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우민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펭소아 Jun 30. 2024

사대주의의 숨은 실리와 함정

2024년 6월 30일(비)

조선의 건국이념 중 하나가 사대주의였다. 오늘날 이를 공허한 명분론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그렇지 않다. 그 뒤에는 엄청난 실리주의도 숨어있었다. 바로 중국 뒤에 숨어 국방비 부담과 세금 부담을 짊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17세기 중국 명나라의 1인당 세 부담금은 당시 유럽국가와 비교하면 절반도 되지 않았다. 특히 의회제를 채택한 영국과 비교하면 18세기에 이미 10분의 1 수준이었다. 이는 갈수록 악화돼 19세기 초 중국 청나라 국민의 1인당 세 부담은 영국인의 그것에 비하면 100분의 1밖에 되지 않았다. 조선은 그런 중국보다도 1인당 세 부담금이 적었다. 국방비의 상당수를 대국인 명나라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소설과 드라마에 등장하는 탐관오리들의 가혹한 수탈의 정체는 뭘까? 과거제에 기초한 중국과 조선의 관료체제는 세금징수를 지방 아전들에게 맡겼다. 문제는 그들에겐 일체의 보수를 지급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중간에 삥땅 치는 것을 암묵적으로 용인한 것이다. 세금징수의 투명성과 합리성 자체가 결여된 시스템을 수수방관한 것이다. 그로 인해 이를 악용하는 아전(오리)들이 등장하게 됐고, 나중엔 중앙에서 파견된 관료(탐관)들까지 그 약탈경제 시스템에 적극 가담하면서 실제 국고수입보다 두세 배 많은 착취가 발생한 것이다.  

  

일찍부터 의회제도를 도입하고 전쟁이 잦았던 유럽국가들은 의회의 동의를 기반으로 막대한 전쟁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국민에게 더 많은 세 부담을 지웠다. 대신 조세징수의 투명성과 합리성을 높이는 동시에 세수 확대를 위해 상공업을 장려함으로써 국가 재정과 국민경제를 동시에 살찌울 수 있었다. 

     

반면 동아시아에서는 국고도 제대로 채우지 못하면서 일반 백성만 골병드는 이중의 딜레마가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중국과 조선의 엘리트인 사대부계층은 국가에 세금은 적게 갖다 바치면서 군역의 의무도 면제받는 이중의 혜택을 누렸다.  

    

조선의 양반들이 그처럼 사대주의를 목청껏 외친 데에는 이렇게 숨겨진 실리가 숨어있었다. 그 병폐를 꿰뚫어 본 뜻있는 관료들은 이런 조세제도를 개혁하고 양반에게도 군역의 의무를 짊어지게 하려 했다. 하지만 조정을 장악한 대다수 사대부들은 사대주의라는 명분 뒤에서 자신들의 실익을 챙기기 위해 결사적으로 이에 반대했다. 


자국의 국방을 이웃국가에 의지한 것은 훗날 엄청난 재앙으로 돌아왔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양난으로 종묘사직이 흔들리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다 병자호란 이후 반청복명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하여 조선제일 선비로 우러름 받은 우암 송시열이 효종의 북벌론에 끝내 반대한 것 역시 명분이나 국가적 이익보다 사대부의 이익을 앞세운 결과였다. 그렇게 다시 청나라 치맛자락 속에서 살다가 청나라가 무너지자 서구열강들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다 결국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비운의 운명을 맞이하고 말았다.     


대한민국을 이끈다는 보수 엘리트들은 지금 똑같은 길을 밟고 있다. 6.25 전쟁 때 재조지은을 입은 천조국과 맺은 한미동맹을 통해 국방력과 경제력이란 두 마리 토끼 사냥에 성공했다며 쾌재를 부르는 것이다. 미국의 안보 우산 아래서 경제적 번영을 누리는 것이 실익과 명분 둘을 모두 충족시킨다며. 하지만 자국의 국방을 타국에 의지할 경우 또 다른 재앙을 부를 수 있음을 망각하고 있다.     


북한의 핵무장에 대한 대응으로 미국의 핵우산에 안주하는 것이 유일무이한 길이라 철석같이 믿고 따르는 것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만일 트럼프 같은 이가 다시 대통령이 돼 미국이 고립주의로 돌아서거나 실익을 핑계로 주한미군 철수카드를 흔든다면 한미동맹은 재앙이 될 수도 있음을 그들은 애써 외면한다.      


2007년에 출간된 ‘한국과 이혼하라’는 바로 그런 상황을 상정하고 있다. 미국 카토(CATO) 연구소의 연구진이 발표한 이 책은 미국의 핵우산에 안주하려는 한국 보수층을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못하면서 의존성과 반발심만 큰 캥거루족처럼 바라본다. 따라서 그 해법은 주한미군의 철수와 한반도 주변지역 안보책임을 당사국들에게 넘기는 것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한미군의 철수로 한국은 안보 부담은 늘겠지만 ‘자주국방’의 꿈을 이룰 수 있고 미국은 북핵 위협을 통제할 대응능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 17년이 지난 지금 한국의 보수 엘리트들은 과연 그에 대응할 플랜 B를 갖고 있을까? 윤석열 대통령의 즉흥적인 좌충우돌 행각을 보면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 “오로지 명”만 외치다 쪽박 찬 조선 사대부와 “오로지 미국”만 외치는 지금의 보수 엘리트의 차이가 무엇인지 우민은 정말 모르겠다고 되뇌지 않을 수가 없다. 



#우민은 '어리석은 백성(愚民)'이자 '근심하는 백성(憂民)'인 동시에 '또 하나의 백성(又民)'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제 자신에게 붙인 별호입니다. 우민일기는 전지적 작가 시점에 가까운 '맨스플레인'에서 벗어나보자는 생각에 제 자신을 3인칭으로 객관화하려는 글쓰기 시도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도파민이 일깨워주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