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지반공학 이야기
지금으로부터 1년 전.
20년 전 처음으로 나갔던 해상지반조사의 추억을 되새기며 이번엔 북해 현장으로 지반조사를 나간다. 4500톤급 Drill ship을 타고 수심 400m 아래 지반을 CPTu로 조사하고 PC로 시료를 채취, 현장에서 간단한 토질 시험을 하고, 불교란 시료를 회사 실험실까지 전달, 각종 실내 토질 실험을 수행하고, 지반조사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 주어진 임무.
하루는, 미흡하다고 생각되는 위치에 지반 샘플링을 다시 하기 위해서 배를 돌릴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 지반조사에 있어서는 지반공학자가 이곳에 client를 대신하여 나와 있기 때문에 client 입장에서 그 결정을 승인하는데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모두들 계속 가던 길을 가서 작업을 서둘러 끝내고 싶은 마음이었겠지만, 나는 배를 돌려 샘플링을 다시 하자고 제안했고, SS (shift supervisor)는 이를 받아드려 육중한 배의 키를 돌려, 가던 길을 멈추고 되돌아 다시 샘플을 채취했다. 내가 타고 있는 배 한 척을 하루 빌려 운영하는데 비용이 85 kEuro정도가 든다
미안하고도,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이는 프로젝트를 위한 것이었고, 다행히도 가장 긴 원하는 샘플을 채취할 수 있었고,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도 만족하며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나는 2013년부터 NGI에서 일을 하고 있다. NGI는 노르웨이 오슬로에 본사를 두고 있는 세계최고의 지반연구소 중 하나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지반 컨설팅/연구소이다. 이유는 지반에 관련된 모든 일 (조사, 실험, 설계, 해석, 모니터링, R&D)을 직접 하고 각 분야에 최고의 전문가들이 있다. 얼마 전에 시추기 3대를 구입해 직접 육상 시추조사를 수행하며, 회사 지하에 있는 workshop에서는 실내, 현장 실험과 관련된 모든 기계장비들을 직접 수리, 개조한다.
NGI는 1953년에 국가 연구소로 설립되어 현재 민영화되었으며, 지난 60여 년 동안 많은 지반공학 분야 기술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 본사 외에 Trondheim (노르웨이), Houston (미국), Perth (호주)에 지사를 두고 있다.
1953년 노르웨이 지반을 구성하고 있는 연약한 점토인 Quick clay에 대한 연구를 시작으로 1970년대 노르웨이 에너지원의 95%를 차지하는 수력발전을 위한 댐(Dam) 설계 및 시공, 지하철과 철도 등 사회 전반에 걸친 인프라 시설의 지반 관련 설계를 수행하였다. 1970/80년대 North Sea에서 오일이 발견되면서, 오일과 가스 생산을 위한 해양지반조사 및 해양토질실험, 해양구조물 기초설계를 통해 크게 발전하였다. 1980년대 당시 토질실험에 대한 전문성과 기술력을 인정받아 영국 퀸 엘리자베스 (Queen Elisabeth) 여왕이 실험실에 방문하기도 하였다
980/90년대에는 Vassdalen 지방 큰 눈사태 발생으로 눈사태 (avalanche)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으며, 현재 겨울에 자주 발생하는 눈사태 저감을 위한 연구뿐만 아니라 산사태, 지진, 홍수 및 쓰나미 등 지반 관련 자연재해에 대한 연구를 활발히 수행하고 있다. 1900/00년대는 세계에서 최장대 도로터널인 Lærdal 터널의 설계와 시공에 참여하였으며, Gardermoen 공항 설계 및 Hærøya 산업지역 오염된 지반과 물을 다루는 지반환경에 대한 연구도 시작하였다. 2000년대 이후 해양 지반조사와 해저 물리탐사를 통한 지반 모델링(ground modeling), 신재생 에너지 분야 중 고정식 해상풍력기초(monopile, suction anchor, GBS, jacket foundation) 및 부유식 해상풍력 앵커 설계 등 대한 컨설팅 및 R&D를 활발히 수행하고 있다.
내가 속해 있는 해양 에너지 분야에서는 해양 지반조사 및 해양토질 실내실험, 해양구조물 기초에 대한 설계, 부유식 구조물에 대한 앵커 설계 및 시공, 석유시추를 위한 지반 및 암반공학, 해양구조물에 대한 모니터링, 복잡한 지반공학 문제 해결을 위한 수치해석 등을 수행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지반 관련 분야에서 NGI는 1990년 이후 매년 5% 이상의 꾸준한 성장률을 보이며 발전하고 있고, 현재 300여 명의 남, 여 균형 잡힌 엔지니어 인력풀을 구성하고 있으며, 전 직원 중 35% 정도가 외국인으로 약 40여 개국의 다양한 국적의 엔지니어가 협력하며 근무하고 있다.
최근 COVID-19으로 전 세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노르웨이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NGI에서는 실험실과 현장팀을 제외한 모든 직원이 재택근무가 가능한 디지털플랫폼 개발을 가속화하여 현재 거의 모든 직원들이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NGI는 전통적인 지반공학에 대한 컨설팅뿐 아니라, 전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인구증가, 기후변화, 이산화탄소 저감 등 여러 가지 환경 문제와 이로 인한 극심해지는 자연재해, 크린 에너지에 대한 수요 증가 등 여러 가지 도전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NGI는 전 세계 학계, 연구소 및 산업계와 협력하고 있다.
나는 21년 전을 돌아본다. 그리고 오늘 나의 모습을 본다.
아직도 매일 새로운 도전에 부딪치고, 깨지고, 절망하고 거기서 또 새로운 것을 배운다. 사무실에 출근하면 정년을 훌쩍 넘으신 나이에도 프로그램을 돌려가며, 보고서를 작성하시는 분들 (소위 대가라 불리는)을 종종 보게 된다. 평생을 지반공학에 종사하셨던 그분들도 새로운 것들을 배우는데 즐거워하며, 그분들의 경험을 나누는데 주저하지 않으신다.
나는 앞으로도 지반공학 엔지니어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그러면 나도 앞으로도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이고, 나의 경험을 나누며 이 길을 같이 걷고 싶다.
배움에는 끝이 없겠지만, 끝이 있다면 그것은 나눔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