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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우민일기

자본주의에 대해 중국이 미국에게 훈수하는 시대

2025년 4월 18일(덥고 흐림)

by 펭소아

경제학은 본디 정치경제학이었다. 영어로 하면 Political Economics다. 그러다 대서양 건너 미국으로 가면서 Economics가 됐다. 골치 아픈 정치는 떼어내고 수요공급의 법칙이 지배하는 시장에만 집중하자고. 그렇게 정치를 떼낸 경제학이 미국에서 개고생하고 있다.


한겨레신문에 실린 '관세 전쟁에 승자 없고, 보호주의에 길이 없다'는 다이빙 주한중국대사의 글을 읽으며 우민의 뇌리를 스친 생각이다. 자본주의 세계의 좌장 대접 받던 미국이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으로부터 자본주의의 핵심 원칙인 비교우위에 대한 훈수를 듣게 된 셈이다. 미국이 중국보다도 자본주의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라로 전락한 것이다. 저승에 있는 고전경제학자 사무엘 아담스와 데이비드 리카도는 물론 시장만능주의자인 프리드리히 하이예크와 밀턴 프리드먼조차 기가 찰 일이 아닐 수 없다.


한중일이 공통으로 사용하는 한자어 경제학은 Economics가 아니라 Political Economics의 번역어다. 경제라는 한자어는 유교경전인 '서경'의 구절을 원용한 '경세제민(經世濟民)'이란 표현을 일본인들이 압축해서 번역한 것이다.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한다'는 뜻의 압축어라는 점에서 이미 정치의 뜻을 함유하고 있는 셈이다.


경제학의 원래 이름인 Political Economics라는 용어 자체도 의미심장하다. Political 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폴리스(Polis)에서 기원한다. 반면 Economics의 어원은 그런 폴리스의 대척점에 선 오이코스(Oikos)에 있다.


고대 그리스의 시민의 삶은 공적인 삶과 사적인 삶으로 나뉜다. 폴리스가 공적인 삶의 영역이라면 오이코스는 사적인 삶의 영역이다. 국가공동체의 운영에 참여할 여력을 갖추기 위해선 노예를 포함한 가족단위의 경제력이 중요했다. 오이코스 경영을 통해 의식주의 문제뿐 아니라 경제적 수익까지 창출해야 폴리스 관련 업무에 몰입하는 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근대 자본주의의 여명기에 태동한 Political Economics는 그런 점에서 공적인 국가운영을 다루는 정치와 사적인 경제활동을 하나로 통합한 학문이었다. 일본인들이 번역한 경세제민의 학문과도 상통하는 대목이다.


그런 학문이 미국으로 건너간 뒤 국가공동체 운영에 대한 시야와 철학을 떼어놓고 오로지 시장의 논리만 취하려다가 트럼프 같은 얼치기 사업가를 대통령에 앉히고 결국 국가경제 뿐 아니라 세계경제까지 결단 낼 위기까지 몰린 것이다. 그러니 경제학의 본질이 경세제민에 있음을 일찍부터 터득한 중국으로부터 자본주의 공부를 제대로 하라는 핀잔을 들을 수밖에.



#우민은 '어리석은 백성(愚民)'이자 '근심하는 백성(憂民)'인 동시에 '또 하나의 백성(又民)'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제 자신에게 붙인 별호입니다. 우민일기는 전지적 작가 시점에 가까운 '맨스플레인'에서 벗어나보자는 생각에 제 자신을 3인칭으로 객관화하려는 글쓰기 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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