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30일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
그 다음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뒀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다.
그 다음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다.
그 다음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다.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
나를 위해 말해줄 이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나치독일 시대 독일 루터교목사였던 마르틴 뇌묄러의 연설을 토대로 재구성된 시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이다. 뇌묄러는 반공주의자였다. 그래서 처음엔 히틀러를 지지했다. 그러다 나치의 만행을 지켜보면서 반나치주의자로 돌아섰다. 독일 루터교회 전체가 나치에 굴복할 때 이에 반발했고 그로 인해 수용소에 수감되는 신세가 됐다. 나치독일 패망 후 수용소에서 풀려난 그는 독일국민의 참회와 화해를 이끄는 사회운동 지도자가 됐다.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는 시의 형태로 발표된 것이 아니었다. 1946년 대중연설 이후 다양한 곳에서 대상을 바꿔가며 연설을 펼쳤다. 1955년 출간된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는 인터뷰집이 유명해지면서 그 발언이 다양한 형태의 시로 인용되기 시작했다. 마지막 구절이 교회로 끝나는 버전도 많았다. 위의 시는 1971년 니묄러가 가장 선호하는 버전이라고 밝힌 내용을 번역한 것이다.
우민도 이 시를 접했을 때 당신의 이웃에게 부당한 일이 벌어질 때 침묵한 대가는 곧 당신을 영원히 침묵시키는 독재와 압제로 돌아옴을 일깨워주는 명문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터키 출신의 미국 경제학자 대런 애쓰모글루 MIT교수와 영국 출신의 미국 정치학자 제임스 로빈슨 예일대 교수가 쓴 '좁은 회랑'의 결론부에서 이 시를 다시 만났다. '즙은 회랑'은 국가(state)와 사회(society)의 건강한 길항관계가 유지될 때 그 구성원 개개인의 자유가 확보되는 '좁은 회랑' 안에 들어가는 체제가 된다는 주장을 담은 책이다. 애쓰모글루와 로빈슨은 그 결론부에서 이 시를 인용하며 '니묄러의 원리'를 강조한다. 언제든 괴물로 돌변할 수 있는 국가를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는 사회의 역량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회랑 밖으로 밀려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우민은 올해 2월초 쿠데타가 발생한 미얀마의 상황을 떠올렸다. 우민은 민주화를 짓밟는 군부의 만행을 규탄하고 미얀마 민주화운동을 지지한다. 하지만 그들이 꼭 잊지 말았으면 하는 교훈이 있다. 미얀마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에 가해진 군부의 부당한 압제와 폭력 앞에 침묵한 결과가 결국 미얀마 국민 전체에 대한 압제로 귀결됐다는 점이다. 다수의 이름으로 소수를 억압하는 일이 벌어질 때 그에 항의하고 저항하는 일을 멈춘다면 그것은 곧 당신의 집을 방문하게 될 것이다.
우민은 그런 미얀마에 대처하는 한국의 자세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특별하게 자유민주주의의 축복을 입은 국가다. 물론 그것은 3.1운동 이후 부당한 통치에 대한 집단저항이란 전통이 축적돼 성취된 고귀한 축복이기도 하다. 그것이 축복이라느 점은 홍콩의 우산혁명과 미얀마의 민주화운동에서 그 롤모델로 항상 한국이 거명된다는 것에서도 확인된다
그들이 한국 민주화의 상징곡이 된 '님을 위한 행진곡'을 목청 높게 떼창하는 것을 보면서 5.18 기념식에서 이 노래의 제창에 반대했던 자칭 보수세력은 무슨 생각을 할까? '멍청한 놈들, 저게 결국 국가와 사회의 분열을 가져오고 공산화의 빌미를 줄 것이라는 것을 왜 모르지?'라고 생각할까? 반대로 가열차게 그 노래를 불러왔지만 중국 눈치를 보면서 전략적 침묵을 지켜야한다고 주장하는 자칭 진보세력은 무슨 생가을 할까? '와! 역시 한국은 대단해, 한국에 태어난 나는 얼마나 행운아인가?' 라는 생각을 할까? 우민은 그런 분들에게 뇌묄러의 시를 살짝 비틀어 다시 들려주고 싶어졌다.
그들이 홍콩의 민주화운동을 짓밟으려 할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홍콩인이 아니었다.
그들이 미얀마에서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나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미야만인이 아니었다.
애쓰모글루와 로빈슨이 '좁은 회랑'에 들어갔다고 꼽은 나라는 역사적으로나 공간적으로 극히 드물다. 고대 아테네와 공화정 시절의 로마, 11세기 이후 공화정을 유지한 이탈리아 도시국가(코무네), 현대의 북유럽과 서유럽 국가, 미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 정도다. 그만큼 현재의 한국은 세계사적으로도 드문 나라다. 아시아에선 더욱 더 rare한 그래서 소중한 나라다. 따라서 저 시의 뒤를 따르게 될 아시아국가의 명단은 더 많아질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마지막 구절이 이렇게 끝날 수밖에 없음을 결코 잊어선 안된다고 우민은 생각한다.
그들이 우리 한국인에게 닥쳤을 때,
우리를 위해 말해줄 이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우민은 제멋대로 지어 본 제 별호입니다. 제 본명이 한자로 '현명한 재상'이란 거창한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반대로 그저 '또 하나의 백성(又民)'일 뿐이며 '어리석은 백성(愚民)'이자 '근심하는 백성(憂民)'에 불과하다는 뜻을 담아 지어 봤습니다. '우민일기'는 제 글이 전지적 작가 시점에 가까운 '맨스플레인'이 많다는 생각에 제 자신을 3인칭으로 객관화하려는 글쓰기 시도입니다. 제가 결론을 끌어내기보다는 여러분의 참여를 끌어내는 질문을 던지는데 더 치중하려고 합니다. 많은 응답과 질정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