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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우민일기

‘저격의 글’ 말고 ‘우정 어린 설복’을

2025년 3월 20일(꽃샘추위 물러난 화창한 봄날)

by 펭소아

우민은 소셜미디어 상의 글 중에 자신과 생각이 다른 글들을 종종 접한다. 생각이 다르다는 것은 두 갈래 의미로 나뉜다. 첫째는 의견이 다른 것이고, 둘째는 제가 생각 못한 것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생각 못한 것을 일깨워 준 글에 우민도 ‘좋아요’를 누르고 찬사의 댓글도 단다. 하지만 의견이 다른 글은 대부분 무심히 지나친다. 쓴소리와 농담도 주고받는 친한 사이일 때만 ‘우정 어린 설복’을 시도하지만 그게 먹히지 않으면 ‘Let it go’의 태세로 전환한다.


그게 바로 다원주의를 수용하는 화이부동의 자세라 생각해서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생각이 똑같을 순 없다. 게다가 그런 생각의 차이가 우민에게 새로운 생각의 스파크를 일게 해주는 자극이 되는 경우도 많다.

생각이 다름을 틀림이 아니라 다름으로 인정하는 다원주의적 자세야말로 정치적 자유와 사상의 자유를 지키는 길이라고 우민은 생각한다.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참지 못하고 그걸 동일하게 만들려는 마음가짐에 자유를 억압하는 전체주의적 사고가 똬리를 틀고 앉아있기 때문이다.

물론 예외도 존재한다. 공인의 발언이나 공론장에 발표된 글에 대해서는 서슴없는 비판이 이뤄져야 한다. 특히 의사결정권을 지닌 권력자에 대한 비판은 매서워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정치적 자유이자 사상의 자유다. 하지만 그 대상이 동료 시민일 때는 그 특정인을 저격하는 식의 글은 지양돼야 하지 않을까?

‘윤석열의 난’ 이후 한국사회에는 관념적 이분법이 횡행하고 있다.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을 적대시하고 인격모독을 서슴지 않는 글들이 많아졌다. 심지어 평소 엇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더라도 좀 다른 목소리를 낸다 싶으면 파상 공세가 펼쳐지곤 한다. 또 그런 글들을 퍼 나르며 인격모독 식의 ‘인민재판’으로 비화하는 경우도 자주 보게 된다.


그것이야말로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윤석열식 사고’에 전염된 결과 아닐까? 우익 파시즘에 저항한다면서 “이래서 니가 사상무장이 덜 됐다는 거야”라며 자아비판을 요구하던 과거 좌파 운동권 논리의 재림 아닌가?

소셜 미디어로 인해 비슷한 신념과 관점을 지닌 사람들끼리만 정보와 의견을 교환하는 ‘반향실 효과(echo chamber effect)’가 심화되고 있다. 조선시대 당파싸움이야말로 그러한 부작용의 산물로 봐야 한다. ‘윤석열의 난’은 바로 그런 약점을 파고들어 분열공작을 통해 국민주권을 탈취하려고 한 것임을 잊어선 안 된다.

따라서 누군가를 비판할 때 그를 저격하는 식의 글이 아니라 ‘우정 어린 설복’을 시도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윤석열과 그의 동조자자들이 저지르고 있는 테러에 맞서는 의연한 자세가 아닐까? 설사 이념과 진영이 다른 사람을 비판할 때조차 의연히 견지해야할 인간적 자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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