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편 술이(述而) 제32장
공자가 말했다. “학문이라면 내 다른 사람과 엇비슷하지 않을까. 군자의 길을 몸소 실천함에 있어선 내 아직 결실을 거둔 바가 없다.”
子曰: “文, 莫吾猶人也. 躬行君子, 則吾未之有得.”
자왈 문 막오유인야 궁행군자 즉오미지유득
문(文)과 군자(君子)가 대비되고 있습니다. 공자시대의 문은 예악과 시문, 역사를 종합한 개념입니다. 오늘날 용어로 번역하면 문사철(文史哲)의 학문을 말합니다. 그럼 그와 대비되는 군자는 뭘 말할까요? 실제 정치에 참여해 배운 바를 실천에 옮기는 것을 말합니다.
군자학은 궁극적으로는 좋은 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학문입니다. 도를 터득하고 덕을 쌓는 것도 결국 좋은 리더가 돼 작은 고을부터 제후국과 제국까지 공동체를 살기 좋게 다스리기 위함입니다. 공자가 군자학을 갈고닦은 이유는 현실 정치에 뛰어들어 배운 바를 실천에 옮기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공직에 진출하지 못했으니 이론만 빠삭할 뿐 그를 실천에 옮기는 데는 한참 모자란다는 객관적 자기 평가인 것입니다.
노나라에서 본격 출사에 나선 50세 이전의 발언일 수 있습니다. 한 나라를 맡아 경영하겠다며 천하주유를 펼칠 무렵의 발언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이든 공자가 군자학의 이론을 확립하고 퍼뜨리는 데는 탁월했지만 그를 실천함에 있어선 기회도 적었지만 구체적 성과도 부족했음은 자타 공인의 사실입니다.
지천명 이후의 공자의 살은 이러한 상황을 정면 돌파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습니다. 그것이 실했기에 안타깝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욱 큰 감동을 안겨주는 것입니다. 공자의 삶을 관통하는 아이러니입니다.
대부분의 주석서는 이를 엉뚱하게 해석합니다. 학문엔 능통한데 도덕적 실천력은 부족하다는 맥락으로 풀어냅니다. ‘군자=도덕군자’라는 통념이 너무 강해서 발생한 오류입니다. 군자는 수제의 덕뿐 아니라 치평의 도를 함께 터득해야 하는 존재임을 망각하거나 묵과한 결과입니다.
그러다 보니 공자가 겸손해서 스스로를 낮춰 표현한 것이라는 ‘전가의 보도’가 어김없이 등장합니다. 34장과 33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장에서 공자의 발언도 겸손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한 것으로 봐야 합니다. 공자는 객관적 사실을 중시한 합리주의자이지 주관적 도덕주의자가 아니라는 점을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