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편 술이(述而) 제22장
공자가 말했다. “하늘이 만든 덕이 내게 깃든 것뿐인데 사마환퇴가 나를 어찌할 수 있겠는가?”
子曰: “天生德於予, 桓魋其如予何?”
자왈 천생덕어여 환퇴기여여하
본문의 환퇴는 천하주유 시기 공자가 위나라를 떠나 진나라와 채나라를 향해 가기 전에 공자를 죽이려 했다고 전해지는 송나라의 대부 사마환퇴를 말합니다. 본명은 상퇴(向魋)인데 송나라의 병권을 쥔 사마(司馬) 벼슬을 지낸 뒤 사마를 씨로 삼는 가문을 열어 종주가 된 인물입니다. 송환공의 후손이란 의미에서 환퇴(桓魋)로 불렸기에 사마환퇴로 호명된 것입니다.
‘춘추좌전’에 따르면 사마환퇴는 무공도 세운 바 없으면서 송경공의 총애만 믿고 사치와 전횡을 일삼은 간신입니다. 그러다 공자가 천하주유를 마치고 노나라로 귀국할 무렵 송경공의 총애를 잃게 되자 반란을 일으키려다 국외로 축출되고 맙니다. 좌전에는 사마환퇴와 공자의 악연에 대한 언급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일각에선 그가 공자 제자인 사마우의 형으로서 아우에 대한 열등감 때문에 아우의 스승인 공자를 죽이려 했다고 주장합니다. 여러모로 살펴봤을 때 사마우는 사마환퇴와 상관없는 인물이기에 이는 후대의 억측에 불과합니다(12편 안연 제5장 참고). 또 거창하게 ‘사마환퇴의 난’이라고들 표현하는데 과장입니다. 공자가 겪은 설화(舌禍) 정도가 적절합니다. 그 악연의 실체는 ‘예기’ 단궁 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조나라에서 송나라로 건너간 공자가 큰 나무 아래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도중 마을 사람들이 “저 나무도 사마환퇴가 죽으면 장례에 쓰겠다고 베어가겠구먼”이라 하는 말을 듣습니다. 당시 사마환퇴는 자신의 죽으면 들어갈 호화로운 석곽을 만든다고 법석을 떨어 빈축을 사고 있었던 것에 대한 민심의 반영이었습니다. 이를 들은 공자는 제자들에게 “무덤을 사치스럽게 꾸미는 것보다는 죽으면 빨리 썩는 게 낫다”는 말을 남깁니다. 이를 전해 듣고 성이 난 사마환퇴가 부하들을 시켜 공자가 강론 중일 때 그 큰 나무를 뽑아버리게 합니다. 실제 공자를 죽이려 했다기보다는 겁을 주기 위해 무력시위를 벌였다는 게 맞습니다.
사마환퇴는 송나라 병권을 쥔 권신이었기에 제자들이 공자에게 황급히 피신할 것을 권했을 때 공자가 한 발언이 이 장의 내용입니다. 많은 주석서는 특히 앞 구절에 초점을 맞춰 “하늘이 나에게 덕을 내렸는데‘로 풀면서 공자가 천명을 받았다는 뚜렷한 자의식을 드러냈다고 강조합니다.
그보다는 “하늘이 덕을 만들어 내게도 깃들었으니”나 “하늘이 만든 덕이 내 몸을 빌려 말한 것뿐인데” 정도가 어떨까 합니다. 하늘로부터 덕을 부여받았다고 해석하는 것은 지극히 겸손한 공자의 평소 언행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실권 없는 노인네의 발언에 앙앙불락하는 사마환퇴를 겨냥해 “사람이면 누구나 다 할 법한 상식적 말을 한 것뿐인데 그게 그렇게 성낼 일인가?”라는 뉘앙스로 꺼낸 말 아닌가 싶습니다.
그 뒤에 나오는 “사마환퇴가 나를 어쩔 수 있겠는가?”는 발언도 하늘이 자신을 보호해줄 것이란 자신감의 발로로 보는 것도 과합니다. “걱정 말거라, 그만한 일로 나를 어쩌진 못할 거다”라며 겁먹고 동요하는 제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짐짓 의연한 척한 것에 가깝지 않을까요? 실제론 더 큰 곤욕을 치를까 저어한 제자들의 성화에 수수한 옷차림으로 갈아입고 송나라를 벗어나 정나라로 떠나갔으니 바른 말한 대가를 톡톡히 치른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