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애정한 3종 세트

8편 태백(泰伯) 제8장

by 펭소아

공자가 말했다. “시로써 일어나고, 예로써 서며, 악으로써 이룬다.”


子曰: “興於詩, 立於禮, 成於樂.”

자왈 흥어시 입어례 성어악



시(詩) 예(禮) 악(樂)은 공자가 애정을 쏟아부은 3종 세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군자학의 이상적 정치의 내용이 문덕(文德)이라면 그 형식은 예악(禮樂)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운영 원리를 말하니 지상의 척도이자 문명질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악은 단순한 음악이 아닙니다. 문명질서인 예와 짝을 이뤄 공동체의 조화와 화합을 유지하려는 집단적 의지의 상징입니다.


공자는 이러한 예악에 시를 추가해 3개의 발을 지닌 솥(鼎)으로 새롭게 정립하니다. 시는 본디 악의 일부입니다. 궁중에서 연주되는 아악의 노랫말이 곧 시이기 때문입니다. 공자가 선별한 것으로 알려진 ‘시경’의 시 300수는 국가의례나 궁중 행사 때 연주되는 노래의 가사였습니다.


그럼 공자는 왜 악에서 시를 분리해 낸 것일까요? 노랫말이 환기하는 정서와 의미에 집중하기 위해서입니다. 노래 가사 주인공의 마음을 읽어내고 공감하고 음미할 줄 아는 것이 군자가 되려는 사람의 기본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삿된 것이 섞이지 않은 그 순수하고 진실한 마음을 반영하고 또 그 마음에 공명하기 위해 자신의 심성을 갈고닦는 것이 곧 군자학인 것입니다.


공자는 시를 배울 때 발생하는 첫 번째 효과로 시가 흥취(興)를 일으킨다 하였습니다(17편 '양화' 제9장). 시의 흥취는 곧 타인(시의 저자)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에 투영해냄으로써 발생합니다. 시경의 시들은 곧잘 그 인간의 마음을 자연에 투사해 자연과 나가 하나 되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순간을 끌어냅니다. 물(物)은 타자요, 아(我)는 나이니 이 또한 타자와 공명을 통해 발생합니다. 시는 이렇게 나를 타자로 건너가게 해주는 나룻배의 역할을 합니다. 그리하여 철저히 혼자인 줄 알았던 자신을 타자와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새롭게 바라보게 합니다.


興은 본디 제사를 지낼 때 대지에 술을 뿌려 지령(地靈)을 불러일으키는 행위에서 따온 한자입니다. 그래서 뭔가를 일으킨다는 동사와 흥겹다는 형용사 2가지 기본 뜻을 갖게 됐습니다. 거기서 다시 여러 가지 뜻이 파생됐는데 여기서는 시작하다와 느끼다는 뜻까지 함축했다고 봐야 합니다. 흥어시의 흥은 앞에서 말한 시의 흥취를 감지할 줄 앎으로써 타자와 관계 속에서 자신을 위치시키는 것이 시작된다는 뜻으로 새겨야 합니다. 또 그를 통해 사회적 자아에 눈뜨기 시작한다는 의미까지 담겨다고 봐야 합니다. 다만 서다는 뜻의 입(立)과 이루다라는 뜻의 성(成)과 상응하도록 하기 위해 일어나다로 풀어봤습니다.


이렇게 타자에 대한 공명으로 흥기 한 사회적 자아는 예를 익힘으로써 정치적 존재로 우뚝 서게 됩니다. 예야말로 사회적 관계망의 촘촘한 그물입니다. 후대의 도가는 이를 번잡하다 하여 벗어던지라 하였지만 공자는 인간사회를 운영하는 문명질서로서 예의 순기능을 높게 평가했습니다. 춘추전국시대 역사를 장식한 그 무수한 패륜과 야만의 기록을 읽다 보면 역시 노자나 장자보다 공자의 탁견에 무릎을 치게 됩니다. 21세기 문명질서를 향유하면서 도가에 심취하는 것은 개인적 도락이면 몰라도 궁극적 대안이 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입어례의 입에는 바로 그러한 치열한 현실적 자각과 그 실천이 자리합니다.


성어악에는 이렇게 시와 예를 종합한 것이 악이라는 메시지가 담겼습니다. 타자에 대한 이해를 격동시키는 시와 사람과 사람의 관계와 질서를 규정하고 운용하는 예가 예술적 조화를 이루도록 조율한 것이 악이라는 일깨움입니다. 이는 고대부터 이어져온 예악의 전통에 시에 대한 새로운 의미부여를 가미해 공자가 새롭게 정립한 통찰입니다. 따라서 악은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예술과 정치(또는 사회)의 조화로운 통합의 산물로 봐야 합니다.


저는 여기에 21세기적 새로운 해석을 가미하고자 합니다. 樂은 음악 악, 즐길 락, 좋아할 요 3가지 뜻을 지닌 한자입니다. 성어악의 악은 1차적으로 예악에 해당하기 음악으로 새기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공자시대의 악과 오늘날의 음악 사이엔 아주 큰 간극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저는 여기에 부차적으로 즐길 락의 의미를 더할 것을 제안합니다. 바로 북송의 문인이었던 범중엄이 말한 ‘선우후락(先憂後樂)’의 정신에 입각한 즐거움입니다. 즉 천하의 백성의 근심 걱정을 덜어내고 난 뒤 비로소 기쁨을 함께 나눈다는 뜻입니다. 시로써 일어나고, 예로써 선 뒤 백성의 어려움을 씻어주고 즐거운 음악과 함께 기뻐하는 것으로써 군자가 뜻한 바를 이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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