 공자의 대화(‘안연’ 편 제2장)와 이 장의 구성과 형식이 매우 닮았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중궁처럼 안연 역시 공자로부터 군자학의 핵심 가르침을 전수받은 전법 제자가 됐다는 자의식 아래 “불초 제자 안회, 삼가 스승님의 가르침을 평생 받들겠나이다!”라며 감사의 예를 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안연의 경우 그 핵심은 극기복례(克己復禮)입니다. 나를 이기고 예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도덕주의자인 주희는 이를 인과관계로 새겼습니다. 사욕에 물들지 않도록 마음을 깨끗이 갈고닦으면 저절로 예의 정신으로 되돌아가게 된다고.
제 생각은 다릅니다. 수기치인(修己治人)과 동일한 병렬구조로 보는 것이 덕을 쌓는 수제학과 도를 실현하는 치평학, 두 바퀴로 굴러가는 군자학의 핵심을 꿰기 때문입니다. 수기(修己)와 극기(克己)는 개인적 덕의 함양이라는 수제학에 대한 함의를 담은 표현입니다. 치인(治人)과 복례(復禮)는 공동체적 도의 실현이라는 치평학에 공명하는 표현입니다.
수기와 극기가 도덕 수양에 관련됐음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다스린다는 치인이 정치의 영역을 다루는 치평학과 이어진다는 것도 쉽게 납득할 수 있습니다. 헌데 예로 돌아간다는 복례는 어떻게 정치와 연관되는 것일까요?
먼저 발생학적 측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공자의 군자학이 예에서 태동됐다는 점입니다. 공자나 사어(축타)가 속한 유인(儒人)은 고대 의례와 제례 전문가였습니다. 오늘날의 의전담당 전문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고대 중국에서 이 의례와 제례가 국사의 절반을 차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천자(왕)라면 하늘과 종묘(조상신), 사직(토지와 곡물의 신)에 제사를 올려야 했고 제후 역시 조상신과 토지신에 대한 제사가 중요했습니다. 또 제후 간의 외교의례와 맹약에서도 순서와 절차 심지어 어떤 음악을 연주하느냐를 놓고도 사생결단의 논쟁이 펼쳐질 정도였습니다.
의전담당자들이 이에 대해 논박을 벌일 때는 늘 그 연원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또 왜 그러한 의전이 생겼는지를 알아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유인들은 역사(史)에 정통할 수밖에 없었고 역사를 공부하기 위해서 책과 기록을 가까이하다 보니 글(文)에 대한 전문가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에서 문(文), 사(史), 예(禮)가 하나의 몸뚱이를 공유한 머리 셋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유인으로서 이 셋에 정통했던 공자는 그 예가 고대 성인들이 국가운영을 위해 설계한 질서와 제도의 산물이라는 깨달음에 도달했습니다. 예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국가운영을 위한 OS(운영체제) 소프트웨어와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복례는 그렇게 영화 '매트릭스'에서 매트릭스를 운영하는 원천 프로그램인 '소스'와 접속하게 된다는 것과 유사한 함의를 지닙니다. 다시 말해 예의 원천에는 공동체의 질서와 조화를 유지하는 정치 원리가 숨 쉬고 있는 것입니다.
주나라의 그 OS프로그래머는 주나라 제도와 질서의 설계자인 주공(희단)이었습니다. 또 주공의 봉국으로 그 후손이 다스리는 노나라는 대대로 그 원천소스로 접근하는 만능열쇠를 쥐고 있는 키메이커(Keymaker)의 나라나 다름없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공자는 이런 계승 의식을 토대로 자신의 시대가 필요로 하는 정치 변화를 추동하려고 한 것입니다. 이 점이 동시대 수많은 다른 유인과 공자의 차별성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복례는 곧 예의 원천으로서 국가운영 OS의 프로그램 언어에 정통하게 된다는 뜻이요, 무수한 정치적 문제에 대한 원천적 해법을 제시할 만능열쇠의 제작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기에 복례가 치인과 마찬가지로 공동체 운영의 도를 터득하고 실행에 옮긴다는 뜻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자공으로부터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안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영민했던 안연조차 퍼뜩 이를 깨닫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공자 제자 중에서 공부하기를 가장 좋아한(호학한) 인물이 안연이었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호학에 있어서만큼 결코 다른 사람에 뒤지지 않는다 했던 공자조차 한수 접어줬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니 안연이야말로 공자 학단에서 가르치는 육예(六藝)를 넘어 예(禮), 문(文), 사(史)에 두루 정통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짊의 치평적 요소가 예로 되돌아가는 복례라고 하니 살짝 당황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추가적 힌트를 얻고자 “극기복례를 구체적 일상에서 실천하기 위한 조목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졌을 수 있습니다. 안연의 질문에서 이런 미적지근한 반응을 감지한 공자의 답은 극기보다 복례에 집중됩니다. 한마디로 ”내가 가르친 예에 다 들어있는데 뭘 다시 묻느냐“입니다.
안연의 깨달음은 그 순간 찾아듭니다. 공자가 그에게 전법한 예에 국가운영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는 깨달음입니다. 주나라를 운영할 모든 OS 소프트웨어에 정통해 그 프로그램에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언제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자신의 손안에 쥐어져 있다는 자각입니다.
안연이 공자에게 나라 다스리는 법(爲邦)에 대해 묻고 답하는 15편(위령공) 제11장의 대화는 이 장에서 깨달은 것에 대한 연습문제 풀이 격이라고 보면 됩니다. 공자는 자신이 가르쳤던 것 중에서 하나라 때의 역법, 은나라 때의 수레, 주나라 때의 의복을 상기시키면서 배운 것을 종합해 응용하면 어떤 문제도 헤쳐 나갈 수 있음을 일깨워준 것입니다.
자신이 공자에게 배워온 모든 것이 극기복례, 곧 수제의 덕과 치평의 도에 연결됨을 깨닫게 된 안연은 그 순간 자신이 공자의 전법제자가 됐음을 자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중궁과 마찬가지로 감격어린 인사를 올리며 감사의 뜻을 표하게 된 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