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편 자한(子罕) 제7장 & 제6장
태재가 자공에게 물었다. “공부자는 하늘이 낸 사람인가? 어찌 그토록 여러 가지 일에 능한가?”
자공이 말했다. “정말이지 하늘이 성인이 되게 하려는 분이고 더불어 많은 재능을 준 분입니다.”
공자가 그 말을 전해 듣고 말했다. “태재가 나를 아는구나! 내가 젊어서 미천했기에 비루한 일에 두루 능하게 된 것이다. 군자가 여러 일에 능한가? 많지는 않다.”
금뢰가 말했다. “스승님께서 ‘내가 등용되지 못했기에 육예를 익혔다’고 하셨다.”
大宰問於子貢曰: “夫子聖者與? 何其多能也?
태재문어자공왈 부자성자여 하기다능야
子貢曰: “固天縱之將聖. 又多能也.”
자공왈 고천종지장성 우다능야
子聞之曰: “大宰知我乎! 吾少也賤, 故多能鄙事. 君子多乎哉? 不多也.”
자문지왈 태재지아호 오소야천 고다능비사 군자다호재 부다야
牢曰: “子云, ‘吾不試, 故藝.’”
뇌왈 자운 오불시 고예
大才는 관직명으로 ‘태재’로 읽습니다. 오나라와 송나라에서 상경 내지 집정대부에 해당하는 벼슬명입니다. ‘춘추좌전’에 따르면 자공은 노애공 시절 두 차례 오나라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기원전 489년과 483년입니다. 기원전 496년부터 오나라가 멸망하는 기원전 473년까지 오나라의 태재는 백비(伯嚭)였습니다. 따라서 이 장에 등장하는 태재가 백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백비는 본디 희(姬)성을 쓰는 진(晉)나라 공실 출신인 할아버지가 초나라로 망명한 이후 대대로 좌윤이란 고위직을 독점한 초나라 명문가의 일원이었습니다. 하지만 궁정 암투로 가문이 몰살 위기에 처하자 오나라로 망명한 뒤 오왕 부차가 즉위하면서 태재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이후 같은 초나라 출신의 명장 오자서와 손을 잡고 초나라로 쳐들어가 가문의 복수를 한 뒤 오나라의 숙원사업이던 월나라 정복까지 이룩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명신(名臣)이 따로 없습니다. 하지만 응시호보(鷹視虎步)라 하여 매의 눈초리에 호랑이 걸음걸이를 지녔으니 야심을 이루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함부로 사람을 죽일 상이라는 오나라 대부 피리의 인물평 그대로 주화입마하게 됩니다.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뇌물을 받고 월왕 구천의 목숨을 살려줘 후환을 키웠고, 내심 라이벌이라 여긴 오자서를 모함해 자결케 만듦으로써 오나라 멸망에 일조하게 됩니다. ‘춘추좌전’에선 오나라 멸망 후 그 대가로 월나라에서도 태재의 자리에 올랐다 하고 ‘사기’에서는 월왕 구천이 매국노라고 척살했다고 기록이 엇갈립니다.
분명한 것은 그가 정무능력은 탁월할지 몰라도 사심 채우기 급급해 나라를 망친 간신배라는 점입니다. 공자는 월나라가 오나라를 멸망시키기 6년 전에 숨을 거둡니다. 따라서 백비가 오나라를 월나라에 팔아먹었다는 것까지는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춘추좌전’에는 그에 대한 공자의 평가가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나라를 3차례나 바꿔 타면서 그 전의 나라 2개국에 큰 화를 입힌 그를 공자가 높이 평가했을 리 만무합니다.
이를 의식한 ‘논어’의 주석가들은 이 장에서 태재의 발언을 냉소적으로 풀어냅니다. “공자가 성인이라면 어찌 그리 재주가 많을 수 있느냐?”라고 시비를 걸었다는 식입니다. 하지만 눈치 빠른 자공의 응수를 살펴보면 그런 냉소적 질문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聖)은 본디 하늘의 목소리를 잘 듣는 사람, 곧 영매를 뜻했습니다. 그러다 점차 ‘하늘이 내려 보낸 사람’이란 뜻을 갖게 됐고 공자 이후 유가에서 ‘최고의 지혜와 덕을 갖춘 완성형 지도자’를 뜻하게 됐습니다.
백비는 유가의 인물이 아니기에 여기서 성자(聖者)라는 표현은 그냥 ‘하늘이 낸 사람’ 정도로 새기는 것이 맞을 듯싶습니다. 공자가 다방면에 걸쳐 풍부한 지식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공부자(부자는 대부 이상의 고위 관료에게 붙이는 경칭)는 하늘이 낸 사람이란 거요? 어찌 그리 다양한 분야에 뛰어나단 말이요?”라고 반신반의하는 질문을 던진 것으로 봐야 합니다. 공자를 유가의 성인으로 추앙하던 자공은 이를 냉큼 받아서 “진실로 하늘이 성인으로 삼으려는 분이 틀림없으며 그와 별도로 다방면에 유능하게 만드셨다”고 답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백비와 자공이 생각하는 성(聖)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백비에겐 ‘성=다능(多能)’이지만 자공에겐 성과 다능은 별개의 범주입니다. 공자가 말하는 성은 도와 덕을 겸비한 인(仁)을 최상으로 구현해낸 경지를 뜻합니다. 헌데 그 특징이 끊임없이 발을 놀리고 있지만 겉으로 보기엔 우아하게 호수 위에 떠있는 백조를 닮았습니다.
적재적소에 인재를 발탁해 공동체가 잘 돌아가도록 끊임없이 돌보고 살피되 스스로는 아무것도 안 하는 무위(無爲)를 실천하는 듯 보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이 다능과 연결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자공은 이를 잘 알고 있기에 공자가 성인은 맞지만 다양한 분야에 능한 것은 또 다른 이야기라고 선을 그은 것입니다.
이를 전해 들은 공자는 속으로 웃었을 것입니다. 자신을 추앙하는 자공이 자신을 성인의 반열에 올려놓으려고 너무 애쓴다 생각했을 테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자신이 성인의 반열에 오를 순 없다 생각한 공자는 자공의 확신이 아니라 백비의 의심이 맞다고 손을 들어줍니다. “내가 이것저것 많이 아는 건 성인이어서가 아니다. 그냥 비천한 신분으로 태어나 닥치는 대로 이런저런 일을 하고 살아야 했기에 팔방미인으로 비칠 뿐이다.”
고 김주혁 배우 주연의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2004년)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어수룩해 보이는데 온갖 일에 능수능란한 홍반장이란 캐릭터로 유명해진 영화입니다. 2500년 전 사람들 눈에 공자가 그런 홍반장으로 비쳤던 것입니다. 물론 오늘날의 관점에서 ‘공반장’이라 부르기엔 농사일이나 육체노동에는 문외한이었다는 아쉬움이 없지 않지만 팔망미인이란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공자는 그 와중에도 차마 성인이란 표현을 쓸 수 없어 그 대신 성인의 경지를 지향하는 군자를 끌고 옵니다. “그럼 군자는 나처럼 팔방미인이 되어야 할까? 아니다. 도를 닦고 덕을 쌓는 군자학에만 집중하면 된다. 그러니 나를 모범으로 삼지 말라.”
뇌왈(牢曰)로 시작하는 문장은 전통적으로 별도의 장으로 취급되지만 그 연장선에 놓인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로 묶었습니다. 화자인 뇌는 공자의 제자 중에서 성은 금(琴), 이름이 뇌(牢), 자가 자장(子張) 또는 자개(子開)인 인물입니다. ‘논어’에는 한 번밖에 나오지 않고 '중니제자열전'에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위(衛)나라 출신이라는 정도만 알려져 있습니다.
‘맹자’ 진심장구 하편 제37장에 등장하는 금장(琴張)과 동일인으로 추정됩니다. 자 계열 제자 중 선두주자인 전손사의 자도 자장(子張)입니다. 그래서 둘을 구별하기 위해 성과 자를 함께 붙여 호명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맹자는 중용을 실천하는 군자 아래로 고매한데 언행이 이를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광자(狂者), 옳지 못한 것을 견디지 못하는 견자(狷者), 도덕군자를 표방하지만 속물에 불과한 향원(鄕源)의 순서를 매겼습니다. 그중 광자를 대표하는 인물로 꼽은 인물이 자여(증참)의 부친이면서 공자 제자인 증석과 더불어 금장(琴張)입니다. 증석보다 먼저 언급되는 것으로 봐서 증석보다 나이가 많을 가능성이 큽니다.
‘춘추좌전’에도 금장이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는 위령공의 형이지만 한쪽 다리를 절었던 맹집(孟縶)의 호위무사 종로(宗魯)의 친구였습니다. 종로는 당시 위나라 사구이던 제표의 추천을 받아 맹집의 호위무사가 됐습니다. 제표는 위령공 대신 다른 제후를 세우려는 역모를 꾸미면서 맹집도 주살할 계획이니 막아서지 말라는 말을 종로에게 흘렸습니다. 그러자 종로는 제표와 의리를 지키기 위해 이를 맹집에게 알리지 않은 대신 맹집에 대한 의리도 지키기 위해 암살 현장에서 이를 막으려다 함께 죽음을 맞습니다.
노나라에 있던 금장이 그런 친구의 죽음을 조문하기 위해 위나라로 가려합니다. 공자는 그런 금장을 만류합니다. “군자는 의롭지 않은 일을 덮어주지 않고, 예가 아닌 것은 행하지 않는 법”인데 종로는 제표의 모반을 덮어줬고 주군인 맹집이 피살되도록 두는 잘못을 저질렀다는 이유에서 입니다.
이런 사료에 근거해 봤을 때 금뢰는 금장과 동일인으로 제 계열 제자인 증석과 비슷한 연배로 추정됩니다. 그만큼 자 계열 제자들보다는 공자의 살아온 이력을 잘 알았을 것입니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공자는 (미천한 집안 출신이었기에) 젊은 시절 벼슬길에 오르지 못했거나 올랐다 해도 미관말직에 머물렀기에 하위 관리(士)에게 필요한 육예(六藝)를 연마했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공자학당이 본디 하위 공무원 사관학교로 출발했지만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대부 이상의 고위 관료로서 갖춰야 할 덕목과 치세술을 가르치며 이를 군자학으로 정립하게 됐음을 재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 이를 토대로 다능(多能)은 기본적으로 육예와 관련된 전문적 기술에 능통함을 말하고 군자(君子)는 고도의 통치술을 연마하는 사람이라면 성(聖)은 그러한 통치술을 완벽의 경지까지 끌어올린 사람에게 쓰는 형용사임을 미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공자는 스스로를 다능함을 겸비한 군자 정도로 여기긴 했으나 성인의 반열에 오르기엔 부족하다고 여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