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편 이인(里仁) 제19장
공자가 말했다. “부모가 계시면 먼 곳에 가지 않되 가야할 경우엔 반드시 행선지를 말씀드려야 한다.”
子曰: “父母在不遠遊. 遊必有方.“
자왈 부모재불원유 유필유방
부모가 계시면 멀리 가지 말라는 이유가 뭘까요? 주희는 저녁에 잠자리를 봐드리고 아침에 안부 인사하는 혼정신성(昏定晨省)을 못하는 것을 첫 번째 이유로 꼽았습니다. 부모 봉양을 최우선시하는 발상입니다. 성년이 되면 자식이 독립적 삶을 살아가는 21세기 현실과 맞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늘 자식을 보고파하고 혹여 잘못될까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서라고 봐야 합니다. 통신과 교통이 발달한 오늘날에는 멀리 가 있더라도 그러한 부모 마음을 헤아리고 다독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꼭 멀리 가지 말라는 가르침을 따를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멀리 가게 되면 반드시 행선지를 알리라는 가르침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이는 ‘예기’ ‘곡례(曲禮)’ 상편에 나오는 구절과 공명합니다. ‘무릇 사람의 자식 된 자는 나갈 때 허락을 구하고, 돌아오면 얼굴을 비춰야 한다. 다니는 곳이 일정해야 하고, 익힌 것으로 일을 삼아야 한다, 평소 말할 때 자신이 늙었다고 해선 안 된다(夫爲人子者, 出必告反必面, 所遊必有常, 所習必有業, 恒言不稱老).’
원문의 出必告反必面은 원래는 출필곡반필면으로 읽어야 합니다. 여기서 告는 ’아뢸 고’가 아니라 ‘뵙고 청할 곡’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出必告은 외출할 때 단순히 이를 통보하라는 것을 넘어 허락을 구하고 외출하라는 뜻으로 새겨야 합니다. 그 다음 등장하는 所遊必有常은 이 장의 遊必有方와 마찬가지로 나갔을 때 행선지를 부모가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를 21세기적 상황에 맞춰보면 일상적 생활공간을 벗어나 출장을 가거나 해외여행을 가게 되면 그 행선지를 꼭 부모에게 알리라는 뜻입니다. 出必告反必面도 이에 적용하면 ‘출필고반필면’으로 새기는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합니. 출장이나 여행을 갈 때 허락까진 구하지 않더라고 부모에게 알리고, 돌아와서는 건강한 모습인지를 확인시켜 드리기 위해 꼭 찾아뵙고 문안드리라로 새기는 정도가 적절하기 때문입니다. 찾아뵙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화상통화로라도 건강한 모습을 꼭 보여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