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으로 기쁘고 한편으로 슬픈 것

4편 이인(里仁) 제21장

by 펭소아

공자가 말했다. “부모님의 연세를 몰라서는 안 된다. 한편으로 기쁘기도 하고 한편으로 두렵기도 하기 때문이다.”


子曰: “父母之年不可不知也. 一則以喜, 一則以懼.”

자왈 부모지년불가부지야 일즉이희 일즉이구



부모의 나이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자식 된 도리로서 당연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부모의 나이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자식 된 도리로서 당연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공자는 그 이유를 윤리나 논리로 설파하지 않고 문학적으로 풀어냅니다. “하나는 기뻐서요, 하나는 두려워서다”라고. 그리곤 더 이상의 설명을 생략합니다.


무엇이 기쁜 것이고 무엇이 두려운 걸까요? 대다수 주석서의 해석은 대동소이합니다. 부모가 장수하는 것이 기쁜 것이요, 살아갈 날이 얼마 안 남은 것을 아는 것이 두려운 거라고. 그럴듯해 보이지만 허점이 존재합니다. 모든 부모가 장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장수하지 않은 부모를 둘 경우엔 기쁜 일이 없을까요? 아닙니다. 부모의 나이가 상대적으로 젊을 경우엔 자식의 곁을 지켜줄 날이 아직 많이 남은 것 또한 기쁩니다. 따라서 부모가 젊을 땐 젊은 대로 기쁜 게 있고, 늙어선 또 늙은 대로 기쁜 게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부모가 젊을 때는 두려운 것이 없을까요? 아닙니다. 있습니다. 자식 뒷바라지 하느라 몸 고생하고 자식 걱정하느라 맘 고생해 쉬이 늙, 빨리 늙는 것입니다.


종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부모가 젊을 때 기쁜 것은 자식의 곁을 오래 지켜줄 것이라는 기대감이요, 두려운 것은 자식 키우느라 고생하고 걱정해 쉬이 늙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입니다. 부모가 늙었을 때 기쁜 것은 부모가 장수하는 것이요, 두려운 것은 따라서 앞으로 살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공자의 문학적 표현 속에 함축성과 심층성이 녹아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맹자가 윤리학과 논리학에 심취했고, 주자가 존재론과 형이상학에 심취했다면, 공자는 문학에 심취했다고 할 수 있는 이유 여기에 있습니다. 이렇듯 공자는 압축적이고 심미적인 표현에 인생의 비의와 통찰을 웅숭깊게 녹여냈지만 정작 후생들은 표피적이고 직관적 생각밖에 할 줄 몰랐습니다. 후생가외를 기대했던 공자에게 부끄러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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