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중도원과 시시포스

8편 태백(泰伯) 제7장

by 펭소아


증자가 말했다. “선비는 너그럽고 굳세지 않을 수 없으니, 임무가 무겁고 길이 멀기 때문이다. 어짊을 자신의 임무로 삼았으니 어찌 무겁지 않겠는가? 죽은 뒤에야 그칠 것이니 어찌 멀지 않겠는가?”


曾子曰: “士不可以不弘毅, 任重而道遠. 仁以爲己任, 不亦重乎? 死而後已. 不亦遠乎?”

증자왈 사불가이불홍의 임중이도원 인이위기임 불역중호 사이후이 불역원호



‘태백’ 편에는 자여(증자)의 발언이 다섯 장이나 들어있습니다. 공자가 죽고 난 뒤 공자학단에서 자여의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공자의 평가에 의하면 자여는 노둔하고 고지식하기 짝이 없습니다. 후대에 지어진 ‘공자가어’에는 자여가 아비 증석을 화나게 해 몽둥이로 맞을 때 묵묵히 맞고만 있는 바람에 크게 다치거나 죽을 뻔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이를 알게 된 공자가 “아비가 극도로 화가 났을 때 달아나지 않고 그대로 몽둥이를 맞는 바람에 아비가 자식을 죽인 사람이 될 뻔하지 않았느냐, 너야말로 불효자”라고 혼을 냈다고 합니다. 이 일화의 사실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여라는 인물의 특징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둔하다고 할 정도로 고지식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여는 공자가 살아있을 때는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습니다. 공자가 직접 10명의 훌륭한 제자를 꼽아 훗날 공문십철로 불리게 된 인물에 동년배인 자하와 자유, 자장이 들어가 있으나 자여는 빠져있습니다. 하지만 소문난 효자에 성실함, 그리고 공자학단의 본령인 노나라에서 공문의 타이틀을 계속 유지한 덕에 후대로 갈수록 영향력이 커집니다.


자하, 자유, 자장과 함께 공자 사후 제 계열 제자의 4대 문파를 이끌게 됩니다. 특히 공자의 손자인 자사(공급)와 맹자로 그 학맥이 이어진 것이 주효했습니다. 훗날 한비자가 가장 영향력 있는 8대 유가 학파를 꼽은 팔유(八儒) 중에서 자여 문파에서 파생된 것으로 추정되는 학파가 네다섯이나 됩니다.


자여는 ‘효경’과 ‘대학’을 집필했는데 특히 공자의 말을 받아 적은 ‘대학’은 남송 시대 주희를 만나며 논어 맹자 중용과 더불어 최고의 유교 경전인 사서(四書)의 하나가 됩니다. 그와 더불어 공자의 사당인 대성전에서 공자 다음 단계로 위패가 모셔진 4성(四聖‧안연 자연 자사 맹자)의 반열에 올라 그다음 단계인 공문십철을 능가하게 됩니다.


저는 자여-자사-맹자-주자로 도통이 이어졌다는 성리학자들의 주장은 궤변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공자의 군자학은 세상의 이치인 도를 터득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치평학과 리더십 수양을 위해 필요한 덕을 쌓는 수제학의 두 바퀴로 굴러가는 수레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 도통론자들은 주관적 도덕심성론인 수제학만 앞세워 객관적 정치학인 치평학을 지워버리는 우를 범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수제파가 인간적 감동을 주는 면모가 있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특히 자여는 공자의 돈키호테적 면모를 보여줄 때가 있습니다.


이 장의 내용이 그러합니다. 선비 된 사람은 어짊을 평생의 사명으로 삼아야 하니 평생 갈 길이 멀고 힘들다는 임중도원(任重道遠)의 자세는 훗날 프랑스 철학자 카뮈가 ‘시시포스의 신화’에서 부조리한 세상을 견뎌내기 위한 삶의 태도를 연상시킵니다. 비록 실패하고 좌절할지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어짊을 실천하고 완성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 그것이 세상의 부조리함을 인정하지 않고 맞서기 위한 최선의 태도라는 카뮈의 선언과 이어집니다. 또한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영화 ‘노스탤지아’에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바람에 계속 꺼지는 촛불을 꺼뜨리지 않은 채 옮겨가는 일을 되풀이하는 시인 안드레이에게도 투영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어질다는 가치가 결코 쉽게 이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정치적 도와 윤리적 덕, 평생 그 하나를 이루기도 쉽지 않은데 그 둘을 모두 겸비해야 하니 임중도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희망의 등불을 꺼뜨리지 않고 계속 후대에 전하는 것 그것이 공자의 후예들이 짊어진 운명인 것입니다. 사실 이는 훗날 중국의 선불교의 도맥 전승과정을 기록한 ‘전등록(傳燈錄)’의 메타포를 연상시킵니다. 전등이라는 표현이 진리의 등불을 꺼뜨리지 않고 후대에 전해준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공자는 이를 군자, 곧 최상위급 통치자의 사명으로 삼았지만 자여는 이를 군자 아래서 실무를 담당하는 사(士) 계급의 사명으로 낮춰 잡은 것입니다. 물론 남송시대 이후 대부 계급보다 아래였던 사 계급이 전면에 부각되면서 군자학의 확산을 가져온 것은 맞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도 공직진출 여부에 상관없이 군자학을 공부하는 사람을 선비로 호칭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공자와 자여가 살던 시대 군자와 사의 위계질서가 뚜렷이 달랐음을 잊어선 안됩니다. 공자는 그런 위계질서의 전복을 꿈꾼 은밀한 혁명가였던 반면 보수주의자였던 자여는 혈통으로 군자가 되는 사람들 아래서 실무를 담당하는 사 계급의 사상으로 유학을 위축시켰음을 잊어선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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