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원주의자 공자를 보여주는 5중주

11편 선진(先進) 제25장

by 펭소아

자로와 증석, 염유, 공서화 4명이 공자를 모시고 앉아있었다.

공자가 말했다. “너희보다 나이가 조금 많다 하여 나를 어려워 말기 바란다. 너희는 평소에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데 만약 너희를 알아주는 이가 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자로가 예를 차리지 않고 불쑥 나서며 말했다. “천승지국이 큰 나라 사이에 끼여 밖으로는 군사적 침략의 위협에 시달리고 안으로는 기근에 시달린다면 저 중유가 정치를 맡으면 3년 만에 씩씩하게 제 갈 길을 아는 나라로 만들 겁니다.”

공자가 자로의 말을 듣고 미소를 지었다. “구야, 너는 어떠냐?”

염유가 답했다. “사방 6, 70리 또는 5, 60리쯤 되는 지역의 정치를 저 염구가 맡아 3년 안에 백성의 살림살이를 풍족하게 만들어 보이고 싶습니다. 다만 예약으로 백성을 교화하는 일은 (이를 맡아줄) 군자를 기다리겠습니다.”

“적아 너는 어떠냐?” 공서화가 대답했다. “잘할 수 있다고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종묘의 제사와 제후의 회맹 때 예복을 입고 예관을 쓰고 의례를 보좌하는 소상(小相)의 역할을 맡고 싶습니다.”

“점아, 너는 어떠냐?” 증석은 비파를 연주하다가 퉁 내려놓고 일어서 답했다. “저는 세 사람이 말한 것과 결이 다릅니다.”

공자가 말했다. “무슨 해가 되겠느냐? 각자 자신의 포부를 말해보는 것일 뿐인데.”

“춘삼월이 되면 봄옷으로 갈아입고 대여섯 명의 청년과 예닐곱 명의 동자를 데리고 나가서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의 봉우리에서 바람을 쐬고 노래를 부르면서 돌아올까 합니다.”

그 말을 듣고 공자가 탄식하며 말했다. “나는 점과 함께 하겠노라.”

세 사람이 물러난 뒤 증석만 남았다. 증석이 물었다. “세 사람의 말은 어떤가요?”

공자가 말했다. “각자 자신의 포부를 말한 것뿐이다.”

증석이 다시 물었다. “스승님은 어찌 중유(자로)의 말에 웃으신 겁니까?”

공자가 말했다.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예로 해야 하는데 그의 말이 겸손하지 않아 웃은 것이다.”

“구(염유)가 말한 것은 나랏일이 아닙니까?”

“사방 6,70리 또는 5,60리이면서 나라가 아닌 것을 보았느냐?”

“적(공서화)이 말한 것은 나랏일이 아닙니까?”

“종묘의 일과 회맹의 일이 어찌 제후의 일이 아니겠느냐? 적이 하려는 일이 작다면 누가 큰 일을 한다고 할 수 있겠느냐?”


子路, 曾晳, 冉有, 公西華侍坐.

자로 증석 염유 공서화시좌

子曰: “以吾一日長乎爾, 毋吾以也. 居則曰: ‘不吾知也!’ 如或知爾, 則何以哉?”

자왈 이오일일장호이 무오이야 거즉왈 불오지야 여혹지이 즉하이재

子路率爾而對曰: “千乘之國, 攝乎大國之間, 加之以師旅, 因之以饑饉, 由也爲之, 比及三年,可使有勇且知方也.”

자로솔이이대왈 천승지국 섭호대국지간 가지이사려 인지이기근 유야위지 비급삼년 가사유용차지방야

夫子哂之. “求. 爾何如?”

부자신지 구 이하여

對曰: ”方六七十, 如五六十, 求也爲之, 比及三年, 可使足民. 如其禮樂, 以俟君子.“

대왈 방육칠십 여오육십 구야위지 비급삼년 가사족민 여기예악 이사군자

“赤, 爾何如?”

적 이하여

對曰: “非曰能之. 願學焉宗廟之事. 如會同, 端章甫, 願爲小相焉.”

대왈 비왈능지 원학언종묘지사 여회동 단장보 원위소상언

“點, 爾何如?”

점 이하여

鼓瑟希, 鏗爾, 舍瑟而作, 對曰: “異乎三子者之撰.”

고슬희 갱이 사슬이작 대왈 이호삼자자지찬

子曰: “何傷乎? 亦各言其志也.”

자왈 하상호 역각언기지야

曰: “莫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

왈 모춘자 춘복기성 관자오육인 동자육칠인 욕호기 풍호무우 영이귀

夫子喟然歎曰: “吾與點也.”

부자위연탄왈 오여점야

三子者出, 曾晳後, 曾晳曰: “夫三子者之言何如?”

삼자자출 증석후 증석왈 부삼자자지언하여

子曰: “亦各言其志也已矣.”

자왈 역각언기지야이의

曰: “夫子何哂由也

왈 부자하신유야

曰: “爲國以禮, 其言不讓, 是哂之.”

왈 위국이례 기언불양 시신지

“唯求則非邦也與?”

유구즉비방야여

“安見方六七十如五六十而非邦也者?”

안견방육칠십여오육십이비방야자

“唯赤則非邦也與?”

유적즉비방야여

“宗廟會同, 非諸侯而何? 赤也爲之小, 孰能爲之大.”

종묘회동 비제후이하 적야위지소 숙능위지대


‘논어’를 구성하는 약 500장 중 본문이 가징 긴 장입니다. 공자와 4명의 제자로 구성된 퀸텟(5인조 연주팀)이 재즈의 즉흥연주(improvisation)를 펼치는 것 같은 장면이 연출됩니다. 퀸텟의 리더인 공자가 제일 먼저 나서 주제 선율을 슬쩍 들려줍니다. 자신의 재주를 높이 사는 제후에게 발탁된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느냐는 질문입니다. 저마다의 정치적 야심에 대한 질문입니다. 수제학이 아니라 치평학의 테마입니다.


네 제자는 자로, 증석, 염유, 공서화입니다. 자로와 염유는 ‘논어’의 단골 출연자입니다. 반면 증석과 공서화는 낯선 인물입니다. 증석(曾晳)은 자여(증참)의 아버지로 본명은 점(點), 자는 자석(子晳)입니다. 공자의 초기 제자로 추정되는데 아들인 자여가 ‘논어’에서 15장이나 등장하는데 반해 딱 이 장, 1개장에만 등장합니다. 공서화(公西華)는 성이 공서(公西), 이름은 적(赤), 자는 자화(子華)로 의례와 외교에 능해 대부 반열에 올랐다고 추정되는 인물입니다. ‘논어’에서는 모두 5개장에 등장합니다.


자로는 공자보다 아홉 살이 적습니다. 증석은 여섯 살 연하로 안연의 아버지 안로와 더불어 공문에서 가장 나이 많은 그룹에 속합니다. 염유는 공자보다 29세 아래였다고 '중니제자열전'에 소개돼 있습니다. 모두 제(弟) 계열의 제자입니다.


문제는 공서화입니다. ‘중니제자열전’에는 공자보다 42세 적다고 소개돼있습니다. 자(子) 계열의 제자라는 소리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등장한 것으로 봐서는 착오가 아닐까 합니다. 공자가 “내가 너희들보다 나이가 ‘좀 많다(一日長)’고”라고 말하기엔 나이차가 너무 많습니다. 저마다의 정치적 야망을 허심탄회하게 토로하는 자리에 함께 어울리기에도 너무 어립니다. 게다가 ‘예기’ 단궁 편을 보면 공자가 죽었을 때 공자 묘지명의 공식 기록에 해당하는 지(誌)를 공서화가 썼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만큼 공자의 생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소리이기에 자 계열의 제자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중니제자열전’에 오류가 있거나 아니면 원래는 다른 인물이었는데 후대 편집 과정에서 대타로 들어갔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책은 ‘논어’라는 고전 텍스트 자체에 집중하기에 공서화가 제(弟) 계열 제자임을 전제로 이야기를 펼쳐가려 합니다.


이 장은 공자가 초창기부터 동고동락한 제 계열 제자를 불러다놓고 군자학의 양대 기둥이 수제학과 치평학 중 후자에 해당하는 주제를 논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자로와 염유는 여기에 딱 맞는 인물입니다. 공문십철 중에서 정치 업무(政事)에 뛰어나다고 공인받은 두 사람이니까요. 공서화는 예와 외교에 능하다는 점에서 자로와 엇비슷한 치평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증석은 이들과 계열이 다릅니다. 하지만 관련 자료가 워낙 적어 정확히 어떤 인물인지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먼저 아들인 자여가 훗날 수제파의 거두가 되기에 같은 수제파일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효자로 유명한 자여가 아버지가 걸어간 길에 충실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장에서 발언이나 ‘맹자’에서 인용된 공자의 발언으로 봤을 땐 도가적 계열이었을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우선 이 장의 내용을 보면 다른 사람들이 정치참여의 뜻을 밝히고 있는데 홀로 고고히 자연과 함께 풍류를 즐기며 사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공자가 초나라 접경지역에서 만난 도가 계열 인물과 차이점은 세상을 등지는 출세간(出世間)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그것을 이루겠다는 입세간(入世間)의 경지 안에서 이를 운위한다는 점입니다.


‘논어’ 18편 미자(微子) 제6장에서 출세간에 해당하는 ‘피세지사(辟世之士)’의 삶을 권하는 장저와 걸닉의 발언에 대해 공자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사람이 날짐승, 길짐승과 무리 지어 살 수는 없는 법이다. 우리가 이 세상 사람과 함께 하지 않으면 누구와 함께 할 것인가?” 증석은 이러한 공자의 입세간의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세속적 출사의 길 대신에 안빈낙도의 풍류를 지향하겠다고 공개 천명합니다.


사대부라면 마땅히 입신출세를 꿈꿔야 한다는 후대의 속유들은 이를 비판적으로 바라봅니다, 하지만 실제 ‘논어’ 속 공자는 오히려 입신출세의 야망을 포기하고 안빈낙도의 길을 택하려는 제자들에게 찬사를 보내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공자 자신은 그토록 출사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으면서 왜 출사의 뜻을 포기하는 제자들을 고무하고 격려한 것일까요?


공자가 다양한 생각을 포용하려는 다원주의자였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타고난 결이 다른데 그 결에 맞지 않는 삶을 강요하기보다는 저마다의 자신의 결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장에서 공자가 네 제자들에게 스승의 눈치를 보지 말고 허심탄회하게 속내를 털어내라고 밝힌 뒤 제각각인 그들의 포부를 모두 존중한 것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공자가 증석의 포부를 듣고 유독 그의 손을 들어준 것 역시 그 연장선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른 셋은 모두 스승의 뜻을 좋아 평소 스승이 좋아할 만한 테마의 변주를 연주했습니다. 그 와중에 증석만이 튀는 연주를 들려준 것입니다. 평소 같으면 화음을 모른다고 질책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자 자신이 이미 프리스타일의 재즈 연주를 주문한 터였기에 “그 또한 나쁘지 않구나”라고 호응하려다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에 아예 증석의 변주를 메인 테마로 격상시켜준 것입니다.


이는 증석의 말을 듣고 상찬의 발언을 내놓기 전에 공자가 ‘위연탄(喟然歎)’했다는 표현에서 읽어낼 수 있습니다. 길게 한숨을 내뱉은 뒤 탄식하듯 말했다는 뜻이니 처음엔 ‘허, 참’하고 잠시 당황했다가 ‘그래, 그것도 나쁘지 않은 인생이지’라는 생각을 거쳐 ‘출사의 뜻을 이루지 못한 지금의 나로서는 오히려 증석의 꿈이 부럽구나’까지 수많은 생각이 그의 머리를 스쳐갔음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증석의 이런 노장 취향의 노선은 ‘맹자’ 진심장구 하편 제37장에서도 드러납니다. 맹자는 중용을 실천하는 군자에 미치지 못하는 인물을 등급을 매깁니다. 고매한 뜻을 지녔지만 언행이 이를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미치광이(狂者)’, 옳지 못한 것을 견디지 못하는 ‘고집쟁이(狷者)’, 겉보기엔 도덕군자 같지만 두루뭉술하게 잇속만 챙기는 향원(鄕源)의 순서입니다.


미치광이와 고집쟁이는 ‘논어’ 13편 자로(子路) 제21장에 등장합니다. 각각 자기가 좋아하는 한 가지만 파고드는 마니아(mania)와 하기 싫은 일은 죽어도 안 하는 매버릭(maverick)으로 풀어낼만한 인물상입니다. 향원은 ‘논어’ 17편 양화(陽貨) 제13장에 등장합니다. 좋게 말하면 무골호인, 나쁘게 말하면 닳고 닳은 속물(snob)을 지칭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맹자가 미치광이를 대표하는 인물 3명을 언급하면서 그중 하나로 증석을 지목한 점입니다. 맹자는 자여-자사로 이어진 수제파 학문의 계승자입니다. 헌제 자기 학파 조종의 아버지인 증석을 뜻은 고매하지만 언행이 이를 뒷받침 못한다고 평한 것입니다. 그만큼 맹자와 주자로 이어지는 수제파의 관점에선 종잡기 힘든 인물이라는 고백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공자사상에 온축된 초기 노장사상의 씨앗을 간직한 인물로 증석을 주목합니다. 이 장의 주인공인 증석이야말로 공자사상에는 초기 노장사상의 원류가 온축 돼 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입니다. 무위(無爲)와 안빈낙도(安貧樂道)로 표현되는 공자 학단 내의 이런 도가적 흐름은 세속적 출세보다 내면의 자유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서양의 자유주의적 풍토와 상통하는 측면이 큽니다. 증석뿐 아니라 민자건, 안연, 원헌, 칠조개, 계차(공석애) 등에서도 확인되는 이런 도가적 전통이 점차 강화돼 별도의 학파로 독립한 것이 장자 사상이라면 노자사상은 본디 중국 내 전통적으로 존재했던 황로학의 전통이 공자사상에 맞대응하며 재정립된 것으로 봐야 합니다.


증석 다음으로 이 장에서 주목해야 할 답은 자로의 답입니다. 증석이 답하기 전까지 사실상 메인 테마는 자로의 답이 담당하기 때문입니다. 솔직 담백한 자로는 전차 1000대~9000대를 동원할 수 있는 천승국의 정치를 맡아 부국강병을 이루겠노라고 말합니다. 전차 1만대 이상을 동원할 수 있는 만승국에 해당하는 나라는 당시 제나라, 두 진나라, 초나라, 오나라 정도였습니다. 천승국은 노나라와 위나라 같은 중간 크기의 나라를 말합니다. 사실 공자를 포함해 이 장에 등장하는 5명은 모두 노나라 출신입니다. 따라서 자로가 말하는 천승국이 노나라를 염두에 둔 것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로의 답은 공자의 꿈과 궤를 같이 합니다. 다만 자로는 부국강병만 염두에 뒀다면 공자는 문덕(文德)을 통한 백성 교화까지 염두에 뒀습니다. 염유는 공자의 미소를 보고 이를 읽어냈습니다. 그래서 사형인 자로보다는 사이즈가 작은 나라를 언급하되 자로와 마찬가지로 자신 역시 백성 교화까지 감당할 수 없으니 이를 다른 군자에게 맡기겠노라고 답한 겁니다. 그리고 공서화는 이를 잽싸게 받아 그 교화의 한 축을 담당할 예(禮) 분야의 전문가가 되겠다고 천명한 것입니다. 따라서 자로가 가장 먼저 큰 그림을 그리자, 염유가 거기에 빠진 대목을 채워 넣고 공서화가 그 디테일을 섬세하게 살려냈다고 봐야 합니다.


공자의 질문에 답을 하는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학습효과가 자연스럽게 발현된 것입니다. 공자는 이를 꿰뚫어 봤기에 제각각으로 보이는 제자들의 답을 치평학의 일이관지로 꿰어 증석에게 설명해준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유독 자로의 포부에 대해서만 웃음지었던 것을 자로에 대한 폄하의 의미로 새기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공자 질문에 부족하나마 첫 단추를 꿴 자로의 우직함에 대한 신뢰와 애정의 웃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 같이 동고동락한 초기 제자들이지만 격의 없이 흉허물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제자가 바로 자로임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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