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편 술이(述而) 제33장
공자가 말했다. “거룩함과 어짊이라면 내 감히 어찌 바라겠는가? 다만 그걸 실천하려 함에 싫증 내지 않고, 그를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는 것에 게으르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공서화가 말했다. “맞습니다. 저희 제자들이 능히 본받기 어려운 것입니다.”
子曰: “若聖與仁, 則吾豈敢? 抑爲之不厭, 誨人不倦, 則可謂云爾已矣.”
자왈 약성여인 즉오개감 억위지불염 회인불권 즉가위운이이의
公西華曰: “正唯. 弟子不能學也.”
공서화왈 정유 제자불능학야
어짊(仁)은 군자학이 지향하는 이상적 지도자의 성품을 말합니다. 도와 덕을 겸비하는 것이니 천지만물 운행의 원리에 통달한 동시에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의 확장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럼 거룩함으로 번역한 성(聖)은 무엇일까요? 도와 덕을 천의무봉에 가깝게 하나로 연결해낸 것입니다. 어짊이 지극한 경지에 이른 것이 거룩함입니다. 따라서 거룩한 사람은 어질지만 어진 사람이라고 모두 거룩하진 않습니다.
후대의 유림은 모두 공자를 거룩한 사람(聖人)으로 간주하기에 이게 겸손한 발언이라고 주장합니다. 글쎄요? 공자가 성인으로 꼽는 인물은 대략 7명인데 모두 왕이나 왕에 준하는 사람입니다. 그 첫머리에 오르는 요 순 우는 혈통이 아니라 도와 덕을 기준으로 왕위를 넘겨준 아주 특별한 군왕입니다. 그 허리에 해당하는 은탕왕과 주문왕, 주무왕은 새로운 왕조로 천하통일을 이룩한 건국의 영웅입니다. 마지막으로 그 자신은 왕은 아니지만 건국 초 분열한 주나라를 사실상 재통일하고 문물과 제도의 기초를 세운 주공입니다.
‘논어’에서 공자가 어진 사람(仁人)이나 군자라고 높이 평가한 사람은 대부분 봉국의 제후나 재상의 반열에 오른 사람입니다. 은나라 말기 3대 충신인 미자, 기자, 비간이 첫머리에 꼽히는데 이들은 제후의 반열에 오른 사람입니다. 제나라의 관중과 안영, 정나라의 자산은 춘추시대 명재상으로 손꼽히는 인물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어려운 정국에서 현명한 진퇴와 인재감별의 안목을 지녔다고 공자의 찬사를 받은 위나라 대부 거백옥이 있었습니다.
공자는 제왕도 아니었고 재상에 발탁된 적도 없습니다. 노나라에서 말단 대부의 지위에 올라 불과 몇 년 활약한 게 공적 생활의 전부입니다. 성인이라 부르기엔 족탈불급이요, 인인이라 하기엔 언감생심입니다. 그나마 비슷한 처지의 거백옥이 있기에 어진 사람의 반열에 들어갈 교두보 정도 마련한 게 다입니다. 따라서 거룩함과 어짊을 어찌 감히 바라겠느냐는 객관적 자기평가에 해당한다고 봐야 합니다.
그런 자신을 높이 평가할 대목이 있다면 성인과 인인의 정신과 자세를 실천하려 했고 이를 다른 사람에게 널리 전파함에 게으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비슷한 내용이 같은 술이 편 제2장에 등장합니다. “배우면서 싫증 내지 않고. 남을 가르치면서 지치지 않는다(學而不厭 誨人不倦)”입니다. 그래서 원문의 위(爲)를 학(學)으로 받아 풀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취지는 같더라도 爲에는 실천에 옮기다는 뜻이 있으니 그대로 해석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공자의 이 발언을 받아서 말하는 제자가 공서화입니다. 제 계열 제자인 공서화는 외교에 능해 대부 반열에 올랐을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이지만 ‘논어’에는 딱 다섯 차례밖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한데 이 대목에서 왜 공서화가 등장한 것일까요? ‘예기’ 단궁 편을 보면 공자가 죽었을 때 공자 묘지명의 공식 기록에 해당하는 지(誌)를 공서화가 썼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 내용은 전해지지 않지만 이 장의 내용을 미뤄봤을 때 공서화가 공자의 삶을 응축한 키워드가 아마도 ‘위지불염 회인불권(爲之不厭 誨人不倦)’ 아니었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