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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소아 Mar 10. 2022

최고주권자가 누구인지 보여준 선거

2022년 3월 10일

  3월 9일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저녁 7시 지상파 방송 3사와 jtbc의 출구조사 결과가 엇갈렸다. 3사 조사에선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0.6% 차이로 이긴다였고 jtbc조사에선 0.7% 차이로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이긴다였다. 에측 그대로 박빙의 승부는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졌다. 사전투표에서 앞선 이재명 후보가 초반부터 앞서갔으나 밤 0시 30분을 넘긴 시간 개표율 55%가량이 된 시점부터 윤석열 후보가 역전을 했다. 하지만 표차가 너무 적었기에 섣불리 예측할 수 없었다. 


  우민은 여론조사 결과를 뒤집는 대통령 선거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대선의 여론조사에서 줄곧 앞서 온 윤석열 후보가 이길 것이라고 봤다. 실제 선거법상 공개되지 못한 막판 여론조사에서도 윤석열 후보가 최대 5%까지 앞서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헌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박빙으로 나타났다. 아무래도 선거 막판 여론조사 결과만 믿고 기고만장해진 윤 후보의 반페미니즘적 발언과 언론과 노조에 대한 막말 퍼레이드가 독으로 작용한 것 아닐까라고 우민은 생각했다. 


  그럼에도 새벽 1시 반경 개표율 75%를 넘기는 사황에서 윤 후보와 이 후보의 득표율 차가 꾸준히 1% 안팎을 유지하면서 승리의 추가 윤 후보에게 기울어졌다는 판단이 섰다. 이재명 후보가 동쪽, 윤석열 후보가 서쪽의 전폭적 지지를 받는 동서 양분 구도에 다시 경기인천은 이후보, 충청대전은 윤후보로 남북 양분 양상이 겹쳐졌다. 승패는 결국 유권자 수가 가장 많은 서울에서 갈렸다. 전통적으로 민주당 표가 많은 도봉-강북-노원 3구  정도를 제외하고 서울 전역에서 윤석열 후보 지지세가 뚜렷하게 드러났다. 


   우민은 그 패배 원인이 부동산정책의 패착에 있다고 생각했다. 잘못된 부동산정책으로 집값을 폭등시킨 뒤 그에 대한 비판을 희석시키겠다고 집 있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세금폭탄을 돌린 것이 분노의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팔 수도 없는 집 값을 현기증 나도록 올려놓고선 그 덤텅이를 집 있는 사람들에게 뒤집어 씌운 민주당 정권에 대한 응징이었다. '세금을 올려놓고선 재집권에 성공한 정부가 없다'는 정치권의 금언은 이번에도 에외없이 들어맞은 것이다.  집 있는 사람들 뿐 아니었다. 전세대란으로 내몰린 사람들 내 집 마련에 부풀었던 꿈이 산산조작 나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집 없는 사람들의 설움과 원망도 더해졌다.  


  결국 윤 후보 48.6% 대 이 후보 47.8%로 0.73%포인트(26만7000여 표) 차이로 윤 후보가 신승을 거뒀다. 역대 대선 중 가장 작은 표차의 승리였다. 윤 후보 지지자들은 가슴을 쓸어내렸고 이 후보 지지자들은 쓴 입맛을 다셨다. 새벽 3시 48경 이 후보가 패배 승복 연설을 했고 윤 후보는 새벽 4시경 승리 확정 연설을 했다. 박빙의 표차로 승부가 엇갈려 셔일까 선거 결과에 일희일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우민이 보기에 그 대부분은 윤석열과 이재명,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관점을 동일시하는 반응이 많았다. 


  우민은 의아했다. 왜 이번 대선 결과를 최고주권자로서 국민의 선택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적은 걸까? 민주국가의 최고주권자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임을 망각하기 때문 아닐까? 그나마 눈에 띄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후보의 발언이었다. 문 대통령은 선거 전날(8일) "적극적 투표로 국민의 집단지성을 보여주기 바란다"라고 했다. 이 후보도 10일 오후 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 연설에서 문 대통령의 발언을 이어받기라도 하듯이 "지금의 이 선택도 국민들의 집단지성의 발현이라 생각한다"며 "국민 판단은 언제나 옳았다"라고 말했다.


   우민은 두 사람의 발언을 국민 모두가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번 선거 결과는 최고주권자로서 국민의 집단지성의 발현이자 그 의지의 표현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최고주권자라는 표현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표현으로 말하자면 왕이란 소리다. 민주국가의 왕은 총체적 개념으로서 국민이다. 


  그렇다면 그 왕의 지성과 의지가 가리키고 있는 바는 뭘까? 가장 단순한 형태의 정치권 용어로 말하면 정권교체이다 하지만 이는 왕의 용어가 될 수 없다. 정권은 왕의 것이며 왕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왕의 용어로 바꿔 표현하면 권력분점이다. 왕이 통치권을 위임한 세력이 어느 하나로 몰리기보다는 분산되기를 원한 것이라 봐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입법부는 민주당이 압도적 우위에 있다. 사법부인 대법원의 보수 판사와 진보 판사의 비율을 보면 진보 판사가 우위에 있다. 이런 상태에서 문재인 정부의 실정에도 불구하고 행정부까지 민주당에게 계속 넘기게 될 경우 이는 장기집권을 넘어 독재로 흐를 우려가 있다. 그 행정부의 수장이 우유부단한 문재인 대통령인 경우는 용인할 수 있지만 독선적인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다른 이야기가 된다. 


  왕(최고주권자)의 관점에 섰을 때 이는 매우 위험한 구도가 된다. 문재인 정부 때 벌어졌듯이 왕의 뜻을 무시하고 왕의 권위와 이익에 도전하는 신권의 독주가 더욱 심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를 견제하기 위해 좀 모자라고 부족하더라도 윤석열 같은 사람을 5년짜리 임기 대통령에 앉힌 것이라는 설명이 가능하다.  설사 그가 독주하려 한다고 해도 입법부와 사법부가 그를 옥죄는 형국이기 때문에 그런 독주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에겐 김건희라는 아킬레스건이 있기에 왕의 뜻을 거스를 경우 처단하기도 쉽다. 


  대한민국의 출발과 함께 왕좌에 앉았으나 그동안 자신의 힘과 권위를 잘 몰랐던 왕은 이제 충분히 알게 됐다.  5년 임기의 대통령이 별 거 아니라는 것을. 권불십년이라는데  권불반(半)십년도 못 되는 권력이란 것을. 게다가 2017년의 촛불 징치를 통해 왕을 속이거나 왕을 능멸할 경우에 대통령 아니라 대통령 할아버지도 가차 없이 처낼 수 있다는 것을.


  우민은 아테네 민주정과 로마 공화정 그리고 현대 민주정의 역사 공부를 통해 깨달았다. 민주주의 하의 왕(국민)은 결코 최고의 인물에게 국가운영을 맡기지 않는다는 것을. 왕의 관점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인물이 바로 당대 최고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가 권력에 취하게 되면 자신이 똑똑해 그 자리를 차지했다고 생각 아래 왕을 얕잡아보고 스스로 왕이 되려 할 가능성이 크다. 로마 공화정을 무너뜨린 카이사르와 프랑스혁명 후 공화정부 무너뜨린 나폴레옹이 대표적 사례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국부라는 타이틀에 취해 종신집권을 노린 이승만이나 쿠데타로 집권한 뒤 자기 잘난 맛에 취해 독재자의 길을 걸어가지 않았던가. 그래서 민주국가의 노련한 국민들은 단순히 똑똑하고 유능한 야심가보다는 어딘가 모자 라보이지만 국민의 뜻을 크게 거스르지 않을 사람에게 단기간의 권력을 쥐어주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이번 대선은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라 할 만큼 인물난이 심각했다. 왕의 관점에서 보자면 유능한 '나쁜 놈' vs 어리숙한 '못난 놈'이 왕의 종복 자리를 놓고 다툰 격이었다. 왕조국가의 역사를 봐도 대부분의 왕들은 전쟁이나 내란 같은  위기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전자보다는 후자를 선택해왔다. 왕에 대한 충성심을 끊임없이 저울질하면서. 1919년 민국 선언 이후 이 땅의 왕이 된 국민은 식민지, 전쟁, 쿠데타, 빈곤탈출, 민주화, 외환위기 같은 비상시국의 연속 속에 살아왔다. 그런 비상상황에선 유능한 나쁜 놈이 어느 정도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이 과연 그런 비상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고 판단했기에 왕의 뜻을 따르지 않을 때 언제든 쳐낼 수 있는 어리숙한 못난 놈을 선택한 것 아닐까? 그 역시 미덥지 않아 0.73%포인트 차이라는 아슬아슬한 지지율의 사슬로 이중 안전장치까지 확보해놓고 통치권을 위임한 것이다. 이 땅의 진정한 왕이 누구인지를 뚜렷이 각인시키기 위해. 이야말로 이번 선거에서 발휘된 국민의 집단지성이자 집단의지 아닐까라고 우민은 생각해봤다. 



#우민은 제멋대로 지어 본 제 별호입니다. 제 본명이 한자로 '현명한 재상'이란 거창한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반대로 그저 '또 하나의 백성(又民)'일 뿐이며 '어리석은 백성(愚民)'이자 '근심하는 백성(憂民)'에 불과하다는 뜻을 담아 지어 봤습니다. '우민일기'는 제 글이 전지적 작가 시점에 가까운 '맨스플레인'이 많다는 생각에 제 자신을 3인칭으로 객관화하려는 글쓰기 시도입니다. 제가 결론을 끌어내기보다는 여러분의 참여를 끌어내는 질문을 던지는데 더 치중하려고 합니다. 많은 응답과 질정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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