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어원과 예의 본색

8편 태백(泰伯) 제2장

by 펭소아

공자가 말했다. “공손하지만 예가 없으면 수고롭고, 신중하지만 예가 없으면 두렵고. 용감하지만 예가 없으면 난폭해지고, 올곧아도 예를 모르면 각박해진다. 군자가 가까운 사람에게 돈독하면 백성이 어질어지고, 옛 의리를 저버리지 않으면 백성이 야박해지지 않는다.”


子曰: “恭而無禮則勞, 愼而無禮則葸, 勇而無禮則亂, 直而無禮則絞.

자왈 공이무례즉로 신이무례즉시 용이무례즉난 직이무례즉교

君子, 篤於親則民興於仁, 故舊不遺則民不偸.“

군자 독어친즉민흥어인 고구불유즉민불투



2개의 단락으로 구성됩니다. 첫 단락은 예와 관련한 것이고 둘째 단락은 어짊(仁)과 관련한 것입니다. 본디 두 개의 장으로 나눠야 할 것 같은데 묘하게 하나의 장으로 묶여 있습니다. 그래서 어짊의 본질이 극기복례(克己復禮)에 있다는 공자의 가르침을 되새기게 만듭니다.


첫 단락은 공손함(恭) 신중함(愼) 용감함(勇) 올곧음(直)이란 4가지 덕목을 갖췄다 해도 예와 접목되지 못하면 곤경에 처한다는 내용입니다. 예가 빠지게 되면 각각의 덕목이 수고로움(勞) 두려움(葸) 난폭함(亂) 각박함(絞)으로 귀결된다는 것이지요. 葸는 두려워할 시와 두려워할 사로 2개의 독음이 있는데 여기선 愼과 성운을 맞추는 차원에서 시로 달아봤습니다. 絞는 '목매다'와 '새끼를 꼬다'라는 뜻에서 헐뜯다, 비방하다가 파생됐습니다. 누군가를 매몰차게 몰아붙이는 것이니 각박함으로 풀어낼 수 있습니다.


공손한 마음만 있을 뿐 그를 효과적으로 표현할 예를 알지 못하면 몸과 마음만 피곤해집니다. 그런 부잡스러움을 떨쳐내려 언행을 신중히 한다 해도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예에 부합하는지를 모르면 의도치 않은 실례를 저지를까 하여 윗사람을 자꾸 피하게 되니 결국 두려워하는 것이나 다름없게 됩니다. 그런 두려움을 떨쳐낼 용기를 지닌 사람은 실례를 저질러놓고 괜한 반항심에 난동을 부릴 우려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올곧은 사람이 누군가의 잘못을 간할 때도 절차와 형식을 갖추지 않으면 사람을 헐뜯기 좋아한다는 오해를 사기 십상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내용이 공자가 자로에게 말한 육언육폐(六言六弊‧17편 양화 제8장)아 상통하다는 점입니다. 배움을 즐기지 않는 자로에게 준 경계의 가르침입니다. 어짊(仁) 지혜(知) 신의(信) 올곧음(直) 용기(勇) 굳셈(剛)의 덕목을 가졌어도 배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면 각각 우매(愚) 허황(蕩) 살상(賊) 각박(絞) 반란(亂) 경솔(狂)에 빠지게 된다고. 예를 익히는 것이 배움과 연결됨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용감함을 자부하는 자로에게는 ‘군자가 용기는 있는데 의로움이 없으면 난을 일으킨다(君子有勇而無義爲亂‧17편 양화 제23장)’고 되풀이해 경계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를 갖춘 용기가 의로움임을 미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럼 예를 갖춘 공손함(恭) 신중함(愼) 올곧음(直)은 뭐라 불러야 할까요?


이에 대해 공자가 직접 언급한 바는 없습니다. 저는 하나로 모아진다 생각합니다. 바로 경(敬)입니다. 敬은 여러 뜻을 함축하는데 삼가다, 정중하다, 예의 바르다, 정성을 다하다 등등입니다. 예를 갖춘 공손함, 예를 갖춘 신중함, 예를 갖춘 올곧음은 모두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처신하다는 듯의 경으로 귀결됩니다.


퇴계 이황이 유독 경을 강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는 공자의 군자학을 맹자의 사단설 프리즘으로 이해한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사람의 원초적 도덕 심성을 인의예지 4개로 나눠 본 것이 사단설입니다. 이에 따르면 연민과 공감능력이 어짊(仁),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는 의지가 의로움(義), 옳고 그름을 가리는 분별력이 지혜(知)라면 인간관계의 나머지를 규정하는 것이 예(禮)인데 그를 대표하는 심성이 경(敬)으로 귀결되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르면 육언(六言) 중에서 인지용을 제외하고 신의(信) 올곧음(直) 굳셈(剛)에 학문을 갖춘 것 역시 경으로 귀결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군자학에 대한 이런 인식의 한계는 둘째 단락의 내용을 음미해보면 확인됩니다. 첫 단락에선 예를 얘기하다가 둘째 단락에선 돌연 어짊(仁)과 그 변주로서 야박하지 않음(不偸)이 등장합니다. 여기선 전통적 의미의 군주를 뜻하는 군자가 친(親)을 잘 챙기고 구(舊)를 버리지 않으면 백성이 어질어지고 야박해지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이런 경우 친은 보통 군주의 친인척인 종친, 구는 힘든 시기 함께 고생했던 동지로서 공신으로 해석합니다. 주공(희단)이 노나라 제후로 부임하러 떠나는 맏아들 노공(희백금)에게 내려준 통치 지침(18편 미자 제10장)에서도 확인됩니다. “군자는 친족을 풀어두지 않고, 대신들이 자신을 써주지 않는다고 원망하게 만들지 않으며, 옛 친구는 큰 잘못이 없는 한 버리지 않고, 한 사람에게서 모든 것이 갖춰지기를 요구하지 않는다.”


저는 이 구절이 오늘날 친구(親舊)라는 표현의 어원이라고 생각합니다. 관련 자료를 검색해보면 친구가 벗을 지칭하게 된 것은 진(晉)나라의 진수(陳壽‧233∼297)가 편찬한 역사서 ‘삼국지(三國志)’가 처음이라고 합니다. 이에 앞서 사마천이 집필한 ‘사기’에서는 벗을 '친고(親故)'로 표기했다고 합니다. 헌데 이 장의 두 번째 단락의 공자 발언 속에서 옛 동지가 ‘고구(故舊)’로 표기돼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친고와 친구가 모두 '논어'에서 파생됐음을 가능성이 높음을 보여줍니다.


주공의 발언 속 친은 확실히 종친을 뜻합니다. 하지만 공자의 발언으로 내려오면 친은 종친, 구는 공신이라는 구별이 희석되고 둘이 합쳐지면서 오랜 세월 동고동락해온 동지라는 의미를 선취하게 됩니다. 종친이든 공신이든 힘겹고 어려운 시기를 함께 헤쳐 온 가까운 사람들과 의리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 단초가 돼 백성이 어짊을 따라 배우게 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친을 '가까운 사람'으로 새롭게 풀어봤습니다.


앞서 얘기했듯이 예를 논한 앞 단락과 인을 논한 뒷 단락은 별개의 장으로 봐야 합니다. 하지만 이 둘이 붙어있음으로써 인과 예가 표리의 관계에 있음을 다시 일깨워주는 효과를 발생시킵니다. 인이 도와 덕의 종합이라면 예는 그런 인의 표현형입니다. 인이 예의 내면 원리라면 예는 인의 외적 표현입니다. 예를 내면화한 것이 인이요, 인을 외면화한 것이 예입니다.


문제는 이런 개념의 범주가 뒤섞이면서 발생합니다. 공자 역시 육언을 말할 때 어짊을 다른 덕목과 나란히 거론함으로써 인이 덕의 하나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했습니다. 하지만 공자가 주창한 군자학은 정치의 도(치평)와 윤리의 덕(수제)을 통합한 가치로서 인을 재규정한 데서 시작됨을 잊어선 안 됩니다.


수제파의 거두였던 자여(증자)는 이중 정치의 도인 치평을 탈각하고 윤리의 덕인 수제에만 과몰입했습니다. 그로 인해 인이 덕의 하나로 격하되고 예가 도의 자리로 격상하는 착종이 발생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덕이 인의 자리를 차지하고, 예가 도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그와 더불어 제왕학의 면모를 지녔던 군자학이 덕(인)의 실현체인 예를 실천하는 것이 곧 정치라는 도덕정치론으로 축소되고 만 것입니다. 그 연장선상에 맹자의 사단설과 퇴계의 경 사상이 위치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장에서 보듯 또 극기복례가 곧 어짊(인)이라는 가르침(12편 안연 제1장)에서 확인되듯 예와 인은 표리의 관계에 있습니다. 따라서 인이 덕으로 축소돼선 안 되듯 예의 정신도 경으로 축소돼선 안 되고 인으로 확장돼야 합니다. 예는 단순한 예의범절이 아니라 도와 덕을 통합한 어짊의 구체적 실천 양식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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