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어린 왕자, 생텍쥐베리 저
"아저씨는 이제 일을 해야 하잖아요. 아저씨의 기계가 있는 곳으로 가요. 나는 여기서 아저씨를 기다리고 있을게요. 내일 저녁에 다시 와요."
나는 두려웠다. 어린 왕자가 들려주었던 여우 이야기를 생각났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길들이면 눈물 흘릴 일이 생긴다는.
관계(關係), Relationship 혹은 connection. 책 어린 왕자에서는 이를 길들이다(tame)라 말한다. 이토록 잘 와 닿고 이보다 더 애틋한 표현이 있을까 싶다. 어린 왕자는 여행 중에 여러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고 그 여정에서 길들인다는 것에 대해 배운다. '누군가에게 길들이면 눈물 흘릴 일이 생긴다'라.. 회자정리(會者定離)라 했던가, 만남에는 필연적인 이별이 뒷따른다라는.
"눈물이 날 것만 같아."
어린 왕자가 말했다.
"네 잘못이야. 나는 네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네가 길들여주길 원했잖아."
"그래, 그랬어."
"하지만 너는 자꾸 울려고 하잖아."
"그래, 맞아."
"길들여서 좋을게 없어."
간혹 마음을 잘 안 여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사람일수록 더 쉽게 마음이 열리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상대에게 금방 스며들어버리고, 후에 본인 몫에 배가 되어 더 많은 눈물을 흘려 본 이들이 그러는 게 아닐까.
어린 왕자의 말에 여우가 대답했다.
"아니야, 그래도 좋은 게 있어. 밀밭의 황금빛을 사랑하게 되었잖아."
(It has done me good. because of the color of the wheat fields.)
...
"매일 같은 시각에 오는 게 좋을 거야. 만일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질 거야. 4시가 가까워질수록 나는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마침내 4시가 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안절부절못하게 될 거야. 그러면서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돼."
밀밭의 황금빛.. 인간이란 참으로 신비한 존재다. 평생 따로 살아 온 두 사람이 만났는데, 서로를 길들이는 순간 둘은 끈끈해지고 세상은 확연히 달라진다. 나무는 더 푸르고 하늘은 더 높아지고 혹은 밤은 더 어두워지고 바람은 더 칼 같아진다. 길들이지 않는다면 이 밀밭의 황금빛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길들이지 않는다면 3시의 행복을 알까? 길들이지 않는다면 따뜻하고 달달한 실론티 한 방울이 입술 끝에 닿는 그런 짜릿함을 알 수 있을까? 길들이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글을 쓰고 노래를 하고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
"시간이 지나면 슬픔은 무뎌지기 마련이에요. 그래서 아저씨도 언젠가 슬픔이 지나가면 나를 알게 된 것이 기쁨이 되겠지요. 아저씨는 언제까지나 내 친구로 남을 거고, 나와 함께 웃고 싶어 질 거예요. 그래서 가끔 괜스레 창문을 열게 되겠지요. 아저씨가 밤하늘을 보고 웃음 짓는 모습을 보고 친구이 놀라면 '저 별들은 항상 나를 웃음 짓게 해.'하고 말해 주어요. 친구들은 아저씨가 이상하다고 생각할 거예요. 내가 아저씨에게 아주 짓궂은 장난을 친 게 되겠네요."
그리고 그는 또 웃었다.
"그건 별 대신에 웃을 줄 아는 조그만 방울을 잔뜩 준 셈이 되는 거예요."
어린 왕자는 내가 너를 길들였던 일이 슬픔이 되어도 그것은 곧 시간으로 치유되어 웃음(추억)이 되므로, 결국 나는 너를 웃게 만드는 장난을 친 셈이라는 귀여운 발상을 한다. 고로 이 길들임 끝에서 오는 지금의 슬픔을 너무 안타까워할 필요는 없다고 아저씨도 스스로도 다독인다.
길들임에는 눈물이 흘릴 일이 생기기 마련이겠지만 그것은 곧 치유되고 웃을 수 있을 만큼 성장하게 되므로 밀밭의 황금빛을 사랑하게 되는 기회를 놓치지 말기를 어린 왕자는 내게 전하고 있었다.