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편 태백(泰伯) 제5장
증자가 말했다. “능력이 있으면서도 능력 없는 사람에게 가르침을 청하고, 들은 게 많아도 들은 게 적은 사람에게 가르침을 청하고, 있어도 없는 척하고, 가득 찼으면서도 텅 빈 듯하고, 시비를 걸어와도 따지지 않는다. 지난날 나와 내 벗들이 일찍이 따르고자 한 것들이었다.”
曾子曰: “以能問於不能, 以多問於寡, 有若無實若虛, 犯而不校, 昔者吾友嘗從事於斯矣.”
증자왈 이능문어불능 이다문어과 유약무실약허 범이불교 석자오우상종사어사의
쉽게 말해 알아도 모르는 척, 있어도 없는 척 삼가며 겸손과 양보를 미덕으로 알고 살아가는 것이 공문의 ‘모두스 비벤디(modus vivendi)’, 곧 생활 모토였다는 말입니다.
주희는 마지막 구절의 ‘오우(吾友)’를 단수로 풀어 ‘내 친구’로 풀어 콕 찍어 안연을 말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안연은 제 계열의 제자로 자여(증자)보다 열다섯 가량이 많았습니다. 예전 사람들은 대여섯 살 차이가 나도 벗으로 지내긴 했지만 열다섯이나 차이가 나는 사형을 친구라 부른다는 것은 어색합니다. 그보다는 그냥 젊은 날의 자신을 포함한 공문의 제자들이라고 푸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논어’만 읽어봐도 이는 공자의 기본적 생활 태도입니다. 이 장의 내용은 누구보다 예에 정통했음에도 주공(희단)의 사당인 태묘에 처음 들었을 때 매사를 묻고 또 물었다는 팔일과 향당 편의 에피소드와 공명합니다. 자로 편에서 “홀로 머물 때 몸가짐을 조심스레 하고, 일을 할 때는 정성을 다하고,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진실하게 대한다(居處恭, 執事敬, 與人忠)”라는 공자의 발언도 이와 궤를 같이 합니다. 매사에 삼가고 진중하고 배려하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다른 제자백가의 방식으로 읽어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유무와 허실의 역설이 엿보인다 하여 도가적이라거나 병가의 허허실실(虛虛實實)이 연상된다는 주장입니다. 특히 吾友가 안연을 지칭한다는 주희의 해석을 토대로 ‘장자’에서 도가적 인물로 포착된 안연의 원형을 이 장에서 발견하곤 합니다.
누차 말씀드렸듯이 공자는 제자백가의 원류이기에 훗날 도가, 법가, 묵가 심지어 병가로 해석될만한 사상의 씨앗을 품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자여가 말하는 모두스 비벤디는 도가나 병가의 것이 아닙니다. 더더군다나 안연만의 것도 아닙니다. 바로 공자와 그가 이끌던 공문 전체의 모두스 비벤디입니다. 삶도 알지 못하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며 삼가고, 극기복례와 수기치인의 실천을 위해 자신을 낮추고, 다른 사람을 먼저 배려하고 양보하는 것입니다. 이런 공문의 모두스 비벤디를 압축한 우리 속담이 있습니다. 바로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