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칠덕삼(道七德三)

8장 태백(泰伯) 제11장

by 펭소아

공자가 말했다. “설사 주공의 훌륭한 재주를 지니고 있더라도 교만하고 인색하다면 그 나머지는 볼 것도 없다.”


子曰: “如有周公之才之美, 使驕且吝, 其餘不足觀也已.”

자왈 여유주공지재지미 사교차인 기여부족관야이



재승박덕(才勝薄德)이란 사자성어를 배태하게 된 경전 구절이 아닐까 합니다. 주공(희단)은 공자가 역할모델로 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만큼 흠모한 인물입니다. 오죽하면 주공이 지신의 꿈에 자주 나타나지 않는다(술이 편 제5장)고 한탄까지 했을까요? 그런 점에서 공자의 세계관에서 요순에서 출발한 성군은 주공에서 완성됐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주공은 치평의 도와 수제의 덕을 겸비한 어진 인물입니다. 하지만 덕보다는 도가 두드러집니다. 아버지 문왕과 형 무왕을 도와 주나라가 은나라를 물리치고 천하를 통일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조카인 성왕이 어린 시절 섭정을 하면서 대규모 내란을 진압해 사실상의 재통일까지 이룩했습니다. 이를 통해 주나라 왕실을 반석 위에 올려놨고 종법제와 봉건제를 포함한 주나라 예악의 완성자라는 찬사를 듣습니다. 그래서 조선시대 조카인 단종을 죽이고 왕좌를 찬탈한 세조(이유)를 평생 열등감에 시달리게 한 인물입니다.


공자는 이런 주공이 터득한 치평의 도를 재(才)로 표현합니다. 재는 내면에 축적된 도가 적절히 흘러나와 표출되는 게 하는 능력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이치인 도를 적절히 가둬뒀다가 세상에 이롭도록 적절히 흘려내려 보내는 능력입니다. 주공은 그 재가 눈부시게 아름다운(美) 인물인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재가 아름답더라도 성품이 교만하고 인색하다면 말짱 도루묵이라는 것입니다. 교만함과 인색함을 뒤집으면 겸손함과 관대함이 됩니다.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니 정치적 도가 아니라 개인적 덕과 연결됩니다. 정치적 수완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타인을 품고 헤아리는 덕이 부족하면 군자가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전한 때 편집된 ‘설원’과 ‘한시외전’에는 주공이 자신 대신 노나라 초대 제후로 봉해진 맏아들 백금에게 경계의 말을 남긴 것이 기록돼 있습니다. 그는 과거 자신이 머리를 감거나 밥을 먹다가도 선비가 찾아오면 바로 중단하고 버선발로 달려가 맞기를 세 차례나 했다는 ‘일목삼악발 일반삼토포(一沐三握髮 一饭三吐哺)’의 일화를 꺼냅니다. 토포악발(吐哺握髮)이라는 사자성어의 어원이 되는 그 이야기에 이어 6개의 미덕을 지키라고 당부합니다.


“덕이 넓고 크면서도 공손함을 지키면 영화로워지고(守恭者榮), 토지가 넓고 부유해도 검소함을 지키면 편안해지고(守儉者安), 지위가 높고 녹봉아 많아도 자신을 낮추면 귀해지고(守卑者貴), 병력이 많고 강해도 두려움을 지키면 승리하고(守畏者勝), 총명하고 지혜로워도 어리석다 여기면 이롭고(守愚者益), 널리 듣고 잘 기억하면서도 지식이 얕다 여기면 널리 알게 된다(守淺者廣).”


주공은 이렇게 교만함과 인색함을 경계할 줄 알았던 덕을 함께 갖춘 지도자이기도 했습니다. 공자는 그런 주공에게서 이렇게 치평의 도와 수제의 덕이 어우러진 어짊의 이상형을 발견한 것입니다. 다만 사람들이 주공이 치평의 도에 뛰어남만 알고 수제의 덕까지 갖췄음을 간과할 때가 많기에 이를 경계하기 위해 이런 말을 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맹자와 주자 같은 도덕주의자들에게는 이 대목이 수제의 덕이 치평의 도보다 중요하다는 메시지로 읽혔습니다. 고도의 도덕심리학자였던 맹자는 도와 덕의 접점이던 어짊(仁)을 덕의 종속 개념으로 변화시킨 사단론을 들고 나온 끝에 덕이 제일 중요하다는 덕치론을 펼치게 됩니다. 그보다 추상 수준이 높았던 주자는 자연과학적 원리인 도와 도덕적 원리인 덕을 하나로 융합시킨 개념으로서 제3의 개념인 리(理)를 들고 나오며 덕을 쌓으면 절로 도통하게 된다는 도덕일원론을 펼치게 됩니다. 맹자의 도통을 계승했다는 주자의 방점 역시 도보다 덕에 찍혀 있습니다.


반면 공자는 어짊을 도와 덕이 어우러진 상태로 봤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공자의 발언은 공이 7이어도 덕이 3은 되어야 비로소 어질다고 할 수 있다 정도의 메시지로 풀어내야 합니다. 덕이 빙산이라면 겸손함과 관대함은 그 일각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재승박덕이란 말을 듣지 않으려면 재가 7, 덕이 3은 돼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인 것입니다. 따라서 맹자나 주자가 재승박덕의 덕 결정론자라면 공자는 도칠덕삼(道七德三)론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자가 그토록 배움(學)을 강조한 것 역시 자연과학적 원리인 도를 터득하기 위해선 배움이 중요했기 때문임을 잊어선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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