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와 증자의 차이

8편 태백(泰伯) 제6장

by 펭소아

증자가 말했다. “고아가 된 어린 군주를 맡길 수 있고, 사방 백 리 영토의 제후국을 맡길 수 있으며, 큰 절개가 걸린 상황에서 그 절개를 뺏을 수 없다면 군자다운 사람인가? 군자다운 사람이다.”


曾子曰: “可以託六尺之孤, 可以寄百里之命, 臨大節而不可奪也, 君子人與? 君子人也.”

증자왈 가이탁육척지고 가이기백리지명 임대절이불가탈야 군자인여 군자인야



첫째 육척지고(六尺之孤)는 키가 육척인 고아를 말합니다. 1척은 조선시대에는 30㎝지만 중국에서는 후한시대를 기준으로 23㎝였습니다. 후한시대의 기준을 적용하면 육척은 138㎝입니다. 오늘날 초등학생 고학년 정도의 키입니다. 따라서 육척지고를 기탁할 수 있다는 표현은 열두어 살 정도의 고아를 믿고 맡길 수 있다는 뜻입니다.


둘째 백리지명(百里之命)은 사방 백리의 영토가 되는 나라의 명운이란 듯입니다. ‘맹자’ 만장 하편에 ‘공과 후는 모두 사방 백리의 땅을 다스린다(公侯皆方百里)’라는 구절이 등장합니다. 공은 공작, 후는 후작으로 모두 큰 나라의 제후를 뜻합니다. 따라서 백리지명을 기탁할 수 있다는 뜻은 제후국을 맡길만하다는 뜻입니다.


세 번째 임대절(臨大節)은 여러 갈래의 해석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앞의 두 대목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면 절로 풀립니다. 바로 주공(희단)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주나라 무왕이 역성혁명 후 불과 2년여 만에 숨지자 그 맏아들인 성왕이 즉위하는데 나이가 열셋에 불과했습니다. 주공을 그런 성왕이 성인이 될 때까지 섭정이 되어 주나라를 다스렸습니다. 주공은 원래 노나라 제후로 봉해졌는데 섭정이 되는 바람에 부임하지 못하자 맏아들 희백금을 대신 부임시켰습니다.


이를 감안하면 임대절은 절개가 크게 흔들리는 상황, 곧 조카인 성왕 대신 자신이 왕좌를 차지하려는 유혹이 강렬한 순간을 뜻한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당시 주공의 배다른 동생 내지 사촌이었던 소공(희석) 역시 주공이 역심을 품은 것 아닌가 하고 의심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이를 빌미로 주공의 형과 동생들이 난을 일으키기까지 했으니까요.


그렇지만 주공은 소공의 의혹을 불식시키고 사실상의 재통합 전쟁을 마무리한 뒤 성왕이 성인이 되자 왕권을 넘겨주고 물러났습니다. 주공은 주나라의 종법제와 봉건제를 확립한 사람입니다. 그 핵심은 장자와 장손에게 우선권을 주는 것이니 그런 제도를 만든 사람이 자기 손으로 이를 무너뜨릴 수 없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신념이 크게 흔들리는 상황에서도 신념을 뺏기지 않은 것입니다. 이는 동서양 역사를 통틀어 아주 희귀한 사례이니 보통은 조선의 세조나 영국의 리처드 3세, 심지어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이언 킹’의 삼바처럼 조카를 죽이거나 밀어내고 왕위를 찬탈하는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장의 내용은 공자가 군자의 역할 모델로 삼았던 주공 단의 위대함을 자여(증자)가 새롭게 상기시키는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자여의 장점 중 하나는 스승의 가르침에 아주 충실했다는 것입니다. 다만 스승이 직접 말하지 않은 가르침까지 깨치는 경지까진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주공이 제정한 종법제와 봉건제의 철저한 신봉자가 되고 만 것입니다.


알파벳 철자가 비슷하지만 뜻은 정반대인 영어단어로 esotericism과 exotericism이 있습니다. 전자는 소수정예에게만 가르침을 은밀히 전한다는 뜻의 밀교(密敎), 후자는 일반 대중도 다 이해할 수 있는 가르침을 준다는 뜻의 현교(顯敎)를 뜻합니다.


자여는 군자학의 현교만 받았을 뿐 밀교까지 깨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군자라는 표현에 담긴 역설적 비의(秘意), 곧 혈통에 의해 대인의 지위에 오르는 신분 계승을 전복시키고 정치적 도와 윤리적 덕을 쌓아 능력을 인정받는 사람만이 대인의 지위에 올라야 한다는 계급혁명적 사상에 눈뜨지 못한 것입니다. 공자는 주공의 도와 덕을 높이 평가 군자의 역할 모델로 삼았으나 그가 제정한 혈통 중심의 신분제까지 동의한 것은 아님을 자여는 깨치지 못했습니다. 21세기가 됐음에도 증자는 보수적인데 공자는 여전히 진보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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