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편 태백(泰伯) 제3장
증자가 병이 들어 제자들을 불러 모아 말했다. “내 발을 펴보고, 내 손을 펴봐라. ‘시경’에 이르기를 ‘전전긍긍하며, 깊은 연못에 임한 듯하고, 살얼음을 밟을 때처럼 하라’ 했다. 제자들이여, 이제 나는 그로부터 해방됐노라!”
曾子有疾, 召門弟子曰: “啓予足, 啓予手. 詩云, ‘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
증자유질 소문제자왈 계여족 계여수 시운 전전긍긍 여림심연 여리박빙
而今而後, 吾知免夫, 小子!“
이금이후 오지면부 소자
원문의 계(啓)는 ‘열 계’로 새겨서 손과 발을 펼쳐서 살펴보라는 뜻으로 풀어내는 것이 가장 적절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렇다면 죽음을 앞둔 사람이 왜 갑자기 손발을 펴서 보라고 한 걸까요?
대부분의 주석서는 자여(증자)가 썼다고 알려진 ‘효경’의 첫 구절과 이를 연결시킵니다. ‘몸과 터럭, 피부는 모두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니 감히 훼손하지 않은 것이 효의 시작(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이라는 구절입니다. 그에 충실한 삶을 살아왔으니 제자들에게 자신의 손발이 상한 곳이 있나 확인해보라 했다는 해석입니다.
저는 조금 다른 해석을 해볼까 합니다. 자여가 인용한 시경의 구절은 ‘소아’ 편에 실린 ‘소민(小旻)’이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소아 편의 시는 연회 때 연주되는 노래로 군주가 경계해야 할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소민은 잘못된 정치로 국정이 사분오열됐는데 책임지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 상황을 진노한 하늘의 저주로 풀어낸 시입니다.
자여가 인용한 구절의 바로 앞 구절은 이렇습니다. ‘맨손으로 범을 때려잡지 못하고, 맨발로 황하를 못 건너노니, 사람들이 그 하나만 알뿐 그 밖의 것은 알지 못하는구나(不敢暴虎, 不敢憑河, 人知其一, 莫知其他)’입니다. 전후 구절을 합쳐놓으면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고, 황하를 맨발로 건너는 무모한 일만 안 벌이면 된다 생각지 말고 평상시에도 항상 긴장의 끈을 늦추지 말라는 뜻이 됩니다.
왜 손발을 펴서 보라 했는지 의문은 여기서 풀립니다. 호랑이를 때려잡을 때 손을 쓰고, 황하를 건널 때 발을 쓰는데 자신은 그런 무모한 짓을 벌이지 않았으니 손과 발이 멀쩡할 것이란 소리인 것입니다.
효경 구절은 부모로부터 받은 몸을 아끼라는 취지입니다. 시경 구절은 정치가 혼란할 때는 함부로 설치지 말고 은인자중 하라는 취지입니다. 전자가 윤리적 차원의 보신이라면 후자는 정치적 차원의 처세입니다. 둘 다 공자가 말한 군자다움이나 어짊은 물론 후대의 맹자가 말한 호연지기와도 거리가 있습니다.
그래도 보신보다는 처세가 더 무게감이 있습니다. 보신에만 초점을 맞추면 자여가 너무 좀생원이 되고 말지만 처세에 무게중심을 두면 당대의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현실비판의 메시지를 담게 되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앞두고 “더 이상 눈치 볼 필요가 없어졌다”면서 자신을 억누르던 정치상황에 대해 마지막 하이킥을 날렸다고도 볼 여지가 생기니까요. 그러니 우리 ‘효경’ 말고 ‘시경’에 입각한 해석을 통해 평생 군사부(君師父)에게 눌려만 살아야 했던 자여에게도 카타르시스의 순간을 안겨주는 게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