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를 삼켜버린 덕

8편 태백(泰伯) 제4장

by 펭소아

증자가 병들어 맹경자가 문병을 왔다. 증자가 말했다. “새가 죽으려 할 때는 그 울음이 구슬프고, 사람이 죽으려 할 때는 그 말이 선량합니다. 군자가 도를 실천함에 귀하게 여겨야 할 3가지 있습니다. 행동거지에 있어서 사나움과 거만함을 멀리 하는 것이고. 표정을 지음에 있어서 믿음을 가까이 당기는 것이고, 말을 함에 있어서 비루함과 사리에 어긋남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제사의 일은 아랫사람에게 맡기면 됩니다.”


曾子有疾, 孟敬子問之.

증자유질 맹경자문지

曾子言曰: “鳥之將死其鳴也哀, 人之將死其言也善. 君子所貴乎道者三. 動容貌, 斯遠暴慢矣,

증자언왈 조지장사기명야애 인지장사기언야선 군자소귀호도자삼 동용모 사원포만의

正顔色, 斯近信矣, 出辭氣, 斯遠鄙倍矣. 籩豆之事則有司存.“

정안색 사근신의 출사기 사원비패의 변두지사즉유사존



맹경자는 맹손씨 가문의 11대 종주입니다. 맹손 씨 가문은 삼환의 세 가문 중 공문과 가장 밀접한 관계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맹경자의 할아버지인 맹의자와 작은할아버지인 남궁경숙이 공문의 제자였고 맹손 씨 가문의 방계였던 노나라 대부 자공경백도 공자를 적극 돕는 후원자였습니다. 맹경자의 아버지인 맹무백은 ‘논어’에서 공자에게 효에 대해 질문하고 공문 제자의 자질을 물어보는 등 공문의 인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렇다고 맹손 씨 가문이 공문에 우호적인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맹의자는 공자와 자로가 은밀히 추진했던 삼도도괴를 막판 뒤엎은 공렴처보의 주군이었습니다. 맹무백은 다혈질이어서 경솔하면서도 도량이 좁아 공자가 죽고 난 뒤 노애공(희장)과 관계가 틀어지자 삼환 세력을 이끌고 그 축출에 앞장선 장본인입니다. 공문과 척지진 않았지만 불가근불가원의 관계를 유지했다고 보는 게 더 맞을 듯합니다.


맹경자에 대한 기록을 찾기는 힘들지만 이 장에서 자여(증자)의 충고에 비춰보면 아버지를 닮은 구석이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자여가 죽기 전에 하는 말이니 고깝게 듣지 말라며 하는 말에 뼈가 있기 때문입니다. 자여의 충고는 제사의 예법(변두지사)보다 행동거지와 표정과 말, 이 3가지를 할 때 공손하고 자중하는 것이 예의 본질임을 일깨워줍니다. 뜻 깊은 충고입니다. 헌데 이를 뒤집어보면 맹경자의 행동거지는 사납고 거만하며, 표정은 믿음이 잘 가지 않고, 말은 비루하고 사리에 맞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소리가 됩니다. 원문 중 鄙倍의 倍는 '등질 패'로 새깁니다.


이보다 중요한 것은 자여가 남긴 백조의 노래가 결국 예로 귀결된다는 점입니다. 자여는 공자 가르침의 시작과 끝이 예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예를 관통하는 일이관지한 정신이 충서(忠恕)에 있다고 했습니다(4편 이인 제15장). 공자가 안연에게 어짊(仁)이란 곧 극기복례(克己復禮)라 한 발언에 충실한 수제파적 발상입니다.


이는 공자의 가르침을 수기치인(修己治人)으로 표현할 때 치인에 해당하는 내용이 실종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공자의 가르침을 언행과 표정을 바로 하라는 개인적 윤리 또는 처세술 차원으로 격하시켜 버린 것입니다.


공자가 창학한 군자학은 윤리적 덕과 정치적 도의 예술적 통합을 겨냥합니다. 수기가 윤리요, 치인이 정치입니다. 극기복례 역시 그런 차원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습니다. 극기가 윤리요, 복례가 정치인 것입니다. 하지만 자여는 윤리적 덕에 초점을 맞춰 극기복례를 이해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치적 도마저 윤리적 덕의 종속변수가 되고 만 것입니다.


이는 ‘도를 실천함에 있어 귀하게 여겨야 할 3가지가 있다’는 자여의 발언에서도 확인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3가지는 덕에 해당합니다. 헌데 이를 도의 범주로 편입시키고 있습니다. 주관적 윤리가 객관적 정치를 삼켜버린 것입니다. 이런 자여의 학맥을 이어받은 맹자의 정치사상이 덕치(德治)로 불리게 된 것도 그 연장선에 있습니다.


흔히 이와 대비해 공자의 정치사상을 예치(禮治)로 표현합니다. 허나 이때의 예는 증자가 말하는 예와 다릅니다. 증자가 말하는 예가 충서, 곧 덕의 표출이라면 공자가 말하는 예는 도와 덕의 통합적 가치로서 인의 외재적 표현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공자의 예는 공동체 운영의 객관적 법칙인 도와 개별적 인간의 윤리적 심성인 덕을 하나로 엮어낸 규율입니다.


증자는 예에 포함된 도를 이렇게 탈각시켜버림으로써 예가 곧 덕의 형식이라는 착종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학맥을 이은 맹자는 심지어 그 예의 내재적 가치인 인마저 덕의 일부로 편입시켜버린 것이 덕치라는 표현을 낳게 된 것입니다. 꼬리가 몸통을 흔들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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