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지반공학 이야기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당시 복합 말뚝 (강관말뚝 + PHC말뚝)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말뚝이 지금처럼 아주 보편화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시절. 당시 G건설 기술본부에 근무하던 나는 복합말뚝 현장 적용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섬진강 하동현장을 찾게 된다.
당시 아무도 해보지 않은 직경 1000 mm 직경의 대구경 콘크리트 말뚝과 강관말뚝을 연결한 복합말뚝에, 각종 계측기를 붙여 놓고 매입 말뚝 및 항타 말뚝을 시험 시공하는 현장. 공장에서 제품 반입부터, 현장 섭외까지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 당시 현장 소장님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적당한 사이트를 제공받고, 시험을 하게 되는데...
나에게 한 가지 징크스가 있었다면, 현장을 나갈 때 꼭 끼던 나만의 장갑이 있었는데, 이 장갑을 끼지 않으면, 현장 일이 잘 안 풀린다는 것.
그날은 아침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여기저기 현장 직원들의 언성이 높아가고, 현장 소장의 신경은 날카로워 진다. 그러던 와중에 내 장갑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소장님... 제... 장갑이... 없어졌어요.”
“뭐? 장갑? 저쪽에 장갑 많잖아! 하나 맞는 걸로 하나 껴!!”
“아니.. 제 장갑이...”
“하나 맞는 걸로 끼라니까!!!
“실은... 제가 징크스가.... 그 장갑을 안 끼면 현장이 잘 안 돌아가는 징크스가 있습니다.”
현장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래? 모두 작업 중지. 모두 신 과장 장. 갑. 차지. 아!!!!!”
갑자기 현장 작업을 중지시키고, 현장 직원들에게 장갑을 찾으라 지시하시는 것이다. 급기야 여기저기 무전을 치시니, 중장비 기사들이 모이기 시작. 굴삭기, 덤프에서 내려 다들 장갑을 찾고 있는 것이다. 이건 좀 아니다 싶어, 소장님께 괜찮다고 말씀 드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상황은 점점 심각해지고, 중장비 기사들은 점점 열을 받기 시작. 이쯤에서 그만했으면 했지만, 소장은 이제 본인도 오기가 났는지, 두 팔을 걷어붙이고 직접 장갑을 찾고 계시는 것.
나도 안절부절못하고 장갑을 찾는 척 이리저리.... 그러다... 느낌이 이상해 주머니를 뒤져보니..
오 마이갓!
내 작업복 뒷 주머니에 장갑이 꽂혀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상황에서 장갑이 주머니에 있었다고 말했다간, 맞아 죽을 상황.
잠시간 고민하다, 장갑을 한 발치 멀리 던져 놓고는....
“소장님! 여기.. 장갑 찾았어요!!!”
이제는 말할 수 있습니다. 그날 저 때문에 공기가 좀 지연되었다면, 죄송합니다요~소장님~
장갑 덕분인지 복합말뚝 현장시험이 모두 잘 수행되었고, 지금의 복합말뚝이 보편적으로 활용되는 데는 이러한 뒷 이야기가 있었다는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