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편 태백(泰伯) 제19장 & 제18장
공자가 말했다. “위대하도다! 요(堯)의 임금 됨됨이여. 높고 크도다! 오로지 하늘의 크나큰 원리를 오로지 요만이 본받았도다. 넓고 넓도다! 백성은 뭐라 이름 지을지 몰랐도다. 높고 크구나, 그가 이룬 공적이여! 찬란하구나, 그가 이룩한 문화여! ”
子曰: “大哉! 堯之爲君也. 巍巍乎! 唯天爲大, 唯堯則之. 蕩蕩乎民無能名焉!
자왈 대재 요지위군야 외외호 유천위대 유요측지 탕탕호민무능명언
巍巍乎其有成功也, 煥乎其有文章也!“
외외호기유성공야 환호기유문장야
공자가 말했다. “높고 크도다! 순(舜)과 우(禹)가 천하를 소유하고도 간여하지 않음이여.”
子曰: “巍巍乎! 舜禹之有天下也而不與焉.”
자왈 외외호 순우지유천하야이불여언
전설의 선양(禪讓) 3인방인 요(堯) 순(舜) 우(禹)에 대한 공자의 평가를 볼 수 있기에 제19장과 제18장을 함께 묶어서 보겠습니다. 훗날 중국의 전설적 왕을 삼황오제로 묶어 거명하게 됩니다. 공자는 다른 인물은 거명하지 않았고 오직 오제의 끝자리를 차지하는 요와 순을 성군(聖君)의 출발점으로 삼았습니다. 그와 더불어 하나라의 시조인 우, 은나라를 창업한 탕, 주나라의 건국자인 문왕과 무왕 그리고 주나라 통치시스템(禮)의 설계자인 주공 정도를 성인(聖人)의 반열에 올렸습니다.
공자가 그 편찬에 깊게 관여했을 것이라 추정되는 서경(書經) 역시 요순에서 시작해 하은주의 주요 통치자들의 언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황제(黃帝), 전욱(고양), 제곡(고신)을 포함한 오제가 역사에 편입된 것은 전한 시대 사마천이 쓴 ‘사기’서부터입니다(오제본기). 사마천보다 400여 년 전이었던 공자시대 여와(또는 수인), 복희, 신농 같은 삼황과 오제 관련 기록이 훨씬 더 풍성했을 것입니다. 그러다 진시황의 분서갱유로 그런 기록의 상당수가 망실됐을 것이고 구전된 내용만 남게 됐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사마천이 황제를 필두로 한 오제를 중국 역사의 출발점으로 삼은 것은 그로부터 제도와 윤리가 완성됐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황제는 하늘과 땅을 법칙으로 삼아 제도와 윤리를 만들었고, 전욱‧제곡‧요‧순 4명의 성인은 황제를 계승하여 각각 제도와 윤리를 완성했다.” 그럼 그런 오제에 대한 기록이 더 풍부했을 공자는 왜 요순을 그 출발점으로 삼았을까요?
공동체를 이끌 지도자로서 군자는 혈통이 아니라 인격수양과 학문연마로 도를 깨치고 덕을 쌓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군자학의 관점에 서면 그 이유가 명확해집니다. 자신의 자식이 아니라 인물됨을 보고 왕좌의 후계자를 정하는 선양의 전통이 요순에서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요는 그 선양이라는 정치문화의 태초를 연 인물이기에 위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요는 제곡의 아들로서 배다른 형인 지(摯)가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자 그 대신 왕위에 오른 사람입니다. 또 단주(丹朱)라는 아들이 있었음에도 전욱의 먼 후손인 순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최초의 선양을 실천에 옮겼습니다. 제19장은 그러한 요에 대한 찬사로만 채워져 있는데 대재(大哉), 외외호(巍巍乎), 탕탕호(巍巍乎), 환호(煥乎) 같은 4종의 감탄사가 5차례나 등장합니다. ‘논어’에 이토록 많은 찬사를 한꺼번에 받은 인물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19장의 내용 중에서 3가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는 공자가 직접 언급하지 않은 것이니 바로 왕위를 자식이 아닌 사람에게 물려준 선양의 미덕입니다. 선양의 시발점이기에 그토록 찬미한 것인제 왕 노릇을 잘했다, 하늘을 본받았다, 높은 공적을 쌓았다, 빛나는 문화를 만들었다고 변죽만 울릴뿐 정작 선양에 대한 직접 언급은 빠져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당시 주나라 왕실은 물론 공경대부의 가문에서도 적장자에게 자신의 지위를 물려주는 것을 너무도 당연한 관행이었습니다. 따라서 그에 반하는 양위를 대놓고 찬미할 경우 권력자들의 역린을 건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달빛에 물든 구름으로 달을 형상화하는 홍운탁월(烘雲托月)의 기법으로 이를 찬미한 것입니다.
둘째는 오직 요만이 하늘의 위대함을 본받았다는 구절입니다. 이는 “황제(黃帝)는 하늘과 땅을 법칙으로 삼아 제도와 윤리를 만들었다”는 사마천의 표현의 원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공자는 요가 유일하다 했는데 황제는 하늘뿐 아니라 땅까지 본받았다고 사마천은 한술 더 뜨네요. 그럼 사마천은 여기서 공자가 말하는 하늘의 위대한 법칙이 무언지 알았을까요? 황제를 끌어들인 것으로 봐서는 몰랐던 것 같습니다.
군자학의 관점에서 그 법칙을 가장 간단히 표현하자면 뛰어난 아비 아래 반드시 뛰어난 자식이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20세기 DNA의 발견으로 유전자가 마구 뒤섞이기 때문에 아비를 잘 만났다 하여 자식이 반드시 아비처럼 뛰어나지 않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됐습니다. 이를 고대의 언어로 표현한다면 “하늘은 금가루를 모래밭 한 곳에 숨겨두지 않고 모래밭에 흩뿌린다”가 될 것입니다. 실제 인류사의 위대한 인물은 그렇게 유전자가 무작위적으로 마구 뒤섞인 끝에 우연히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2500년 전 사람인 공자가 유전법칙을 알았을 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역사와 현실에 대한 관찰을 통해 그러한 자연법칙에 대한 통찰을 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자신의 아들인 백어(공리)가 군자학을 이어갈 재목이 못 됨을 알고도 한탄하지 않았습니다. 또 미천한 아비 아래서 태어났지만 뛰어난 재주를 지녔던 자로, 안연, 중궁(염옹), 염구 같은 제자를 편견 없이 귀하게 여길 수 있었던 것입다. 선천적 본성(nature‧性) 못지않게 후천적 학습(nurture‧習)과 주체적 결단(立‧signature)을 통한 발전을 높이 한 것도 그 떄문입니다.
공자가 터득한 위대한 하늘의 법칙이란 바로 이를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왕후장상의 씨앗이 따로 있지 않으며 훌륭한 인재는 타고난 본성 못지않게 후천적 학습과 주체적 결단을 통해 빚어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래밭 속에 숨겨진 금가루 같은 그들을 발굴하고 교육하는 것이 하늘의 법칙에 부응하는 것이라는 통찰입니다.
공자는 이런 통찰을 요에게 투영했습니다. 요가 자신의 아들 단주 대신 못난 아비에게서 태어났지만 효성스럽기 이를 데 없는 순에게 왕위를 물려준 것이 이를 꿰뚫어 봤기 때문이라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을 본받았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군자학의 용어를 쓰자면 도에 통달한 것입니다
셋째는 백성들이 이런 요의 공덕을 뭐라 불러야 할지 몰랐다는 구절입니다. 그럼 뭐라 불러야 할까요? 1차적으로는 임금이 천하를 위해 왕위를 자식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는 행위를 뜻하니 바로 선양입니다. 2차적으로는 하늘의 도를 말하니 인간사회의 지도자가 될 군자는 혈통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격수양과 학문연마를 통해서 결정돼야 함을 뜻합니다. 공자는 이런 식으로 선양과 군자지도를 에둘러 표현한 것입니다.
요가 이런 하늘의 도를 깨닫고 이를 선양을 통해 실천한 최초의 군주라면 순은 선양으로 왕좌를 물려받고 선양으로 왕좌를 물려줬다는 점에서 완성형의 군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우 역시 숨지면서 익(謚)에게 양위를 했지만 그 아들인 계(사계‧姒啓)가 왕위를 거둬들이면서 왕조의 체계가 생겨났기에 살짝 빛이 바랬다는 것이 공자의 관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군자학의 관점에서 보면 요가 도의 화신이라면 순은 덕의 화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는 바로 그런 도와 덕의 결실로서 중국의 오랜 난제였던 치수(治水)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공업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 군주 중 요가 도의 화신이란 점에서 하늘(天)이 낸 군주라면 우는 치수의 화신이란 점에서 땅(地)의 군주요, 순은 덕의 화신이란 점에서 그 둘을 이어주는 인(人)의 군주라 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요-순-우로 양위 기록은 허구 내지 과장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시는 부족국가연맹 체제였기에 부족장들의 투표에 의해 연맹체의 수장이 결정된 것을 양위로 아름답게 포장한 것일 수 있습니다. 요의 덕이 쇠하자 순이 그 왕위를 찬탈하고 요와 단주를 붙잡아 따로 감금했다거나 우에게 양위를 받은 익이 계에 의해 처형됐다는 ‘죽서기년(竹書紀年)’의 싸늘한 기록이 오히려 진실의 일말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역사적 사실보다는 그에 대한 공자의 해석에 있습니다. 공자는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진술할 뿐 새롭게 창작하지 않는다는 ‘술이부작(述而不作)’을 주창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역사적 기록 중에서 어떤 기록을 선택하고 강조하느냐는 ‘편집’을 통해 현실비판의 메시지를 전달했음을 잊어선 안 됩니다.
순과 우에 대해서도 천하의 주인이 됐음에도 직접적으로 통치하기보다는 유능한 신하를 등용해 간접 통치하는 방식을 택했다는 내용도 그런 편집의 결과물입니다. '서경'의 기록만 봐도 순과 우는 공자가 말처럼 왕좌에 앉은 뒤 덕을 쌓으며 남면(南面)만 하고 있던 군주가 아니었습니다. 임무 수행을 제대로 못하면 파직과 유배를 보내고 처형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순은 예법뿐 아니라 형벌까지 제정해 현실정치에 적극 개입했으며 우는 치수를 위해 자신이 직접 현장을 돌면서 국토를 아홉 개 산맥(구산), 아홉 개 하천(구천), 아홉 개 주(구주)로 재정비했습니다.
그럼 공자는 왜 순과 우를 “천하를 소유하되 간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콕 찍어서 강조한 것일까요? 군자학에서 최고의 군주는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를 실천하는 통치자가 돼야 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후계자감을 포함해 적재적소에 인재를 발탁하는 것이 통치의 알파이자 오메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 돌아가는 원리인 도에 통달하고 다양한 인재를 품으면서도 그들의 장단점까지 꿰뚫는 덕을 쌓은 통치자에게 요구되는 최고의 덕목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