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편 이인(里仁) 제20장
공자가 말했다. “3년 동안을 아버지의 도를 고치지 않으면 효성스럽다고 할 수 있다.”
子曰: “三年無改於父之道, 可謂孝矣.”
자왈 삼년무개어부지도 가위효의
‘논어’에는 아버지의 도를 3년간 바꾸지 않으면 진정한 효자라는 구절이 3차례(1편 '학이' 제11장과 4편 '이인' 제20장, 19편 ‘자장’ 제18장)나 등장합니다. 여기서 아버지의 도는 거창한 의미를 지닌 게 아니라 아버지의 방식으로 보면 충분합니다. 다만 학이 편과 이인 편의 내용은 공자 자신의 직접적 발언인 반면 자장 편의 내용은 자여(증자)의 전언 형식입니다.
가장 구체적인 것은 자장 편의 내용입니다. 맹손 씨의 5대 종주인 맹헌자가 죽고 그 뒤를 계승한 맹장자가 아버지의 신하와 아버지의 정책을 3년간 바꾸지 않은 것을 대단한 효의 실천이라고 공자가 상찬했다는 것입니다.
삼환 가문의 종주 중에서 공자가 제법 높게 평가한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계손 씨 가문의 3대 종주인 계문자와 맹손 씨 가문의 맹헌자와 맹장자 부자 정도입니다. 맹헌자는 40년간 종주를 지내면서 벗을 사귐에 귀천을 두지 않았고, 가혹하게 세금을 거두는 것을 미워했습니다. 그만큼 사심이 없었고 사람 보는 안목이 있었던 부친의 방식을 존중했다 하여 맹장자를 칭찬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맹헌자-맹장자 부자에게만 적용될 뿐 모든 부자에게 적용되는 일반적 법칙은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 학이 편과 이인 편의 발언은 맹헌자와 맹장자라는 구체적 부자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에서 모든 부자에게 적용되는 일반적 법칙처럼 다가서는 효과를 발생시킵니다. 이 경우 아버지가 폭군 또는 혼군이어도 그의 방식을 3년간 바꾸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되고 맙니다.
왜 이런 온도차이가 발생한 것일까요? 학이 편과 이인 편의 발언은 3년상을 염두에 두고 한 발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본디 3년상은 고대에 왕 또는 제후 같은 군주의 의무였습니다. 군주는 3년상을 치르는 동안 직접 정무를 볼 수 없었기에 실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재상의 몫이었습니다(14편 ‘헌문’ 제40장). 그러니 당연히 3년(정확히는 만2년)간 부왕의 방식으로 통치가 이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최고 통치자의 의무였던 3년상을 군자 일반의 의무로 삼을 것을 주문한 사람이 공자였습니다. 그를 통해 군자학을 배운 군자를 군주와 동격의 존재로 격상시키고자 한 노림수가 숨어 있었으나 이를 공개적으로 표할 순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에 반발하는 제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다양한 역사적 사례를 끌고 오는 과정에서 맹헌자-맹장자 부자의 사례도 끌고 왔을 공산이 큽니다.
맹장자는 왕이나 제후가 아니라 대부였기에 3년상을 지키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3년간 아버지의 방식을 따른 것을 3년상을 지킨 것에 준한다는 식으로 설명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3년상을 지키려면 자연스럽게 3년간 아버지의 방식을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 3년상을 단순히 효도의 문제로만 받아들인 자여와 그의 제자들은 그 차이를 지워버리고 '3년상=효도'로 등치시켜 버린 겁니다. 그 결과 효자라면 3년상도 지켜야 하고 최소한 3년간 아버지의 도를 바꿔서도 안 된다는 단선논리가 성립하게 된 것입니다.
공자의 본뜻은 좀 더 복합적이었을 것입니다. 첫째는 아버지가 맹헌자처럼 뛰어난 지도자일 경우 최소한 3년간 그 정치적 유산을 단속한다면 그 또한 뛰어난 지도자임을 입증하는 것이니 그 자체가 효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3년상을 치르려면 어쩔 수 없이 3년간은 아버지의 방식을 따를 수밖에 없으니 부작용이 있더라도 효의 발로로 여기고 묵묵히 수용하라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효는 도덕적 명분인 동시에 그를 통해 얻게 될 정치지도자로서 위상 제고를 포장하기 위한 불립문자(不立文字)의 정치적 수사라는 점을 놓쳐선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