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1일 만우절에
오늘은 4월 1일 만우절이다. 만우절은 거짓말이 허용되는 날이다. 우민은 그래서 거짓말에 대해 생각해봤다. 거짓말과 관련해선 철학사의 유명한 표현이 있다. "모든 크레타인 사람은 거짓말쟁이"라는 기원전 6세기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메니데스의 말이다.
이게 왜 문제적 발언일까? 저 말을 한 당사자인 에피메니데스가 크레타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라는 말이 맞다면 그 말을 한 에피메니데스도 거짓말쟁이여야 한다. 그렇다면 그가 한 저 말도 거짓이 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에피메니데스의 말이 거짓이라면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가 아니어야 한다. 하지만 에피메니데스가 이미 거짓말을 해버렸기에 진실이 될 수 없다는 역설이 발생한다.
얼핏 말장난 같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논리를 에피메니데스보다 선배인 헤라클레이토스의 유명한 명제에 적용해보면 느낌이 달라진다. "만물은 흐른다"를 주창한 헤라클레이토스는 "변하지 않은 유일한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뿐"이란 명언을 남겼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하이델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 괴델의 '불완전성의 원리'를 통속적으로 이해한 현대의 상대주의자들은 헤라클레이토스의 이 말을 금과옥조처럼 여긴다. 과연 변하지 않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제외하곤 모두 변하는 것이 진실일까?
뉴튼의 고전역학이 무너졌다 해도 우주 전체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변하지 않는 원칙이 없을까? 20세기 가장 재치 있는 물리학자 중 한 명인 리처드 파인먼은 지구가 멸망하게 돼 다음 세대애 단 한 문장만 전달할 수밖에 없게 된다면 "모든 것은 원자로 이뤄져 있다"라는 문장을 택하겠다고 했다. 이 역시 트집을 잡을 순 있다. 우주에는 원자 상태가 아닌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가 더 많으니까. 하지만 모든 것을 물질로만 한정한다면 저 명제는 불변의 진리를 담고 있다. 뿐만 아니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열역학 제1법칙)과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열역학 제2법칙) 그리고 광속불변의 법칙도 불변의 법칙으로 꼽힌다. 헤라클레이토스의 명제도 거짓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민은 생각한다. 절대적 진리라고 믿는 게 너무 많아도 문제지만 절대적 진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외엔 절대적 진리란 없다고 믿는 것도 문제라고. 진리는 영원불멸하다고 믿는 것이 맹목이라면 영원한 진리는 없다고 큰소리치는 것은 공허하다. 어쩌면 진리의 본질은 역설일지도 모른다. 온전히 이해하기 전까지는 진실과 거짓이 공존하는 듯 보이는 회색빛 또는 은빛이 어른거리는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상대성이론, 불확정성의 원리, 불완전성의 원리 역시 진리가 상대적임을 말해주는 이론이 아니다. 진리로 가는 길이 역설로 구성돼 있음을 일깨워주기 위한 징검다리 내지 사다리에 불과할 뿐이다 이를 망각하고 징검다리와 사다리가 진리 그 자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자신들의 유한성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우물 안 개구리'의 떼창에 지나지 않는다. 진리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의 우리가 변하는 것이다. 이를 혼돈해선 안 된다.
베르그송은 말했다. "존재한다는 것은 변화한다는 것이고, 변화하는 것은 성숙하는 것이고, 성숙하는 것은 끊임없이 자기자신을 창조해 나가는 것이다." 그렇다. 진리가 변하는 것이 아니고 역설적으로 비취는 진리의 빛을 받아 우리 자신이 변화하고, 성숙하고. 창조되는 것이다. 우리가 변화하는 것을 두고 진리가 상대적이라고 말하는 우를 범하진 말자.
#우민은 '어리석은 백성(愚民)'이자 '근심하는 백성(憂民)'인 동시에 '또 하나의 백성(又民)'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제 자신에게 붙인 별호입니다. 우민일기는 전지적 작가 시점에 가까운 '맨스플레인'에서 벗어나보자는 생각에 제 자신을 3인칭으로 객관화하려는 글쓰기 시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