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우민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펭소아 Dec 16. 2021

대선캠프 들어간 지식인들에게 고함

2021년 12월 16일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팔았다고 한국에선 악의 화신처럼 비판받는 파우스트는 서구에선 영웅이다. 악마에게 영혼을 넘길지언정 "시간아 멈추어라"라는 마지막 말을 내뱉기 전까지 자유로운 지적 편력과 영혼의 독립성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파우스트를 비웃으면서 정작 대선캠프에 몸담기를 주저 않는 한국의 학자들이야말로 진정 영혼을 판 반지성인이라고 우민은 생각한다. 독립적 사고를 멈춘채 오로지 '우리편 천사, 상대편 악마'의 주문만 내뱉는 주술사로 전락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현재 유력 대선주자의 캠프에 가담한 지식인들의 꼬락서니이자 유시민 씨가 말한 어용지식인의 일그러진 초상이다.


  한국사회에서 '독립된 지식인(Independent Intellectual)'의 씨가 말라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과거제를 도입한 6세기 이후 1400년 이상 동아시아에서 지식인 여부를 판단하는 척도는 과거급제였다. 입신양명하지 못하면 지식인 대접을 못받았다. 그러다보니 대다수 지식인이 독립적 사고를 하지 못한채 어떻게든 나랏님 눈에 들어 벼슬살이하기만을 간구하는 어용지식인의 길을 걸었다. 


  그 길을 걷다가 "아 이건 지식인의 길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에 자발적 낙향을 택한 도연명의 길을 좇은 이는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 하서 김인후 등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송강 정철이나 다산 정약용처럼 권력에 밑보여 유배 보내져서도 임금 마음이 돌아서기만 오매불망 기다리는 비첩(卑妾)의식에 젖은 이들이 더 많았다. 


  일제강점기와 군부독재시절 그런 어용지식인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일군의 지식인이 생겼다. 이때 그들의 등불 중 하나가 폴 사르트르의 앙가주망(Engagement) 이론이었다. 지식인이라면 잘못된 세상을 바꾸기 위해 현실개혁 운동에 적극 참여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당시 지식인들이 전부 앙가주망에 참여한 것도 아니었다. 어정쩡하게 그 주변을 맴도는 이들이 더 많았다. 일제강점기엔 충성의 대상이 되어야할 임금이 사라져 비첩의식을 토로할 대상이 사라져 방황해야 했다. 군부독재시절엔 정통성 없는 정부에서 공직에 진출하는 것이 기생짓이나 다름없다는 주변의 눈총이 무서웠을 것이다.


  그런 앙가주망의 전통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한때 투사였던 사람들이 어용지식인으로 표변하는 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다시 앙가주망을 들고나오는 해괴한 논리비약이 등장했다. 앙가주망은 현실권력을 비판하고 싸우는 것이지 현실권력에 올라타는 것이 결코 아니다. 헌데 이를 입신양명의 수단으로 악용하니 곡학아세의 절정이 아닐 수 없다.


  캠프에서 도움요청이 왔을 때 현실개혁을 위해 자신의 식견을 공유하는 것까지 비판할 순 없다. 그러다 능력을 인정받아 공직을 맡게되는 것까지도 나무랄 순 없다. 하지만 그 순간까지는 학자적 양심과 식견을 포기해선 안된다.


  오로지 관직을 얻고자 자신의 이름 석자 팔기 바쁜 사람을 어떻게 지식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당신이 지식인이라면 자신이 해당 후보의 지지자임을 만천하에 떠들고 다니는 행위를 멈춰달라. 어쩔 수 없이 거기 이름을 올렸다하더라도 미래의 권력자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려 온갖 무리수를 남발하는 행위를 앙가주망으로 치장하는 치졸한 짓만큼은 자제를 부탁한다, 제발!

매거진의 이전글 뇌묄러의 원리와 미얀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